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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남자의 죽음, '왕좌의 게임'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누구나 주인공으로 생각했던,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이 정을 주었던 인물을 사정 없이 죽여버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 시초는 시즌 1  종반부 에다드 스타크의 참수 장면이다. 사전에 정치적으로 정지된 바에 따르면, 스타크가 죄를 고백하면 조프리 왕은 자비를 베풀어 스타크를 풀어준 뒤 스타크가 영주로 있는 윈터펠로 쫓아내기로 돼있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제멋대로인데다가 갓 물려받은 권력의 크기에 도취된 소년왕 제프리는 이후의 정치적 후폭풍 따위엔 아랑곳 없이 스타크의 목을 베도록 명한다. 실질적으로 수렴청정을 하는 어머니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시즌 6의 종영에 즈음해 조지 R R 마틴의 원작 소설 1부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이전엔 번역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던 모양인데, 이번 번역은 깔끔해 보인다. 드라마를 통해 대략의 줄거리를 알고 있기에 독서의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에다드 스타크가 죽는 장면을 빨리 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드라마도 훌륭했지만, 소설은 드라마에서 간략히 소개된 인물의 내면과 행동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알려준다. 에다드 스타크는 누가 뭐래도 왕좌에 오를 자격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고결하고 정직하고 덕망있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육체와 의지가 모두 강인하다. 가족을 사랑하고, 백성을 아낀다. 피를 보는 걸 즐기진 않지만, 필요할 땐 주저없이 직접 수행한다. 그가 왕좌를 차지하기에 부족한 점은 왕좌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없다는 것 뿐이다. 


마틴은 그런 에다드를 가차없이 죽여버린다. 1부에서 에다드의 정치적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세르세이는 "왕좌의 게임이 시작되면 이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하는데, 이는 진리였다. 오늘의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옛 이상을 숭배하던 에다드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다. 고결한 이상주의자 에다드의 죽음으로 1부를 마친다는 점에서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는 이후 잔혹하지만 현실적인 권력 투쟁의 실상으로 접근해간다고 볼 수 있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개성이 우리 삶에서 마주칠만한 유형의 인간으로 수렴된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장점이다. 로버트 바라테온은 현재 왕좌에 앉아있긴 하지만,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진군하는 장군이었던 그는 왕이 가져야할 현명함, 인내심, 인자함을 지니지 못했다. 그는 왕좌에 앉아서도 전장을 그리워하는 술주정뱅이 임금이 돼있다. 에다드의 부인 캐틀린은 현명하고 신중하면서도 필요할 땐 과감한 여인이다. 부창부수로, 남편 에다드와 비슷한 유형의 인간이다. 라니스터가의 '꼬마 악마' 티리온은 타고난 장애로 규정된 인물이다. 그는 시리즈에 등장하는 그 누구보다 냉소적인 인물인데, 그런 면모 덕분에 잔혹하기 그지없는 '왕좌의 게임' 속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애초 누구의 선의를 기대하기보다는 인간의 욕망과 악의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에다드의 장녀 산사는 꿈꾸는 소녀다. 냉혹한 현실 대신, 동화 속 낭만을 믿는다. 물론 그 믿음은 산사를 배신한다. 드라마 팬들 사이에 '용엄마'로 불리는 대너리스는 조금씩 성장하는 인물이다. 대너리스는 처음엔 산사와 다를 바 없이 순진한, 사실은 어리석은 소녀였으나 기마족의 왕 칼 드로고와 정략결혼을 하고 '칼리시'의 자리에 오르면서 차츰 자신의 능력을 자각한다. 대너리스는 명색이 판타지지만 사실은 정치드라마인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가장 판타지적인 인물이다. 드래곤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고,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따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존 스노우. 그는 1부에선 아직 어린애다. 의무와 욕망,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


드라마를 통해 줄거리를 다 알지만 2부 <왕들의 전쟁>이 나오면 다시 구해 읽을 생각이다. 그러고보니 지난 드라마도 다시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