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아포칼립스'는 재미있다고 할 수 있지만, 기대에 못미친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신으로 추앙받던 최초의 돌연변이 아포칼립스는 ‘가짜 신’을 몰아내려는 인간들의 반란으로 무덤 속에 잠든다. 1983년, 광신도들의 노력으로 아포칼립스가 부활한다. 아포칼립스는 전쟁과 폭력에 물든 인류를 절멸시키고 새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네 명의 돌연변이 수하를 모은다. 돌연변이들을 위한 영재학교를 설립한 프로페서 X는 아포칼립스를 막으려 한다.
<엑스맨> 시리즈는 2000년대 슈퍼히어로 영화의 한 흐름을 대표했다. 영리한 감독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을 정의감에 불타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소수자로 그려냈다. “돌연변이를 박해하는 인간을 타도해야 한다”는 매그니토와 “그래도 인간과 공존해야 한다”는 프로페서 X의 대립이 시리즈의 골격이었다. 싱어는 <엑스맨>(2000), <엑스맨2>(2003) 이후 잠시 시리즈를 떠났다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로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돌아왔다.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대립 구도 역시 기존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능력은 저주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 두려워하는 법이지” 같은 대사도 인간 대 돌연변이의 세계관을 뒷받침한다. 이번 영화에서도 돌연변이들은 인간들의 조롱과 두려움을 동시에 산다. 인간들은 돌연변이들을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망 안에 가둔 채 싸움을 붙이거나, 신처럼 숭배한다.
시리즈의 기틀을 세운 싱어는 자신의 장점을 발휘한다. 평범한 인간으로 은둔해 살아가던 매그니토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가족을 잃는 사연을 만들어, 악당이 된 그의 선택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진, 사이클롭스 같은 중요한 캐릭터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는 젊은 시절 모습을 그림으로써 인물의 성장사와 깊이를 만든다.
하지만 싱어가 다시 직조해낸 <엑스맨> 세계는 어딘지 ‘한 방’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싱어가 해석해낸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슈퍼히어로 세계관이 지난 16년 사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점도 한 이유일 것이고, 핵무기에 대한 공포 같은 감성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도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물론 핵무기는 2016년에도 현존하고 명백한 위협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 대중문화가 핵무기 공포를 직간접적으로 너무 많이 다뤘다는 사실이 문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스파이 브릿지>가 보여줬듯이, 핵무기를 자국 정치에 활용하는 상황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핵무기 공포 자체는 21세기의 영화에 그다지 참신한 소재가 아니다. 아포칼립스를 메시아와 가짜 메시아의 경계에 놓인 존재로 그림으로써 영화에 철학적·신학적 깊이를 부여하려는 시도도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아 보인다.
이번 영화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이은 ‘엑스맨 새 삼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싱어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새 <엑스맨> 시리즈를 만들 계획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영원히 멋질 줄 알았던 싱어의 <엑스맨>에 서서히 싫증을 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평론가와 관객의 평점을 모아 보여주는 ‘로튼 토마토’에서, <엑스맨: 아포칼립스>는 싱어의 <엑스맨> 영화 중 가장 낮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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