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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적당히 부도덕하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댄 애리얼리 지음·이경식 옮김/청림출판/344쪽/1만6000원


인간은 얼마나 착하고 또 얼마나 나쁠까. 듀크대학교 심리학 및 행동경제학 교수인 댄 애리얼리는 1%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선하고 1%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악하다고 한다. 나머지 98%는 때로 선하고 때로 악한 평범한 사람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는 착한 사람인가. 완전히 착한 1%에 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대체로 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무의식중에’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되뇐다. 문제는 완전한 악인 1%가 저지르는 거대한 악행보다, 평범한 98%가 저지르는 사소한 악행이 사회 전체에 더 큰 해를 끼친다는 점이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원제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은 평범한 사람들이 비윤리적 행동을 저지르는 이유, 과정, 대책을 제시한다. 갖가지 실험과 저자 자신의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했다. 


주류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임을 전제해왔다. 어떤 일을 벌이는데 드는 비용과 그에 따른 편익을 고려해 행동하다는 것이다(비용편익분석). 비용이 더 든다면 하지 않고, 편익이 더 많다면 한다. 199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개리 베커의 ‘합리적 범죄의 단순 모델’은 이를 바탕으로 나왔다. 범죄에 따른 이득이 체포될 가능성, 처벌의 수위보다 높다면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과연 그럴까. 베커의 수상으로부터 10년 뒤 같은 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모두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합리성’이라는 개념은 매우 비현실적”이라는 수상 소감을 말했다. 베커의 이론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몇 가지 실험이 있었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실험 진행자에게 각각 택시를 타게 했다. 시각장애인을 태웠을 때보다 비장애인을 태웠을 때 택시운전사들은 일부러 길을 돌아가는 부정행위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저질렀다. 속이려고 마음 먹는다면 시각장애인을 훨씬 쉽게 속일 수 있었을텐데도 말이다. 이는 인간이 오직 합리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에도 좌우됨을 보여준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에는 줄곧 인용되는 ‘매트릭스 실험’이 나온다. 한 강의실에 모인 실험 참가자들은 5분 안에 주어진 수의 조합 안에서 합하면 10이 되는 두 수의 조합을 찾아내는 과제를 받는다. 참가자들은 가능한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고, 정답 하나에 일정액의 돈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다 됐을 때 벌어지는 일은 실험 집단마다 다르다. 한 집단에서는 참가자들이 부정행위를 할 기회가 원천 차단되지만, 다른 집단에서는 참가자들이 스스로 정답을 채점한 뒤 시험지를 강의실 뒤의 문서파쇄기에 넣으라고 함으로써 점수를 부풀릴 기회를 제공한다. 전자를 ‘통제 상황’, 후자를 ‘파쇄기 상황’이라고 부른다. 짐작대로 ‘파쇄기 상황’에서 정답률이 조금 더 높았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정답률을 부풀림으로써 돈을 더 많이 받아간 것이다. ‘통제 상황’의 실험자들은 평균 4문제를 풀었고, ‘파쇄기 상황’의 실험자들은 평균 6문제를 풀었다고 주장했다. 


애리얼리는 이 매트릭스 실험으로 부정행위의 다양한 면모를 살핀다. 우선 ‘도덕적 각성 장치’의 효과에 대해서다. 참가자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문제를 풀기 전에 한 집단은 십계명을, 다른 집단은 고등학교 때 읽은 책 10권을 떠올리게 했다. 후자에선 일정 수준의 부정행위가 나타났지만, 전자에선 부정행위가 없었다. 단지 도덕적인 규범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


사소한 비행을 저지르고 나면 차츰 잘못에 무뎌지게 마련이다. 하루 종일 엄격한 다이어트 식단을 지키다가 배고픔에 못이겨 한밤중에 쿠키 한 조각을 베어문 뒤 결국 야식을 폭식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애리얼리는 이를 ‘어차피 이렇게 된 거(What-the-Hell)’ 효과라고 부른다. 이 역시 매트릭스 실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구진은 명품 선글라스를 구해와 두 개의 여성 실험자 집단에게 쓰게 했다. 한쪽 집단에는 진품임을 알렸고, 다른 집단에는 ‘짝퉁’이라고 잘못된 정보를 주었다. 두 집단은 각각 매트릭스 실험을 했는데, 진품 집단은 30%가 부정행위를 한 반면 짝퉁 집단은 74%가 부정행위를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한 기준을 한 번 깨고 나면 더 이상 자기 행동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짝퉁에 대한 대가는 도덕성이라는 화폐로 치르는 것”이다. 


애리얼리는 인간이 두 가지 동기를 동시에 추구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정직하고 존경할만한 인물로 봐주길 바란다(자아 동기부여). 다른 한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속여 가능하면 큰 이득을 얻고자 한다(재정적 동기부여). 인간은 ‘착한 사람’이라는 명예와 개인적 이득을 동시에 얻길 원하기 때문에 이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래서 스스로를 속인다. 


참고서 문제집을 풀 때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 문제를 풀고 답을 확인하기 위해 정답지를 들춰본다. 그런데 해당 문제의 답을 보는 과정에서 다음 문제의 답도 미리 보는 경우가 생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문제를 풀면서 생각한다. “난 답을 미리 봤기 때문이 아니라 머리가 좋기 때문에 이 문제를 푸는거야.” 거짓말도 하다 보면 늘고, 결국 거짓말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특전사를 나왔다는 거짓말이 계속되면 언젠가 실제 특전사를 나온 것처럼 스스로 착각한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해 성적을 높인 운동선수는 훗날 스테로이드 없이도 성적을 높일 수 있었다고 믿기 시작한다. 인간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행위는 전염된다. 또다른 매트릭스 실험을 보자. 이번에는 ‘파쇄기 조건’의 실험 참가자들 속에 배우를 한 명 심어놓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1문제도 풀기 어려운 시간에 “문제 다 풀었는데요” 하고 외친 뒤 시험지를 파기했다. 그리고 가능한 최고의 액수를 받아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같은 강의실의 참가자 모두가 부정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행동한 것이다. 이 집단에는 ‘부도덕성 바이러스’가 퍼졌다. 이 집단은 보통의 ‘파쇄기 조건’ 집단보다 평균 3문제를 더 풀었다고 주장한 뒤 돈을 챙겼다. 실험 결과, 부정행위를 한 사람이 같은 사회 집단의 일원일 때 바이러스는 더 빨리 퍼졌다. 


부정행위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근본적인 방법은 ‘단 하나의 잘못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한국 속담을 인용하면 좋겠다. 인간은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마치 로마의 장군이 개선 행사를 하면서도 노예에게 수시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속삭이도록 명했듯이, ‘나도 잘못을 저지른다’, ‘나도 이성적이지 않다’는 점을 수시로 인식해야 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라고 말하지 말고, ‘도덕적 영점’을 수시로 다시 조율하려 노력하는게 좋다. 인간은 현명하게도 이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종교 행사가 대표적이다. 카톨릭에선 사제를 찾아 자신의 잘못을 고한 뒤 새로운 마음으로 성당을 나선다. 불상 앞에 엎드려 108배를 하거나, 안식일에 교회를 찾는 것도 비슷하다. 굳이 종교가 아니어도 괜찮다. 새해, 생일 등을 맞아 결심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같은 도덕적 다짐을 하는 사회적 장치, 아이디어도 마련할 수 있다. 미국의 몇몇 대학에서는 입학과 함께 ‘아너 코드’(honor code)를 적용한다. 과제물을 제출하거나 시험을 볼 때 학생들이 양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는 장치다. 연구진은 MIT와 예일대 학생들로 구성된 매트릭스 실험 참가자들에게 ‘나는 이 실험이 MIT/예일대학 아너코드의 규정에 따라 진행돼야 함을 잘 알고 있다’는 서약에 서명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아무도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 실제 MIT와 예일대에는 아너코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에서는 무신론자일지라도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도록 하는데, 이 역시 ‘도덕적 각성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종차별 정책을 일삼은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설립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도 같은 기능을 했다. 이 조직은 잘못으로 얼룩진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점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사소한 잘못들을 저지르지만, 이러한 잘못들을 극복할 방법은 있다. 우선 어떤 조건에서 어떤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 애리얼리는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각성을 우선 촉구한다. 다음엔 몇 가지의 사회적 장치로 부정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행동경제학자에게 세상을 송두리째 바꿀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러버린 나머지, 스스로를 도덕적인 방향으로 끌어갈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이 지배하는 듯한 세상에서 애리얼리의 제안은 좀 순진하고 사소해 보이기도 한다. 서민들을 경제적 절망에 몰아넣은 뒤에도 챙길 보너스는 다 챙기고 월스트리트를 떠나는 악당들, 눈에 뻔히 보이는 잘못들이 속속 드러남에도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든가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