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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가 중국을 망쳤다? <강호중국>

강호중국

위양 지음·서아담 옮김/학고재/336쪽/1만6000원


생물학을 전공한 저자 위양은 1980년대 중반 과학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농촌으로 갔을 때의 경험담을 전한다. 광둥성의 한 농촌 마을을 찾은 그는 시험관 바나나 묘목을 보급하려 했는데, 농업과학연구소의 한 친구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관료를 찾아가야 한다고 귀띔했다. 관료를 만나러 간 곳은 관공서가 아니라 술집이었다. 지역 관리들은 동네 술집을 관리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전화 통화와 측근의 전언으로 공무를 집행했다. 이듬해 한 민영 회사의 책임자로 푸젠성을 찾아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관리를 만나기 위해선 술집에 가야했다. 관리는 술집 여사장의 옷 속에 손을 집어넣은 채 저자의 말을 흘려 듣고 있었다. 


이와 상관 없어 보이는 또다른 일화. 한국에서도 수많은 독자를 거느린 <삼국지>의 도원결의 장면이다. 유비, 관우, 장비는 의형제의 연을 맺는 자리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한날한시에 죽자”고 맹세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남자가 ‘유사 가족’의 연을 맺은 것이다. 


고대 영웅의 의리와 현대 관료의 부패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저자는 무협지에서 많이 들은 단어인 ‘강호’(江湖)를 언급한다. 여기서 강호는 “정통 사회 바깥의 사회구조를 통칭하는 말”이다. 


강호의 탄생을 살피기 위해선 중국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진대 이후 중국은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확립했으며, 다자다복, 대 잇기, 자손 번성 등을 중시하는 유교 가치체계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중국 땅의 생산력이 중국인을 먹여살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많은 아이를 낳아 대를 잇는 것을 삶의 중요한 목표로 삼았고, 숱한 인재와 천재에도 중국 인구는 꾸준히 늘었다. 하대 초기에서 진대 말기까지 1900년동안 인구는 1천만~3천만명이었는데, 북송 시대부터 명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5천400만~1억1천만명, 청대 초기부터 중화민국까지는 9천만~4억4천만명을 오르내렸다. 



영화 <소오강호>의 한 장면. 저자는 중국인들이 무협지를 너무 좋아한다고 개탄한다. 


14세기 명대 초기 첫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중국에서 1인당 경지면적이 가장 적었던 푸젠성에서 식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푸젠성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동남아시아, 일본 등지로 갔고 그곳에서 해적이나 행상이 되고, 민간결사를 조직하고, 밀수를 했다. 정주를 기본으로 하는 농경사회는 이 시기를 즈음해 균열이 생겼다.


물론 명대 이전에도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권위에 복속되지 않는 사적 관계망이 형성돼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유비·관우·장비의 관계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식량부족과 인구과잉으로 유민이 많아지면서 강호는 더욱 널리 퍼졌다. 고향의 가족을 등지고 떠난 이들은 새로 머무른 곳에서 가족과 유사한 관계망을 형성해야 했다. 강호에선 사부, 사모, 사형, 사제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며 관계를 강화했고, 각 지역 실정에 맞는 풍속, 관행을 창조했다. 왕, 왕조가 바뀌는 와중에도 강호는 사회 하층민을 응집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유교적 가치관이 붕괴된 자리에 들어선 강호는 중국의 완전한 와해를 막은 접착제 역할을 했다. 


상고 시대의 강호는 학자, 등짐장수, 협객 등 이탈 유민에 불과했다. 이들은 현실 정치에 개입할 의지도,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근대의 강호는 체제 안으로 섞여 들어가 정치권력을 움켜쥐기도 했다. 중화민국의 지도자 대부분은 여러 가지 비밀결사에 소속돼 있었다. 장제스는 의형제, 처가 등 강호의 수단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펑위샹, 장쉐량 등 군벌과 의형제를 맺어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꾀했다. “세계의 민주 공화국 원수 가운데 강호의 의형제와 직계 군대에 의지해 정권을 유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중화민국만이 비밀결사와 사적인 관계망의 토대 위에 수립되었다.… 중화민국은 진정한 법치국가도, 유교 국가도 아니었다. 차라리 강호 국가에 가까웠다.”


물론 근대 사회의 성립 과정에서 한 개인이 가족, 친구 등으로 구성된 1차 집단을 넘어 법적 관계, 계약 관계의 2차 집단에 속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근대인들의 이주는 큰 틀에서 볼 때 자원의 재분배 과정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서양 사회가 일찌감치 현대화한 원인을 기독교 교회가 주도한 단체 생활의 전통에서 찾기도 한다. 중세 상인 길드, 이후엔 법인 단체가 이 전통을 이었다. 근대의 계약 집단은 가족에서 이탈한 개인이 살아갈 수단이 됐다. 


그러나 강호라는 사적 관계망이 근대 중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부패의 원인이 됐다는 점도 분명하다. 현대 중국의 지도자들은 집권 초기마다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고 다짐하는데, 이러한 잦은 다짐은 부정·부패가 여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저자는 교통경찰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 중국의 교통경찰은 ‘물을 내보내 물고기를 기르는’ 행동을 한다고 한다. 말인즉, 엄한 기준을 적용해 교통법규를 어기는 사람에게 뇌물을 받은 후 법을 어기는 사람이 줄어들면 단속을 푼다. 운전자들이 다시 법을 어기기 시작하면 단속을 강화해 뇌물을 받는다. 교통경찰의 목적은 운전자들이 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머니를 불리는 것이다. 민원을 제기했을 때 비공식적 연줄로 해결이 된다면, 공식 라인에 의지한 사람만 억울해진다. 이러한 사례가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질 때, 그 사회는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많은 상황에서 ‘악행’을 단순히 도덕적 위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정식 규칙이 통제를 잃으면 비공식 규칙이 발붙일 틈이 생긴다.” 책에 나온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며, 결과가 노력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강호의 문제점이다. 1949년 공산당 정부가 세워지면서 강호 민간 결사는 ‘반혁명’ 세력으로 규정돼 3년 이내 소멸했지만, 국가의 공식 기관을 파괴한 문화대혁명 이후 강호는 기사회생했다. 


저자는 오늘날 강호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용어 네 가지를 꼽는다. 관계, 인정, 체면, 혼(混)이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꽌시’가 바로 관계다. 관계는 일종의 ‘은폐된 조직’이다. 수많은 개인의 결합으로 형성됐으면서도 명문화된 정식 규정도, 회원과 비회원의 구분도 없다. 관계망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고 끝없이 변한다. 상대의 의도는 계약서를 제시하기 전에 분위기로 알아차려야 한다. 국가의 사회보장 기능이 확립되지 못했을 때 사적 관계망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친척, 동향인, 동창, 사제 등이 관계를 맺어 서로를 도왔다.


인정은 봉건적인 예교가 무너지고 입헌정치가 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타났다. 인정은 청대 초기부터 정, 사회적 지위, 이익 거래를 망라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인정은 선물, 돈, 도움과 같이 거래를 위한 매개체인 동시, 거래를 통제하는 관례다. 유가에선 “부지런히 일할 뿐 성과를 따지지 않는 헌신”을 강조했는데, 이것이 속화돼 인정 개념이 됐다. 현대 중국의 뇌물 역시 ‘오가는 인정’이란 말로 건네지면서 부패 지수를 높이는데 한몫했다. 인정은 정인듯 보이지만, 그 핵심은 이익교환이다. 


체면은 “비이성적 가치관이자 약간 황당한 윤리적 감정”이다. 물론 고대에도 체면이 있었고, 영국에서 쓰이는 ‘lose face’란 숙어는 “체면을 잃다”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이나 서양의 체면이 목적인 반면, 현대의 체면은 수단이다. 내가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면 상대도 나의 체면을 세워줘야 하는 ‘거래 행위’가 된 것이다. 중국에서 체면은 곧 신용이며 자본이다. 플래티넘 신용카드를 소지한 이는 일반 신용카드를 소지한 이보다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처럼, 체면 있는 이는 없는 이보다 더 많은 신용 자본을 가진다. 고급차를 타고가 상대방을 만나면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고급차가 보여주는 그 사람의 체면 때문이다. 


혼은 중국인이 아닌 이들에겐 다소 낯선 개념이다. 혼은 1차적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세상일에 무심하게 지내는 것을 뜻하지만, 이면에는 실속을 차리면서 상대방을 싸워 이기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비용은 적게 들고 이득은 많이 얻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중국인들이 법제보다 강호에 의지하는 것은 그 쪽이 편하고 이득이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식량, 임금, 복리 후생, 생활필수품 등의 영역에서 공급 능력을 향상시키고, 실업 구제, 의료보험, 연금보험 등 법률 체제의 사회보장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시민이 체제 밖 불법 체제에 도움을 청하는 것보다 편리하도록 시정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법제의 거래 비용이 강호의 거래 비용보다 낮으면, 강호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



잘나가다 망한 보시라이


책은 주로 민간 부문의 사례를 들면서 강호의 부당함, 해악을 이야기하지만, 정치 지도자들도 강호에서 자유롭지 않다. 치정, 권력, 돈이 복잡하게 얽힌 보시라이 스캔들 역시 강호의 해악을 보여준다. 저자는 책에서 같은 유교문화권이었으면서도 앞서 혼란을 극복하고 체제를 정비한 한국, 일본을 본받아야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 싶다가도, 특정 학교, 교회, 고향과 관련된 강호 인사들에게 국정을 장악케 해 물의를 빚었던 지난 5년의 정권을 돌아보면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통령의 강호 친구들은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교도소에 갇히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