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문학'에 해당되는 글 2건

  1. 어느 위대한 작가의 전처 비난, '사실들: 한 소설가의 자서전'
  2. 행해진 일은 행해진 일, <카운슬러>

필립 로스(1933~2018)가 1991년 펴낸 '사실들: 한 소설가의 자서전'은 작가의 분신 주커먼이 표현하는 대로 "내 전처는 쌍년이었다"라고 말하는 글이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의 초반 3분의 1은 유대계 미국인으로서 작가의 성장기를 다룬다. 아버지는 유대계에 대한 은근한 멸시와 차별을 굳건한 의지로 이겨낸 남자였다. 로스는 그런 가정에서 모나지 않은 삶을 살다가 대학에 진학한다. 여기까진 부드럽게, 애상 어리면서도 적당히 진지한 분위기의 글이다.

 

그러다가 로스가 조시라는 여성을 만나는 대목부터 글의 분위기가 급변한다. 연상의 조시는 유대계가 아니었고, 다소 난폭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며, 이혼한 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웨이트리스였다. 단편 작가로 데뷔했고, 이제 남은 삶을 문학에 바치겠다고 다짐하는 즈음의 로스는 "평생 노골적으로 여자를 유혹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왜 그런지 그날따라 조시에게 다가가는 모험을 한다. 그건 로스에게 '심리적 결단'이었다. 그 결단이 이후 로스의 삶에 미칠 영향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이 책의 나머지 3분의 2는 조시와 사귀고, 가짜 임신 소식에 속아 결혼하고, 조시의 과대망상을 가까스로 견디고, 천박하고 몰상식한 조시와 헤어지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가까스로 별거했지만 이혼에 성공하지는 못하고, 그러면서도 수시로 조시의 협박과 모욕에 시달리는 과정을 그린다. 조시가 1968년 5월, 마틴 루터 킹과 바비 케네디의 죽음 사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다. 조시의 부음을 듣고도 로스는 무슨 사악한 장난처럼 여긴다. 로스는 조시가 타다가 죽은 자동차를 몬 사람을 자신의 '해방자'로 여기고, 조시의 죽음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자동차 사고로 갑자기 제거되는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급기야 이렇게까지 말한다. "내가 죽이지 않았는데 그녀가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로스는 이제 조시와 수입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조시의 장례식장으로 가면서 택시를 탄다. 로스가 조시의 죽음에서 느끼는 건 '무한한 안도감'으로 요약된다.

 

여러 장편들에서 접한 로스의 문체는 현란했다. 길고 긴 한 문장에도 여러 가지 생각과 의미를 담는다. '자서전'에서 로스는 서른 아홉의 나이로 죽은 전처를 현란한 표현으로 욕한다. 느낀 점은 이렇다. 작가는 전처 욕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작가는 아무리 나쁜 인연이었다 하더라도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간 전처를 공개적으로 비방할 정도로 대담해야 하는구나. 그 정도로 자신의 캐릭터와 인격을 세상에 까발려야 하는구나. 물론 조시가 정말 나쁜 아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튼 조시에겐 입이 없다. 그녀는 작가가 아니었고, 세상에서 책을 낼만큼 유명하지 않았고, 게다가 죽었으니까. 스스로 변호하지 못하는 상대를 일방적으로 비방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로스는 옳고 그름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든 하고 싶은 말은 하는 것이 작가니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된다. 로스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픽션에도 작가의 삶이 녹아있을 것이다. 픽션의 형식으로 전처 욕을 해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전처 욕에 따른 윤리적 비방을 하고 변명할 구석은 없다. 로스는 그걸 다 감당한다. 

 

작가의 분신이자 몇 편의 소설 주인공이었던 주커먼이 로스에게 보내는 편지로 글이 마무리된다. 주커먼은 책을 출간하지 말라고 권한다. 죽은 전처를 비방하는 문제의 윤리적 복잡함 외에도, 소설가가 '사실'을 전한다고 선언했을 때의 난점까지 언급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소설에 대해 말할 때보다 사실들에 대해 말할 때 자신들이 더 확고한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느낄까? 사실들이 훨씬 더 다루기 힘들고 결론도 잘 나지 않으며, 상상력이 일깨우는 탐구심을 죽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지금까지 자네의 일은 사실들에 상상력을 엮어 꼬는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 자넨 그것들을 풀어서 뜯어내고 있군. 
자네는 근본적으로 허구적인 인물들에 광적인 모습을 투사해 세상에 내보냄으로써 공공연히 자신에 대한 오해를 초래했네. 하지만 일부 독자들이 그걸 곡해하고 자네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고 해서 굳이 자네가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아줄 필요는 없다고 보네. 그와는 반대로 -그들에게 그런 믿음을 갖게 한 것을 성공이라고 여기게. 그게 이른바 소설이 하는 일이니까. 현상태에서 자네는, "아무도 나를 이해하거나 나의 커다란 가치를 알지 못해-진짜 내면의 내가 어떤지 아무도 몰라!"라고 소리 내어 웅얼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못할 게 없네. 소설가에게 그런 고충은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이니까. 

아무튼 로스는 책을 냈고, 그 책은 타언어권의 독자가 읽기 좋게 번역까지 됐다. 이 책은 내가 읽은 가장 이상한 자서전이다. 







코맥 맥카시의 소설을 몇 편 읽어왔다. 영화로도 제작된 <더 로드>(2006)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5)보다는 한국에 번역된 작품 중에는 가장 먼저 쓰여진 <핏빛 자오선>(1985)을 '압도적'이라 느끼며 읽었다. 찾아보니 예전에 쓴 짤막한 평이 있다. 나 자신의 말을 뻔뻔하게 인용하자면 <핏빛 자오선>에 비하면 <더 로드>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왜 썼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카운슬러>는 맥카시의 시나리오다. 2013년 출간됐고, 리들리 스코트가 같은 해에 영화로 선보였다. 찾아보니 맥카시는 2011년에도 토미 리 존스가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은 <The Sunset Limited>라는 텔레비전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 평가도 알 수 없다. 마이클 파스밴더, 하비에르 바르뎀, 카메론 디아즈, 페넬로페 크루즈,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카운슬러> 역시 그 화려한 연출자, 배우의 이름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개봉관에서 내려졌던 것 같다. 



디아즈(42)와 크루즈(40) 누님들.


IPTV로 영화를 보았고, 그런 김에 민음사에서 나온 시나리오까지 찾아 읽었다. 시나리오에는 있으나 일부 누락된 장면, 대사가 있지만, 구성이나 흐름은 대체로 같다. 좋은 배우들이 자신들의 스타일로 육화했기에 영화를 보면서는 그리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글로 읽으니 대사가 상당히 문어체인데다가 현학적이다. 현대 북미, 남미의 갱스터, 변호사가 쓸법한 말이라고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카운슬러>는 영화보다는 연극에 어울리는 대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갱스터들간의 마약 쟁탈전, 그 사이에 끼어 이권을 노리는 조무래기들의 이야기는 브로드웨이보다는 할리우드가 좋아할법하지만.


'변호사'와 사랑하는 연인 로라의 뜨거운 침대 위에서 시나리오는 시작한다. (영화에선 파스밴더와 크루즈 커플) 둘은 곧 결혼을 약속할 사이임이 밝혀진다. 변호사는 로라에게 어마어마하게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며 청혼한다. 인생의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듯 보이는 이 남자는 그러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그는 남미의 어느 나라와 미국을 연결하는 대규모 마약 거래에 끼어 한 몫을 보려한다. 남자의 재정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사실은 몇 가지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갱스터로 보이는 동료 라이너(하비에르 바르뎀), 멋지게 차려입은 마약 중개인 웨스트레이(브래드 피트)는 변호사에게 몇 차례나 되묻는다. 정말 이 일에 끼어들려 하냐고. 변호사는 자못 확신에 차있다. 그러나 변호사는 불과 며칠 뒤 자신이 겪을 지옥을 알지 못한다.  



상황 파악을 못한 변호사(오른쪽)에게 충고하는 마약중개인. 


중반 이후는 이 변호사가 겪는 지옥이 묘사된다. 변호사는 잠깐 발을 헛디뎠을 뿐이지만, 결과는 발목을 삔 것 이상이다. 자신만 다치면 그뿐이지만, 그의 운명은 주변 모든 사람을 잡아삼킨다. 사실 변호사가 잘못한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단지 남들 다 하는 일을 해보려 했을 뿐이다. 누구에게 해를 끼친 것도, 불온한 의도도 없다. 모든 것이 우연이었고, 누군가의 음모였다. 그러나 갱스터는 우연을 믿지 않는다. 무고함도 믿지 않는다.  



웨스트레이 : 글쎄. 나야 자네가 무관하다고 기꺼이 믿고 싶지만 자네가 확신시켜야 하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내가 아니야. 

변호사       : 하느님 맙소사, 대체 뭘 확신시켜요?

웨스트레이 : 이 모든 일이 그저 일종의 우연이었다는 점. 그자들은 우연이라는 걸 믿지 않지. 우연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나쁜 일이 벌어졌지만, 갱스터(혹 세계)는 인과를 믿는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특정한 사람에게 귀속된다. 그가 죄를 저질렀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는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는 보스와 전화를 할 기회를 얻는다. 이미 모든 일과 사람이 끝장난 뒤였지만, 그로선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잘못을 했다면 되돌릴 방법은 없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과 같이 전지전능하고 시인과 같이 유려한 언어를 구사하며 철학자처럼 통찰있는 이 보스는 변호사의 바람이 헛된 것임을 알려준다. 변호사와 보스의 대화는 <카운슬러>의 주제를 요약한다. 



변호사 : 날 도와줄 겁니까?

헤페(스페인어로 보스) : 현 상황의 진실을 확인해 보라고 권해 드리지, 변호사 양반. 이것이 나의 충고요. 나로서는 뭘 해야 했다고, 또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할 입장이 아니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당신이 실수를 해결하기 위해 찾고 있는 세상은 그 실수가 행해진 세상이 아니라는 거요. 지금 당신은 교차로에 서서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소. 하지만 선택이란 없지. 그저 받아들여야 할 뿐. 선택은 이미 오래 전에 행해졌으니. 

(...)


변호사 : 아까 나더러 그랬잖습니까. 지금 교차로에 서 있다고.

헤페    : 그렇소.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오. 세상을 실제보다 더 어둡게 묘사하고 싶지는 않소. 하지만 세상이 어둠에 잠식당한 지금, 세상이 사실상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졌소. 사실 세상은 바로 나 스스로가 창조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면 세상 역시 마찬가지요. 다른 세상들이야 있소. 당연하지.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의 세상이오. 그리고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당신 자신의 세상일 뿐이지. 당신이 죽으면 그 세상도 사라지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소. 



헤페의 대사는 <맥베스>의 레이디 맥베스가 처음 한 것으로 기록된 "What's done is done"이란 서양의 오랜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은 너그러움을 알지 못한다. 행해진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어딘가의 누구에게 하소연해도 소용없다. 한 사람이 사라지면 그의 세계도 사라진다. 그 세계가 사라졌다는 것은 다른 세계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시나리오에는 목 잘린 시체가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장면, '처리'되어지길 바란 누군가의 시체가 남미, 북미 대륙을 오가는 분뇨차 속 드럼통에 실려 조금씩 부패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무서운 건 이런 장면들이 아니라 헤페의 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