미국의 창작자들에게 웨스턴은 영원한 영감의 원천인 것 같다. 한국 창작자들에게 조선 후기나 구한말이 그런 것처럼.
가본 적도 없는 낯선 곳에 순식간에 다녀온 듯한 경험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11월 3일 개봉하는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를 보는 관객은 103분 동안 황량하고 건조한 미국 텍사스를 헤매고 온 듯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입 안에서 버석버석한 흙먼지가 씹히는 느낌이다.
빚더미에 앉은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는 범죄 이력이 많은 형 태너(벤 포스터)와 함께 텍사스의 작은 은행들을 돌며 강도 행각을 벌인다.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이 은행에 차압당할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형사 해밀턴(제프 브리지스)과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의 파트너 질베르토(길 버밍햄)는 형제 강도단의 뒤를 좇는다.
메마르고 뜨겁고 누르스름한 대지 위의 범죄자들은 병맥주를 물처럼 들이마신 뒤 운전하고 은행을 털고 도주한다. 경찰들도 ‘과학수사’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강도들이 들이닥칠 것 같은 은행 앞의 오래된 바에 앉아 마냥 기다릴 뿐이다. 이곳엔 시민들도 범상치 않다. 총기 소지의 자유를 사랑하는 텍사스 남자들은 범죄자가 들이닥치자 숨기는커녕 저마다 바지춤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들고 저항한다. 카메라는 거대한 땅덩이 위 드문드문 점처럼 늘어선 건물들과 사람들, 그들의 행동을 무심하게 잡아낸다.
미국 영화사 초기부터 존재한 서부극은 미국 건국사를 영화적으로 다시 쓰려는 욕망의 일환이었다. 현대적 서부극이라 할 수 있는 <로스트 인 더스트>는 오늘날 미국의 상황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영화들이 자주 표현하듯, 은행은 날강도로 변해 서민의 재산을 강탈하려 든다. 여느 텍사스 남자들이 총을 들고 스스로를 지키듯, 형제의 강도 행각도 남은 재산을 지키기 위한 자구행위에 가깝다. 옛날의 서부극에서도 한줌의 의무감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외로운 보안관이 있었는데,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도 그렇다. 딱히 정의롭거나 명민하지 않아 보이는 경찰들이지만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해내기 위해 묵묵히 범죄자들을 좇는다. 답답할 정도로 느릿하게 움직이던 경찰들은 범죄의 냄새가 가까워지면 맹수처럼 재빠르게 달려든다. 미국 건국 초기의 서부가 그러하듯, 21세기의 텍사스도 각자도생의 세상인 것 같다.
<영 아담>, <할람 포>의 데이비드 맥켄지가 연출했다.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의 테일러 쉐리던이 각본을 썼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진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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