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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출판계에선 이 책에 실린 공지영 작가의 사진을 두고 화제가 일고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는 공 작가와 찍어준 사람, 출판사 편집자만 알 일이다. 아무튼 즐거움을 선사했으니 다행인 사진.






제목을 보고 두메산골의 대안학교 이야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요절복통 시트콤의 대본에 가깝다. 시트콤 주연은 버들치 시인, 낙장불입 시인과 그의 아내 고알피엠 여사, 저자인 꽁지 작가 등이고, 조연은 강남좌파, 최 도사, 스발녀, 가수 등불, 수경·연관·도법 스님 등이다.

그런데 이 시트콤엔 눈시울 시큰해지는 대목이 종종 박혀 있다. 도시에서 쫓겨나 혹은 벗어나, 스스로 가난해지고 싶어, 뭇 생명을 사랑해, 아니면 그저 아무것도 하기 싫어 지리산을 등에 지고 섬진강을 내다보며 옹기종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과 지리산을 오가던 공지영 작가가 지리산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써보라고 권유하다 못해 답답해서 직접 나서 쓴 결과가 이 책이다.

먼저 버(들치) 시인의 사연. 도시의 잘나가는 직장을 다니던 어느날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나” 생각했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산골로 들어왔다. 평생의 여성 편력이 “네 번 반”이라는 그는 혹여 독신인 자기가 죽기라도 하면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두려워 통장에 관 값 200만원을 넣어두고, 넘치는 돈은 시민단체에 기부한다. 지지리 운도 없는 강도를 만나서는 “돈이 너무 없어서 거시기”하다며, 카드 비밀번호 알려주고 금반지도 빼준 사람이다. 먹다 남은 밥 알갱이나 쌀뜨물로 집 앞 개울에 버들치를 키웠는데, 건장한 남자들이 전기충격기로 버들치들을 잡아가자 용감하게 대들다가 맞고 뻗었다. 버 시인은 이후 마당에 연못을 파고 버들치를 기른다고 한다. “시인은 살아 숨쉬는 모든 존재에 약하다”는 것이 꽁지 작가의 전언이다.

낙(장불입) 시인은 좀 더 극적이다. 일찍이 시인으로 등단해 서울의 큰 신문사 기자가 됐던 그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서울에서 쫓겨나 남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해가 가기 전 어머니를 잃었고, 아내와 아이들과 이별했으며, 수중엔 50만원이 남았다. 그의 아버지는 빨치산이었다. 지리산을 택한 건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누군가 버리고간 초가삼간에서 삶을 시작해 “밥을 주면 밥을 먹고 돌을 던지면 돌을 맞으며” 첫 3년을 버텼다. 지리산의 소출을 이용해 술을 담갔고, 술병에는 그리운 사람들, 악연인 사람들의 이름을 써넣었다. 머리와 수염이 잡초처럼 자라자 도사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지리산 자락 사람들의 삶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수경’이란 사람이 찾는다는 소식에 어여쁜 여자를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더니 두꺼운 안경을 쓴 중년의 수경 스님을 만났다. 이후로 그는 온갖 이름의 도보순례, 생명운동, 삼보일배를 10년간 따라나섰다.

꽁지 작가는 “눈 큰 서울 년”이다. 심해어족 출신이라 해발 1700m만 올라가도 고산병에 걸리지만, “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는’ 도시의 삶이 역겨워질 때” 지리산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권한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연봉 200만원’으로 살아가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은 열다섯에 깨우친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것’이라는 교훈을 깨닫는다. 무학이지만 염치는 있고 종교는 없지만 하늘 무서운 줄 아는 한 농부는 40년 동안 나무를 심고, 암에 걸린 아내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남편에게 ‘빤짝이’ 옷을 파는 가게를 내달라고 한다.

낙 시인은 시를 썼다.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물론 꼭 오라는 얘기다. 경향신문 연재물을 보완해 엮었다. 1만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