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으로서의 3·11
쓰루미 슌스케 외 지음·윤여일 옮김/그린비/272쪽/1만5000원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만든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리듯, 정갈한 도시가 지진 해일 속으로 사라졌다. 당황한 것은 일본만이 아니었다.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전세계를 불안에 떨게했다. 고도성장, 안전, 혁신적인 기술 등은 이제 의미없는 말이 됐다.
일단은 살기 바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폐허 위에도 사유의 싹은 자란다. 이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 1922년생 쓰루미 슌스케부터 1973년생 사사키 아타루까지 18명(혹은 팀)의 일본 지식인들이 급히 글을 썼다. <사상으로서의 3·11>은 지난해 3, 4월 집필돼 6월 일본에서 '긴급간행'된 책이다.
먼저 재난을 보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 당시 전세계의 뉴스에서는 재난의 스펙터클이 이어졌다.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에서나 봤을법한 영상들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스펙터클 뒤에는 감동적인 서사가 뒤따랐다. 희생을 각오하고 피해 지역에 진입한 원전 결사대는 '영웅'이 됐고,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생명들은 눈물샘을 자극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한 것일까. 이미지가 포화되니 충격도 줄어들었다. 현대 사회의 대중매체는 사건을 창조하는 동시 낡아빠지게 만든다. 지식인이 이런 일에 동참해도 될 것인가. 들뢰즈는 일군의 철학자들이 "강제수용소와 역사의 희생자를 이용"하며 "시체를 먹고 있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재난과 망자를 이용하지 않기 위해서 철학자들은 머뭇대며 몸과 마음을 다잡는다.
대재난은 1일, 1주일, 1달에 익숙한 현대인의 시간 개념을 혼돈에 빠트렸다. 플루토늄 239의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들려면 2만4000년이 걸린다. 재난이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그것이 끝났다면 "다시 시작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대재해는 완성되지 않았으며, 이것으로 시작되었을지 모를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는 '시작도 끝도 없는' 시대에 우리는 돌입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3·11을 기점으로 새롭게 시간을 계산한다고 하지만, 대지진은 언제나 있었다. 21세기 들어서 일본에 진도 7 이상의 지진은 19번 일어났다. 시선을 과거로 돌리면 지진은 더욱 흔하다. 언론에서는 "천 년에 한 번 있을 대지진"이라는 수식어를 퍼트렸지만, 이는 대중을 자극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왔을 뿐이다. 대재해를 10년 단위로 보면 '상정 외'지만, 백 년, 천 년, 만 년 단위에서는 흔한 일이다. 기껏해야 100년을 사는 인간에게는 신기한 현상이 태고에서 전해진 템포로 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
대지진이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 예는 과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다. 6만명이 죽은 이 재난으로 인해 볼테르, 루소, 칸트가 새로운 사유를 시작했다. 세계의 대지, 기초가 흔들리자 세계를 관리하는 이성이 흔들렸다. 신은 선이며 신이 창조한 세계는 이성적이라는 생각, 세계가 언젠가 신에 의해 구원받을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도 사라졌다.
원자력은 반자연적이다. 방사능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거론된 4대 원소, 불, 물, 흙, 공기를 종합한 것이다. 4대 원소는 세계와 '맞은 편의 세계'의 경계를 구성하는데, 방사성 물질은 이 경계를 흐트린다. 원자력 발전이 수력, 화력 발전과 다른 이유가 있다. 후자엔 문제를 해결(물을 낙하시키고 연료를 전부 태운다)하는 과정이 있지만, 전자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원자로의 폐로, 사용이 끝난 핵연료의 저장과 처리 등이 그 문제다. 원전 과정에는 시작도 끝도 없고, 준안정에서 준안정으로의 연속적 운동만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는 원전 '사고'를 발전이나 폐기물 처리와 분명하게 구분하는 기준이 없다. 발전, 폐기물 처리가 이미 '사고'다. 마치 미군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끝내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제어가 최선일 뿐이다.
'그래도 원자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이 그렇다. 한국에는 21개의 원전이 있는데 국토면적 1㎢ 당 원자력 발전 용량을 계산하면 일본을 능가한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구호를 내건 이명박 정부는 2024년까지 13기의 원전을 증설할 게획이며, 해외에까지 원전을 팔았다. 이들 원전파는 후쿠시마의 사고는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 인간의 이성은 과학 기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성이 과학을 낳고 과학이 기술을 낳았다는 논리를 간직했기에 가능한 주장이다. .
과연 그럴까. <16세기 문화혁명>의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열역학이 등장한 뒤 거기에 기반해 증기기관이 발명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고 밝힌다. 학문과 무관한 기술자가 자신의 경험, 감에 기대어 기관을 만들었고 이에 근거해 이론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기술은 과학, 이성을 앞설 뿐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도 했다. 현생인류는 뷸을 일으키고 석기를 만들고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든 뒤에야 인간이 됐다. 그러므로 기술은 인간 이성의 산물이니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기술은 인간과 관계 없이 스스로 발전한다. 인간은 아무 것도 모른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관한 음모가 있다면 그것은 "알고 있는 걸 숨기는 음모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걸 알고 있다며 우겨 대는 음모"다.
<사상으로서의 3·11> 속 철학자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큰 비관과 자책 계열이다. 야마오리 데쓰오는 <법화경>에 나오는 삼차화택(三車火宅)의 비유를 든다. 대저택에 불이나 번지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노느라 정신이 팔려 집을 나가지 않았다. 부자 아버지는 문 앞에 장난감을 둔 뒤 아이들을 꾀어내 가족을 살렸다. 야마모리는 우리의 세계가 불타기 시작한 집(火宅)과 다름없으며, 코스모스보다는 카오스에 근원을 둔다고 본다. 인간을 포함해 지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無常)의 진리를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야만 문명이 초래한 불안과 긴장을 벗어날 수 있다.
히가키 타쓰야는 죄송하다고 땅에 엎드리길 거듭하는 관료, 기업인들의 모습에서 책임 소재를 애매하게 하는 '정념적인 사죄'를 본다. "나도 나빴다"는 자책의 연쇄가 이어질 뿐,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는 정확하게 논의되지 않기 떄문이다. 아울러 후쿠시마의 피난소에 있는 난민이 그곳을 방문한 총리에게 "너도 여기에 살아봐라"고 외친 광경에서는 미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을 읽어낸다. 후쿠시마에 원전을 유치한 것은 주민들인데,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내가 피해자다"라고 외치며 정치적 선택의 결과를 잊는 일본인을 두고 히가키는 '추악하다'고까지 표현한다.
또 하나의 계열은 작은 낙관과 비판이다. 모리 이치로는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인간이 만든 세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연은 선도 아니며 악도 아니다. 인간은 방파제를 넘은 대형 해일에서 자연의 '폭주'를 보겠지만, 자연은 본성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인간은 자연에 맞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계를 만들었다. 자연의 영원회귀 앞에서 인간은 할 일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인간은 세계를 쌓아 올리고 재건하고 계승해야 한다. 그것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세계 사랑'이다.
더 이상 식민화할 외부를 갖지 않는 자본주의는 물질 내부에서 핵에너지라는 '외부'를 발견했다. 그런 의미에서 원자력 발전은 제한 없는 개발주의의 망령이다. 원전은 가동을 시작하면 출력을 조절하기 어렵기 떄문에 시간과 계절에 따라 잉여전력이 발생한다. 잉여전력은 과소비를 부추기고, 과소비는 또다른 원전을 짓도록 유도한다. 고소 이와사부로와 <도래해야 할 봉기> 번역위원회는 '원전 반대=자본주의 반대=제국 반대'라고 본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수습하려는 정부와 기업은 해일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고용해 재해 지역의 뒤치다꺼리를 시킨 뒤 내다버리고 있다. 7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드물었지만, 원전 반대 시위에는 수 만 명이 몰려들고 있다. 그 중에는 기존 좌파의 시선으로는 시위대에 어울리지 않는 '아마추어'들이 많았다. 깃발을 들지 않고 심각한 표정도 짓지 않는 사람들은 단지 노상의 점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듯 보였다. 피폭 노동을 포기하고 달아난 자위대원, 비국민을 자처하며 원전 반대 시위에 나온 연예인 등, 일본 사회가 강요해온 '역할과 책임'을 내팽개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대의 구심력이 아니라 이탈의 연쇄. 아나키즘의 시작이다.
2001년의 '그라운드 제로'는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였지만, 10년 뒤에는 동일본과 후쿠시마 원전이었다. 비대한 몸집의 자본과 제국에게 그라운드 제로는작지만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 바로 그곳에서 좌파, 우파, 자유주의자, 아나키스트들이 각기 다른 사고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사상으로서의 3·11>은 그 난삽하지만 의미 있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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