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10분을 그냥 멍하니 쳐다봄.
때론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혁신적이다. 위대한 전통을 가진 문화권은 그래서 강하다.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통은 할리우드에 있다. 할리우드는 때로 지지부진하거나 비틀거리지만, 금세 기력을 회복해 새로운 영화들을 쏟아낸다. <라라 랜드>는 195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21세기 관객들의 눈과 귀를 매혹시킨다. ‘황홀하다’ ‘마법 같다’는 표현은 이런 영화를 위해 아껴두어야 한다.
꿈을 품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로스앤젤레스.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는 스튜디오 내의 카페에서 일하며 수시로 오디션을 보지만 매번 낙담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시류에 맞지 않는 1950~1960년대풍 프리 재즈를 좋아하는 탓에 별 볼 일 없는 연주 경력을 이어간다.
우연히 만난 미아와 세바스찬은 사랑에 빠지고,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간다. 미아는 그저 그런 오디션에 응하기를 그만두고 스스로 대본을 쓴 1인극 무대를 준비한다. 생계를 고민하던 세바스찬은 학창 시절 라이벌이자 대중적인 재즈 음악을 추구하는 키이스(존 레전드)의 밴드에 들어간다.
간단히 요약될 수 있는 줄거리인데다가 별다른 반전도 없다. 이렇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젊은 남녀의 이야기는 현대적으로 활용된 뮤지컬 테크닉을 통해 새롭게 거듭난다. <라라 랜드>는 꽉 막힌 고속도로 위 차량 속 승객들이 갑작스럽게 노래하고 춤을 추는 5분간의 롱테이크 오프닝부터 관객의 혼을 뺀다. 이 한 장면을 위해 배우들은 3개월을 리허설했고, 실제 고속도로에서 단 한 차례의 촬영으로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주연 배우들은 실제로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전문 가수처럼 뛰어나진 않지만 인물의 감성을 전하기에는 충분히 아름다운 노래를 한다. 석양 무렵의 로스앤젤레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두 남녀가 함께 추는 탭댄스 역시 6분간의 롱테이크로 완성됐다. 빼어난 피아니스트가 돼야 했던 라이언 고슬링은 몇 달간의 혹독한 연습 끝에 모든 연주를 실제로 해냈다. 눈을 현혹하는 현란한 편집 기술 대신, 오직 다채롭게 몸을 쓸 줄 아는 배우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할 말을 다한다.
<라라 랜드>에서 사용된 테크닉은 매우 고전적이다. 2.55:1이라는 화면 비율은 텔레비전에 대응하기 위한 1950년대 할리우드 기술 혁신의 산물이다. 그리피스 공원 천문대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두 남녀 배우는 와이어에 매달려 별을 배경으로 날아오른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유치하고 촌스럽기는커녕 최면에 걸린 듯 아름답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대안적 연애담을 상상하는 종반부의 한 장면은 시간을 자유롭게 응축하거나 확장하는 영화 매체 고유의 장점을 영리하게 사용한 대목이다. <이유 없는 반항> <사랑은 비를 타고> <쉘부르의 우산> 같은 고전의 영향력도 확인할 수 있다.
눈과 귀가 행복해지는 영화지만,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사람들을 그리는 영화는 아니다. 거대한 벽처럼 가로막힌 현실 앞의 절망, 인생의 다음 단계로 발을 디딜 때 필요한 용기와 지혜, 아름답지만 쓸쓸한 젊은 날 사랑의 추억은 많은 관객이 공감할 만한 모티브들이다.
이렇게 감정과 기술을 능숙하게 다룬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올해 불과 31세다. 전작 <위플래쉬>로 주목받은 그는 <라라 랜드>를 통해 미래의 할리우드를 이끌 만한 확실한 재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라 랜드>의 제작비는 2000만달러로 추정되는데, 이는 <위플래쉬> 제작비의 10배다. <라라 랜드>는 일찌감치 내년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라라 랜드>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엠마 스톤은 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7일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하며, 아이맥스 버전으로도 볼 수 있다.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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