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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해서 뭐하나, <여행의 사고>

여행의 사고(전 3권)

윤여일 지음/돌베개/1권 352쪽, 2권 400쪽, 3권 368쪽/1·3권 1만8000원, 2권 2만원


왜 여행을 하는가. 누군가는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누군가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려고,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물건을 사려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사는 작가에게 허락된 특권이기도 해서, 동서 고금의 많은 작가들이 그럴듯한 여행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요즘엔 여행 인구가 늘어나면서 여행작가가 되려는 이도 많아졌고, 여행작가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나 과정도 생겼다. 


<여행의 사고>는 여행기이되, 여행기가 아니다. 저자는 멕시코, 과테말라, 인도, 네팔, 중국, 일본의 여러 장소들을 여행했지만 여느 여행기처럼 여행지의 풍광, 음식, 쇼핑장소, 사람 이야기를 쓰진 않는다. 대신 여행자의 윤리, 여행을 통한 내면의 변화, 여행지의 역사와 그에 대해 가져야할 여행자의 태도를 서술하는데 대부분의 공을 들인다. 그래서 물좋고 바람좋은 곳에 가서도 이 젊은 사회학자는 줄곧 머뭇거린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남의 일상에 파란을 일으키면서, 그 고유 의미를 맥락에서 빼돌리는 행위 아닌가. 누군가에겐 일상의 장소일텐데, 범죄율이 높다는 경고를 받았다는 이유로 조급하게 겁먹은 채 다니는 것이 옳은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여행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러한 태도는 답답해 보이기도 할테지만, 치열하고 엄밀한 자기성찰이야말로 지식인이 가져야 마땅한 그러나 요즘엔 종종 간과되는 특성이다. 


동아시아의 사회와 사상을 연구하는 저자 윤여일은 2007년부터 연구실을 벗어나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중 하드 드라이브를 잃어버린데다가 한국에서 수리를 맡겨놓은 노트북도 포맷돼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모두 날려버린 경험도 연구실 바깥으로 나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토록 열심히 읽고 썼는데, 파일이 사라지고 나니 무엇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지식을 온전히 육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에게 여행은 책에서 얻은 지식을 몸에 새겨 넣는 작업이었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기존에 지니고 있던 앎으로 구체적인 생활의 장소를 내리누르는 일을 피하고 싶다. 인문학적 취미에 기대어 한 장소를 쉽사리 의미로 포장해 내놓는 일도 경계하고 싶다.(…) 그리하여 그 장소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 방황과 곤혹스러움을 가감 없이 토로하고, 다시 그 어려움을 사고의 소재로 삼고 싶다. 그리하여 정리된 결론보다는 결론에 다다르지 못할지언정 생각이 거쳐간 절차들을 적어보고 싶다.”


사람들은 단정하길 좋아한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확실히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였어”, “네팔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여”, “중국도 많이 발전했더군” 같은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말들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 알 수 있다. 현지 주민도 아닌바에야, 기껏해야 며칠, 몇 주, 몇 달을 머무는 여행객이 그 지역 문화와 사람의 속사정을 그토록 쉽게 알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중국’을 이야기할 때, 그 넓은 중국 중 대체 어느 지역을 말하는가. 한국만해도 서울의 강북과 강남이 다르고, 강남에서도 동별로 사정이 다르고, 옆집 사람끼리도 생각이 다를텐데,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사람만을 만난 여행객이 어떻게 여행지에 대해 몇 마디 문장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여행지 고유의 문화 논리를 습득하지 못했을 때 어설픈 나라론 혹은 인간론이 등장한다. 나라론이란 한 나라의 특성을 개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고려 없이 뭉뚱그리는 것이고, 인간론이란 해당 사회의 맥락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람 사는게 비슷하다”는 식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자의 시선, 여행기의 관점은 ‘판단 중지’에서 시작해야 한다. “많이 느끼되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 모어 사회가 아닌 곳에 애정을 갖는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복잡하고 또 복잡한 인도야말로 여행자의 태도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여행지다. 인도는 오랜 기간 동안 서구 사람들에게 동경 혹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동경과 혐오는 대체로 오해 혹은 성급한 판단의 결과였다. 인도는 종종 ‘목가적 순수함’과 ‘정신적 찬란함’을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때 실제의 인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려는 없다. 심지어 ‘인도학의 대부’라 불린 19세기 독일 학자 막스 뮐러는 한 번도 인도에 가보지 않았고 제자들도 인도에 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는 당대의 살아있는 인도는 고매한 정신세계를 상실한 타락한, 가짜 인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샹그릴라도 서구인들의 환상에 의해 복잡한 지위를 얻었다. 드문드문한 정보만을 접한 서양인들에게 동양은 “마술적이고 때로는 숭고하고 가혹하며, 시간은 멈춰 있고 상상적 도피와 집단 환각이 가능한 장소, 이국적이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안기는 곳”이었다.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1933)은 그런 상상력이 집약된 텍스트였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히말라야 쿤룬 산맥 서쪽 끝자락에 불시착한 영국인들이 우연히 계곡 속의 사원 샹그릴라에서 신비한 경험을 한다는 내용의 이 책은 당시 서양인들 사이에 ‘이국적 호기심’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는 샹그릴라를 순수 아리안 혈통의 근원지로 규정하고 7차례나 현지 조사단을 파견했다. “샹그릴라 혹은 샹그릴라로 대변되는 동양은 서양인에게 순수했던 유년기, 때 묻지 않은 삶의 원형질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가 1997년 샹그릴라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은 더욱 묘해졌다. 윈난 성의 중띠엔이 바로 샹그릴라라는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중띠엔을 샹그릴라로 개명하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윈난, 쓰촨, 티베트 등지에 500여명의 조사단을 파견한 끝에 ‘발견’한 곳이었다. 그 결과 1995년 한 해 7만명이던 방문객은 2008년 200만명을 넘겼다. 인도, 네팔, 부탄 등 히말라야 인근 나라들도 자국의 어느 한 곳을 샹그릴라라고 명명했다. 한때 중띠엔, 이제 샹그릴라가 된 그 곳은 소수민족이 관광객을 위해 전통복장 차림으로 거닐고, 호텔 공사가 한창이다. 윤여일은 “이미 가보기도 전에 그 이름 하나로 샹그릴라는 내게 의미 과잉의 장소였다”며 “막상 다녀오고 나서의 내 감상은 너무도 초라하다”고 적었다. 


윤여일 역시 자국에서 가지고 있던 환상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의 어떤 이들에게 네팔은 시간을 거스른 듯 색다른 정치적 역정을 보이는 나라다. 2008년 마오주의자들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내전이 종식됐기 때문이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사회주의의 거대한 꿈이 퇴색하고, 중국마저 국가 중심 자본주의를 강하게 밀어부치는 지금 “네팔의 오늘은 지나간 혁명에 대한 어떤 노스탤지어처럼 느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마오주의는 꿈, 혁명 등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정정 불안으로 어수선한 네팔의 사람들에게 마오주의 정권은 그저 ‘하나의 현실’이었다. 


여행은 ‘여기 아닌 곳’으로 떠나 ‘나 아닌 사람’을 만나는 일이지만,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홀로 다니는 여행자는 언어가 통하지 않고 낯선 사람들로 가득찬 이국의 어느 곳에서 결국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바깥으로 나와 낯선 사건을 겪다보면 내게 중요했던 사색이나 감정과 다시 대면하곤 한다. 혹은 내가 낯설어지곤 한다.”


그래서 이국의 여행을 통해 한국을 다시 바라볼 수도 있다. 로스앤젤레스를 떠나는 비행기에서 만난 한 섬유공장 사장은 ‘섬유 산업과 함께하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설명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기업은 중국에 공장을 많이 차렸는데, 중국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자 멕시코로 공장을 옮겼다. 멕시코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고, 멕시코 당국이 한국 기업의 가짜 브랜드 옷을 단속하자 이번엔 과테말라로 옮겼다. 그러나 그곳에선 노동자들을 다그치기가 만만치 않아 다시 공장이 동남아시아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영화 <러브레터>의 때묻지 않은 설원을 구경하기 위해 찾은 훗카이도에선 ‘조선의 의미’를 혼란케하는 이를 만난다. 우연히 들른 강연회에서 알아듣기 힘든 일본어로 질문하는 할아버지를 봤다. 그는 강연회에서 자신을 일본내 소수민족인 아이누 출신이라고 밝혔고, 호기심에 그를 찾아간 저자에게는 다시 조선인이라고 이야기했다. 알고보니 일제 시기 강제징용을 당해 훗카이도로 온 한 조선인이 공사장을 탈출해 아이누 마을에 숨었고, 그곳에서 아이누 여인과 결혼해 낳은 자식이 그 할아버지였다. 조선에서 찾아온 본처의 아들들이 아버지를 데려가자 할아버지는 반 조선인, 반 아이누로 남은 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여행을 번역에 비유한다. 100% 번역은 없다. 원문과 번역문 사이에는 언어적·문화적 거리와 번역자의 감각, 지식, 신념이 개입된다. 하지만 번역은 창작도 아니다. 번역은 “원문이라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원문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윤리적 과정”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언어와 문화를 건너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읽어내야 한다. 눈에 띠는 장면 뒤편의 의미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현지의 속살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자문화와 타문화 사이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거닐며, 타문화에 대한 해석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이 과정을 통해 자문화에서 굳어진 인식의 틀을 허물기. 그것이 여행작가의 의무가 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저자는 “결혼을 하기에 나는 내 시간에 너무도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가정이 생기면 공부도 멈추고 여행도 끊길까봐 금생에는 없는 일이라고 일단 정해두었다”고 적었다. 지금 이 리뷰가 쓰여지는 순간에도 그는 페루에서 남극까지 3개월에 걸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