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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은 모두 사탄이었다, <마녀>

마녀

쥘 미슐레 지음·정진국 옮김/봄아필/432쪽/1만9000원


신들이 죽고 신이 태어났다. 


유럽 곳곳을 누비던 판, 오시리스, 아도니스, 불카누스가 있던 자리에 중동에서 유래한 기독교 유일신이 나타난 것이다. 유럽의 유일한 공식 종교가 된 기독교는 라이벌 신들을 차례로 제거했다. 신전을 청소하고 우상을 파괴했다. 로마 제국 기독교도의 신앙심이 독실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국은 영토 안 수많은 신민들이 각기 다른 수호신을 섬기는 꼴을 보아넘길 수 없었다. 


‘마녀’라 불린 여자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런 역사, 종교 배경이 있다.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1798~1874)는 1862년 처음 나온 <마녀>에서 마녀의 탄생, 마녀 숭배, 마녀 재판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방대한 자료, 날카로운 시각, 유려한 서술이 어울린 역사 교양서다. 


수많은 토착신, 정령은 공공장소에서 추방됐지만, 수천년간 그들을 섬겨온 민중의 마음 속에는 아직 살아 있었다. 게다가 때는 중세였다. 영주의 가혹한 수탈에 민중의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피폐해졌다. 기독교 사제들은 신음하는 민중을 위로하기는커녕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세상 어느 가난하고 굶주린 이가 정교한 논리, 화려한 수사로 치장된 라틴어 미사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여자의 삶은 더욱 힘들었다. 더럽고 좁은 집에서 남녀와 가축이 뒤엉켜 살았다. 참다 못한 여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가 홀로 살기로 했다. “둥지가 새를 만드는 법이다. 그러면 물건 취급당하는 사람의 삶이 아니라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여자도 탄생한다.”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자연에 가까워지자 수천 년전부터 전해진 이야기들이 마음 속에서 되살아났다. 선녀, 요정, 꼬마 도깨비 등의 정겨운 존재들이 거룩하고 위대한 기독교 성인의 자리를 차지했다. 여자들은 숲 속 짐승과도 친해졌다. 짐승이나 아이나, 순수하고 사랑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자연을 찾아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20세기의 히피를 떠올려선 안된다. 이 여성들은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손쓰기 힘든 중병, 예를 들어 나병 같은 것에 걸렸을 때 유럽의 기독교 사제들은 환자를 감금시키거나 그저 죽게 내버려뒀다. 구원을 부탁하는 신자들에게 사제들은 “죄를 지어 그렇지…하느님이 벌을 내리신 거예요. 감사해야 합니다. 내세에서 고생이 한결 덜하겠지요”라고 말했다. 과학적 방법론을 배운 의사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신앙이 사라지고 이성은 도래하지 않은 시기, 앓는 사람들은 숲 속 여자, 즉 마녀의 약초가 필요했다. 특히 남자 의사를 찾기 힘든 여성 환자는 더욱 그랬다. 그 시기 마녀는 여성을 위한 의사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마녀'(1886)


통증을 잠재우는 사리풀, 출산시 간헐적인 경련을 가라앉히는 벨라도나, 수포를 없애는 까마종이 등 민간의 지혜가 담긴 약초들이 가난한 여성 환자들에게 처방됐다. 교회는 영혼을 위해 기도했지만, 마녀들은 일단 몸부터 살리고봤다. 


교회가 질색한 이교도 의식이 남아있긴 했다. 밤중에 마녀가 벌인다는 악마 숭배의식인 ‘사바’(Sabbat)다. 사바는 수세기 동안 낮과 밝은 곳을 피해 밤에만 마음껏 숨쉬며 활동할 수 있었던 노예들의 해방구와 같았다. 달을 경배하는 이교도의 관습과 맞물려, 밤나들이에 나선 민중들은 유령으로 위장해 연극을 하거나 염소를 잡아 먹으며 작은 잔치를 벌였다. 14세기 들어 로마 카톨릭의 수장이 둘러 나뉘어 싸우면서 권위를 잃고 영주의 수탈이 더욱 고약해지자 사바는 ‘하느님에 선전포고’를 하는 과격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녀는 이러한 ‘절망의 시대’에 나왔다.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또다른 지옥을 택했다고 할까. 


종교 권력자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1480년대에 간행된 <마녀망치>는 그들의 교본이었다.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 슈프렝거 수도사는 이 책에서 마녀에 대한 신학적 논증, 마술에 대한 대처법, 마녀와 이단자에 대한 체포·고문·판결을 집대성했다. 종교재판관들은 이 책을 작게 만들어 무릎 위에 두고 참고했다. 말로는 종교재판관들을 이길 수 없었다. 얼마 전 죽은 아기의 시신을 마법에 이용하려고 묘지에서 파냈다고 실토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묘지에 가서 파보면 아기 시체가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고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종교재판관은 아기의 시체가 “악마의 환상”이라고 말하면서 반론을 기각했다. 끔찍한 고문이 두려워 미리 자살한 마녀들이 나오면, 재판관들은 마녀가 죄를 인정했기 때문에 자살했다고 말했다. 


물론 마녀들이 신성을 모독하거나 기괴한 일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시점에서 보면 그들은 악당이 아니라 환자일 뿐이었다. 그런 환자들을 재판관들은 치료하지 않고 화형시켰다. 주네브에서는 석 달 만에 500명, 뷔르츠부르크에서는 800명, 밤베르크에서는 1500명이 불길에 휩싸였다. 

 

 

한스 발둥, '마녀'(1508)


17~18세기쯤이 되자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 “조용한 시대에는 미움도 줄어든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친구들이나 미워한다”고 미슐레는 적었다. 마녀는 종교재판관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존재들에 의해 쫓겨났다. 바로 의사와 과학자들이었다. 아픈 사람들은 이제 마녀가 아니라 의사를 찾았다. 


여성에 대한 편견, 가혹한 시대 상황, 무엇보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마녀’를 만들었다. “새로운 것들은 모두가 사탄이었다. …죄가 아닌 진보는 없다.” ‘마녀 사냥’이라는 은유는 지금도 흔히 사용된다. 우리는 진보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