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기독교
김영민 지음/글항아리/144쪽/9000원
여기 10명의 기독교인, 정확하게 말하면 개신교인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으며 한때 교회에서 침식을 해결하는 일이 잦을 정도로 대학부 활동에도 열심이었던 철학자 김영민은 이 10명의 신도들을 통해 한국 개신교의 모습을 읽어낸다. 짐작이 가다시피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10명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얼부 허구가 가미됐다고 한다.
여기서도 문제는 돈이다. 에수가 가난뱅이였다는 사실을 잊은 듯 혹은 모르는 듯,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돈이 넘친다. 으리으리하게 지어올린 대형 교회가 다 돈 아닌가. 수십 년간 교회에 다닌 저자의 어머니는 잊을 만하면 말했다고 한다. “교회에서도 돈이 있어야 대접받아!” 이건 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허나 교회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곳에 서있다.
A는 지난 10년간 한 차례도 주일 대예배에 빠진 적이 없다. 수요 저녁 예배에도 나가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금요 철야기도회에도 나간다. 한국 교회의 관점에서 무엇보다 어여쁜 일은 A가 수입의 10분의 1을 헌금하는 십일조가 성에 차지 않아 십이조를 낸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약사로 제법 치부한 그는 교회 재무부장으로 성실히 봉사해왔다. 얼마 전에는 나날이 늘어가는 노인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한 대에 수백만 원 하는 자동안마기 3대를 구입해 교회에 헌납했다. 교회는 수요예배 시간에 ‘자동안마기 봉헌식’을 거행하고 잠시 시연도 했다. 목사는 하나님이 A를 어여삐 여기신다는 축원을 전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 구절은 한때의 우화로 소모됐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의 치부와 개신교 교리 사이의 친연성을 일찌감치 밝힌 바 있다. 근면히 일해 돈을 많이 버는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다!
그러나 인간은 돈만으로는 살 수 없다. “끝끝내 상징적 존재인 인간은 매사에 의미와 권리 원천을 추구하며, 따라서 부자들은 부의 현실을 넘어 ‘부의 권리’까지 원하기 마련이다.” 돈만 많다고 재벌이 아니다. 이병철, 정주영에게는 창업에 얽힌 신화가 필요하다.
현대의 교회는 부자들의 돈과 노역을 정당화하고 축원했다. 빠른 시간에 부를 축적한 한국에서 번성한 교회는 그 정도가 더했다. G의 사례를 보자. 목사, 변호사, 의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어른들이 윗대에 자리한 가문에서 태어나 성실하게 공부한 끝에 국내 유수 재벌기업 계열의 종합병원 내과과장이 됐다. “봉급만 1000만원”에 이런저런 부수입, 고등학교 교사인 아내의 월급까지 합하면 그 벌이가 만만치 않다. 지금은 “안전한 제도 속에서 상식적인 삶에 쉽게 만족하는 타입”이 됐지만, G도 젊은 시절 한때는 종교적·사회적으로 제법 진보적인 티를 냈다. 틸리히의 영문판 설교집을 끼고 다녔고, 슈바이처, 본 회퍼 등에 감화돼, 의사가 되면 아프리카 오지로 떠나 의료선교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지금 G는 자신의 ‘신앙신심’을 지키기 위해 접대를 받아 노래주점에 갈지언정 현금만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점을 긍지를 섞어 이야기한다. 매달 수백만 원의 헌금을 바치고, 골프를 치지 않으며, 외제차를 타지도 않는다. 성실한 가장이자 독실한 신도인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김영민은 말한다. “개인과 체계가 그 뿌리에서부터 사통할 수밖에 없는 세속에서, 개인의 상처와 패착이 개인의 것만이 아니듯이 개인의 사회적 성취와 물질적 풍요가 과연 그 개인만의 것으로 가뿐히 할당될 수 없다면…” 우리의 스승 예수를 보라. 그는 자신이 몸담은 체제와 늘 ‘창의적으로 불화’했다. 스승의 삶을 생각한다면 “마땅히 그 벌이와 벌이의 체계를 성찰해야”하며 “그래서 그 체제 속의 남다른 수확을 마치 신의 은총인 듯 희떱게 구는 일”을 피해야 한다.
융통성을 발휘해, G의 신분과 부에 대해 고까운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G의 부가 교회 내에서도 인정과 존경의 잣대, 신의 축복에 대한 증거로 기능한다는 점은 분명 문제다. ‘보편적 포용성’을 말하는 기독교 내부조차 세속의 신분, 재력을 바탕으로 재편돼서는 안된다. 그것이 사실상 ‘노숙자’였던 예수의 뜻일게다.
신도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세속적으로 행운의 삶을 누리는 남성 A, G와 달리, B는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여성이었다. 일제시대에 무지렁이 아버지, 폭군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전쟁 직전 떠밀리듯 혼인한 남자는 알고보니 빨치산이었고, 남편은 하룻밤의 정을 남긴 채 입산해 소식이 끊겼다. 눈에 띄는 외모를 갖고 있던 B는 도시로 나와 이런저런 일자리를 전전하다 엘리트 남성의 구애를 받았다. 남성 집안의 반대에도 둘은 결혼했으나 이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파경을 맞았다. 어린 남매와 얼마간의 위자료를 든 채 60년대의 도시 빈민가로 들어선 여인 B는 부모에게서건 두 남편에게서건 평생 사랑이라곤 받아보지 못한 처지였다.
한국 개신교는 이 빈민 여성들을 전도의 목표로 삼았다. B는 다정다감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백인 남성 예수에게 매료됐다. “외롭고 괴로운 이들은 다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B는 부모와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을 원없이 받았다. 예수의 발을 머리카락으로 씻어주었던 팔레스타인 여인들이라고 다를까.
문제는 세속의 관계에서 ‘소외된 애정’이 신이나 그 매개자이자 대리자인 목사에게 고착되는 과정에서, 주체가 초월성을 체험하기는커녕 자기동일화에 머문다는 것. B는 예수로부터 사랑받았으나 그 사랑을 세상에 나눠주지는 못했다. 기실 사랑받지 못한 이가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는 어렵다. B에게 종교란 “자폐나 나르시시즘”일 뿐이었다.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보상적 환상”일 뿐이었다.
D와 그를 위시한 일곱 명의 여성 신도들은 교회에선 어울리지 않을 법한 별칭인 ‘팔선녀’로 불렸다. 본인들의 뜻과 관계없이 붙여진 이 별칭에서부터 교회 주류 세력과의 긴장 관계가 보인다. 서른 남짓한 미혼여성이었던 D와 ‘선녀들’은 매일 교회의 으슥한 골방에 모여 밤을 새며 기도와 찬송을 했다.
D는 목사의 권위에 정면 도전하지 않았다. 팔선녀들이 ‘신비체험’을 했다는 소문도 성령운동에 열중했던 당시 교회 분위기에선 별스럽지 않았다. 그럼에도 D를 두고 교회 내 주류세력이 비난의 시선을 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엉뚱하게도 D가 “음탕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당시 대학부 회장이었던 김영민은 D를 “워낙 얼굴의 윤곽이 짙어 흐지부지한 인상이 아닌 데다 유달리 화장이 거칠었고, 표정이나 동작도 자유분방하거나 심지어 도발적이었으며, 보기에 따라서 매우 육감적, 심지어 관능적인 인상을 풍기기도 하였다”고 돌이킨다. 70년대말~80년대초의 종교적 도덕주의자들에게 D의 육신은 그 존재만으로 위험천만했다.
고래의 기독교 신비가들이 남긴 문헌에는 “영성과 관능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시사하는 글”이 적지 않다. “종교와 몸의 자리가 얼핏 대극적이기는 하지만, 실은 그 상극의 외피가 거대한 원환을 이루면서 내밀한 상생을 이루어간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라고 김영민은 묻는다. 그러나 한국의 소심한 개신교인들은 자신의 몸과 욕망을 편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영혼을 떠받드는 대신 육체를 경멸하는 서양 중세의 사고에 지나치게 익숙했다. 몸의 조화로움이 아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사실에 무지했다. 시간이 흘러 팔선녀는 해체됐다. 김영민은 이후 D를 단 한 번 만났다. D는 자신이 차린 음식점을 찾아준 김영민에게 녹두전을 부쳐오며 환하게 웃었다. 그로부터 3년 뒤 김영민은 D에 얽힌 비극적인 소식을 듣는다.
신도만 문제가 아니다. 성직자들에게도 그만큼의 문제가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성서학자이며 틈틈이 주일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목사 C는 금요일 저녁이면 꼬리곰탕 같은 기름진 음식을 섭취한 뒤 강남 유흥가로 향한다. 그는 “제도권력적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선택적·특권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남성이다. 늦깎이로 신학교에 들어가 고향이 아닌 곳에 아담한 교회를 일으킨 목사 F는 ‘말’이 문제다. 많은 목사들이 그러하듯 달변에 언탐(言貪)이 심한 그는 말이 말을 이끄는 단계로 올라 종종 자기 말에 도취되는 듯 보인다. 가장 지성적인 감각의 자리에 오른 시각이 그 대가로 실재와의 조응력이 떨어진 반면, 니체, 쇼펜하우어 등의 주장처럼 청각은 실재에 직접적으로 가닿는다. 사람 좋고 목소리 좋은 목사 F는 스스로의 말과 음성에 빠져 카리스마적 권위를 부리는 듯 보이지만, 신뢰와 우정의 관계를 얻지 못한 카리스마는 나르시시즘의 함정으로 굴러 떨어질 뿐이다.
책에 소개된 10명의 개신교인 중 2명은 한국 개신교의 미래에 한 가닥 희망을 걸게 한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혼인 E는 산골 교회 부목사다. E는 김영민의 강의를 청강하던 학생이었는데, 여느 목사들의 표정, 언변을 갖추지 않은 영락없는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시끄럽고 어두침침한 버스 안에서도 독서하고 사색하며 매사에 “무상의 노동을 곡진하게 쏟아붓는” 생활 태도를 가진 그는, 김영민이 보기에 한국 교회에 부재한 ‘장소감’의 기미를 나타낸다. “한 장소를 안다는 것은 그 땅의 영기에 대한 두려움과 공경심,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기에 이웃, 장소, 교회를 그렇게 대하는 E야말로 ‘지는 싸움’을 통해 역설적인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J는 스스로 개신교인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를 개신교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지표는 희미하다. 특히 그는 지역에서 유명한 지관이라는 점에서 기독교 교리와 양립하기 힘든 삶의 태도를 갖고 있다. J가 지관 행세를 할 때마다 소문을 들은 마을 교회에서는 그를 징벌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곤 했는데, J는 무시하거나 우스갯소리로 일관해 충돌을 무마시킨다. J는 “지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람살이’”이며 거기에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 지역의 현실과 전통에 착근한 신앙생활, J의 문제의식이다.
‘믿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 ‘돼야’ 한다. 그러므로 믿는 ‘신자’가 아니라 되는 ‘제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제자는 촛농의 힘에 의지한 이카루스처럼 어렵고, 신자는 쓰레기통의 파리 떼처럼 번성”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예수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에 도전한 이였다.
프로이트의 사유틀이 자주 언급되고, 니체, 하이데거, 아렌트, 푸코까지 경유하는 10편의 글들이다. 지적으로 자극하고, 종교적으로 문제의식을 깨운다. 아니 여기 언급된 한국 개신교의 문제들은 이미 너무 잘 알려진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문제는 ‘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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