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재우기 위해 어두운 방에서 이런저런 동요를 조용히 부르다 보면, 그 중에서도 가사와 멜로디가 특히 아름다운 곡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또 노래라는 것은 몸에 참으로 깊숙히 각인된다는 점을 느낀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는 불러본 적이 없는데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도 바로 입에서 나오는 그 노래들.
태교 시절, 아내의 배에다 대고 불러준 노래는 '반달'이었다. 제목 보다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로 시작되는 가사로 더 널리 알려진 곡이다. 1924년에 발표된, 한국 창작 동요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라고 방금 포털 검색 결과가 알려주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가사가 좀 생경하다. '쪽배'가 뭔지, '계수나무'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으며, 돛대니 삿대니 하는 단어들도 도시 아이들에게는 낯설다. 그래도 멜로디가 신비스럽고 서정적이라서 음을 하나씩 천천히 음미하며 부르면 꽤 운치 있다. 여러 태교 책에는 뱃속의 아기도 귀가 있어 바깥의 소리를 다 들으며, 그래서 자주 말을 걸어주고 노래를 불러줘야 한다고 했다. 특히 자장가의 경우는 자주 불러주면 아기가 기억해 출산 이후에도 그 노래를 불러주면 편안해 하고 잠이 잘든다고 했다. 실험해 봤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노래를 부르거나 말거나 아기는 울었다.
아무튼 이 노래를 2년 이상 불러주니 아기는 심지어 지겨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에 안드는 노래를 부르면 고개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며 다른 노래를 부르라고 재촉한다.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노래는 '섬집아기'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로 이어지는 가사다. (사실 가사는 지금 다시 찾아봤는데 조금 틀리게 알고 있었다)
요즘이면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상황이다. 얼마전 미국에서 새벽에 아이를 집에 홀로 두고 교회에 다녀온 한인 목사 부부가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자는 아이를 두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온 적은 있지만, 그 이상의 범위로 나가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런데 '섬집아기 엄마'는 대담하게도 굴따러 나가 버린다. 물론 2절 가사를 보면 "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라고 수습하고 있지만, 그래도 21세기 시각으로는 상당히 쿨한 어머니시다. 1950년작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역사책에서 추상적으로 배운 시대 상황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노래다. 포털의 연관 검색어에 '섬집아기 공포'라고 뜨는데, 왜 그런지 알것도 같지만 난 그래도 이 노래가 좋다. 잔잔한 파도 소리처럼 사람을 평화롭게 하는 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거나 말거나. 아기는 이 노래도 지겨워한다. 내가 좋아하는 동요 중에 가장 최신곡은 '노을'이다. 1984년 MBC 창작동요제 대상곡이다. (그렇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창작동요제라는 것을 열던 시절도 있었다.) 일단 가사를 전부 인용하고 싶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있어요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 짓고
초가지붕 둥근 박 꿈꿀때
고개숙인 논 밭의 열매
노랗게 익어만가는
가을바람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 놀
사실 난 이 가사가 묘사하고 있는 풍경을 알지 못한다. 들판 같은 것이라고는 제주도에 팸투어 갔을 때 오름을 올라본 것이 전부이며, 요즘에 저녁을 짓는다고 연기를 내는 집도 없다. 허수아비라느니, 초가지붕이라느니, 민속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것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노래의 가사를 외워 부르고 있노라면, 정말 내가 노을 지는 가을 들판에 올라 시골집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는 것이다. 본 적도 없는 풍경이지만 내 앞의 모니터보다 더 현실같은 풍경. 제임스 카메론이 4억 달러를 들여 존재하지 않는 판도라 행성을 꾸며내 사람들에게 진짜인 것처럼 믿게 했듯이, '노을'의 가사는 대부분의 도시 아이들이 꿈에도 못본 시골 풍경을 머리 속에서 상상해볼 수 있을 정도로 힘차고 정교한 묘사력을 보여준다. 게다가 멜로디의 기승전결이 자연스러우면서 극적이라 부르는 재미도 상당하다. 가사는 평택 대추리의 노을을 보며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대추리의 상황에 맞물려 내 고향을 잃은 듯한 향수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아기는 '노을'에는 싫증을 내지 않았는지, 불러줄 때 힘차게 고개를 젓는 정도는 아니다. 아기가 한 시간 동안 안 자면서 뒤척이고 침대를 오르내리다가 아빠의 배 위로 엉덩이로 방아찧기를 놀이를 해대도, 그런 놀이 때문에 갈비뼈가 나간 할머니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래도 아기에게 '노을' 같은 노래를 불러줄 수 있는 시기는 꽤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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