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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더러와 조코비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오랜만에 글 자체에 감탄하고 집중하면서 읽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바다출판사)이다. 10대 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아 각종 항우울제 복용, 전기치료 요법을 병행하면서 살았고, 섹스, 마약, 술 등 온갖 것들에 중독된 적이 있으며, 결국 약이 듣지 않아 46세에 자살한 작가. 월리스는 미완성 유고를 포함해 단 세 편의 장편을 남겼으며, 평생 이런저런 매체의 청탁을 받아 취재하고 글을 작성했다. 이 책 역시 그런 에세이들의 편역본이다. 

 

평론가 신형철은 이 책에서 "넌더리가 날 정도로 강박적인 자기 관찰, 삶이 진부하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에 대한 또렷한 혐오, 심원한 존재론적 감수성에 촌스러운 비장함이 더해지는 것을 막는 냉소적 재치, 이 모든 것을 정확히 담아낼 문장을 쓰는 데 쏟았을 장인적 열정"을 읽어냈다. 난 여기에 세상 모든 사태에 대한 비범한(실은 괴팍한) 시선, 인간사에 대한 혐오와 열망의 극단적 대비, 타인에 대해 생각한 그대로 혹은 더 신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도 들겠다. 첫번째는 정말 부럽고, 두번째는 저런 심성을 가진 누군가를 관찰하는 것은 흥미로울 수 있지만 난 갖고 싶지 않으며, 세번째는 훌륭한 저널리스트에게 필요한, 하지만 내겐 없는 덕성이다. 

 

역시 이 책의 핵심은 표제작이기도 한 에세이다. 잡지 하퍼스의 의뢰로 취재해 1996년 1월호에 실린 에세이인데, 월리스의 대표 에세이로 꼽힌다고 한다. 월리스는 취재 의뢰를 받아 카리브해 호화 유람선을 1주일 탑승한 후 이 에세이를 썼다. 심각하게 심사가 꼬인 인간인 월리스는 유람선에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에서부터 1주일 후 내리는 시간까지 탁월한 관찰력과 대담한 취재력과 '인간이 왜 저런 생각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황당한 생각을 갖고 유람선 구석구석을 누빈다. 30분간 방을 비우면 이름은 알지만 얼굴은 본 적이 없는 메이드가 방을 청소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29분 비웠다가 돌아오거나 34분 비웠다가 돌아오는 등 이상한 실험을 해보는 식이다. 배의 선원이든 선장이든 승객이든 아주 비트는데까지 비틀어서 다크 시트콤의 가장 다크한 캐릭터처럼 묘사한다. '랍스터를 생각해봐'는 요리 잡지 고메의 의뢰로 쓴 글이다. 고메는 '메인 랍스터 축제'의 취재를 맡겼는데, 월리스는 요리 잡지에 랍스터를 산 채로 물에 넣어 끓이면 얼마나 괴로울지 생각해보라고 제안하는 글을 쓴다. 가재가 느낄법한 고통을 동물권 논쟁의 핵심적인 주제, 논변을 인용해가며 들려준다. 이 글이 동물권 잡지가 아니라 요리 잡지에 실렸다는 것 역시 중요 포인트다. 

 

하지만 월리스가 그렇게 꼬인 글만 쓰는 작가는 아니라는 것은 9.11 직후 미국 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그린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과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에 대한 예찬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에서 알 수 있다. 특히 후자와 같은 글을 헌정받을 수 있는 페더러는 얼마나 기쁠까. 이 글을 읽은 얼마 후 호주 오픈이 열려 일부러 페더러와 조코비치의 경기 중계를 봤다. 안타깝게도 이전 경기에서 잇달아 풀세트를 치르고 온 페더러는 절정의 힘과 기세를 가진 조코비치에게 맥없이 지고 말았다. 조코비치의 결승전도 기다렸다가 보았다. 조코비치의 여덟번째 호주 오픈 우승. 인간적인 페더러에 비하면 승리 로봇 같은 조코비치에 대한 헌사는 내가 쓰고 싶지만, 당장 월리스처럼 쓸 자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