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로마와 그에 이어지는 중세 시대에 관심이 많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아니지만, 괜찮은 대중서가 있으면 손길이 뻗는다. 존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구픽)란 장편 소설이 출간됐다는 소식에 마음이 동한 것도 그 때문이다.
로마의 첫번째 황제(본인은 '제일 시민'이라고 칭했지만)인 아우구스투스의 삶을 편지, 일기, 보고서 등의 형식으로 엮어낸 소설이다. 아우구스투스, 키케로, 아그리파, 클레오파트라,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등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건 문서들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창작이다.
정작 아우구스투스의 목소리는 소설 마지막의 서한문을 통해서야 나온다. 이전까지 아우구스투스의 면모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아우구스투스, 즉 옥타비우스가 애송이였던 시절, 정적들은 그를 무시했다. 어쩌다 카이사르의 눈에 들어 그의 양자가 돼 이름을 얻었지만, 별다른 카리스마는 없는 인물로 파악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옥타비우스의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성품은 난세를 버텨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음이 밝혀진다. 옥타비우스는 힘을 얻을 때까지 정중동하며 누구의 마음에도 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세심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물론 옥타비우스가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궁극의 권력을 쥔 배경에는 얼마 정도의 행운도 작용했겠지만, 오직 준비된, 그리고 시대에 걸맞은 행동양식을 지닌 사람만이 그런 행운을 거머쥘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의 삶이야 어느 정도 널리 알려졌지만, 흥미로운 건 소설 후반부에 상당수 할애되는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의 삶이다. 옥타비우스의 고명딸로 그의 사랑을 흠뻑 받았던 율리아는 로마의 안정과 국가의 원활한 통치를 위한 아버지의 전략에 따라 수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국가의 안정, 아버지의 뜻이라는 '의무'를 따르는 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여긴 율리아는 별다른 불만을 가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의무'에 회의를 느꼈다. 율리아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는 않지만, 결혼 제도의 구속을 넘어 육체의 유희에 탐닉하는 것으로 국가와 아버지에 반항했다. 이전까지 율리아는 육체엔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으로 알았으나, 식민지에서 '여신 숭배' 체험을 거친 뒤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물론 그러한 모험의 끝은 국가, 아버지의 뜻과 충돌해 음울한 결과를 낳는다.
<아우구스투스>란 제목을 단 소설에 '세계의 주인'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바람난 딸 율리아를 비슷한 비중으로 배치한 선택은 과감하다. 이런 구조는 공적인 업적을 이루는 과정에 희생되는 사적인 관계의 비극을 드러낸다. 게다가 '공적인 업적'이란 것도 은근히 허무하다. 에필로그는 아우구스투스의 마지막 주치의의 편지다. 주치의는 40여년전 황제가 죽을 떄의 모습을 그리면서, 새로 등극할 황제가 아우구스투스의 못다한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한다. 새로 등극할 황제의 이름은 네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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