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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제는 한 방울 정액, 오늘은 시신 '메멘토 모리'

영국의 고전 학자 피터 존스의 '메멘토 모리'(교유서가)를 읽다.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로마인의 지혜'라는 부제가 붙었다. '지혜'에 방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초반부엔 노화와 죽음에 대한 로마의 사회학적, 통계적 사실이 먼저 제시된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 로마에서 사람이 태어나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현대보다 훨씬 낮았다. 10만명이 동시에 태어난다고 가정하면, 다섯 살에는 5만명만 살아있다. 마흔 살까지 사는 사람은 3만명, 예순을 넘기는 사람은 1만3000명, 일흔살까지 사는 사람은 5500명 정도다. 전체 인구의 50%가 20세 이하로 추정된다. 그러니 고대 로마에서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은 생물학적 축복, 사회적 행운이었다. 가부장 사회였던 로마에서는 아버지인 가장이 가족에 대한 모든 권리를 통제했다. 아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심각한 부자 갈등이 생기지 않은 이유는, 아들이 성인이 될 때쯤이면 많은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이다.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을 '행운'이라 표현하긴 했지만, 현대의 의학, 반노화 산업에 비교했을 때 고대 로마인이 신체의 노화에 대응할 방안은 전혀 없었다. 노인의 육체는 종종 혐오스럽고, 비참하고, 가혹하게 묘사됐다. 호라티우스는 "청년은 행동하고, 전성기의 사내는 논의하며, 노인은 기도한다"고 표현했다. 기도밖에 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역사학자 타키투스는 어느 도시를 습격한 군인들의 행동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늙어빠져 죽을 때가 된 남녀들을 끌고나왔다. 전리품으로는 가치가 없을지언정 한바탕 웃음거리로 삼기엔 충분했으니까."

 

고대 로마에서는 죽음에 대해 당당한 태도가 칭송받았다. 질병이나 노화로 인한 죽음은 물론, 타의에 의한 죽음도 피하지 않고 맞이하는 태도를 중히 여겼다. 검투사 경기에 투입된 한 야만인은 적을 찌르라고 받은 창을 자기 목에 쑤셔박았다. '웃음거리가 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죽음을 끌어당긴 것이다. 네로의 자결 명령을 받은 세네카는 손목을 그은 뒤 비서들을 모아 구술했고, 그래도 숨이 끊이지 않자 김이 피어오르는 욕조로 가서 죽었다. 카이사르와 맞섰던 소 카토는 패색이 짙어지자 "그 압제자가 저지른 범죄를 봐주는 대가로 그자에게 뭔가를 빚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며 자살을 결심했다. 노예가 가져온 칼끝이 날카롭게 벼려있는 것을 본 뒤 "이제야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로군"이라고 말했다. 할복을 했으나 좀처럼 죽지 않았고, 놀란 의사가 달려와 내장을 넣고 상처를 꿰매려 하자 다시 손으로 배를 찢어 죽었다.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파나는 아들이 자신을 죽이라고 보낸 군인들에게 자기 자궁을 가리키며 "여길 찔러라!"라고 외쳤다. 

 

오래 남는 비문은 로마인들의 생사관을 살필 수 있는 증거다. 인상적인 몇 가지를 옮긴다. 

 

내 고향은 티부르, 내 이름은 플라비우스 아그리콜라요. 그렇소. 지금 나는 살아 있을 때 만찬장에 누웠던 자세 그대로 바로 여기에 누웠소. 나는 운명의 여신이 허락한 세월 동안 늘 자신을 잘 돌보았고 포도주를 실컷 마셨소. (...) 이 글을 읽는 벗들이여, 내 조언은 다음과 같소. 포도주를 준비하시오. 머리에 화환을 두르고 술을 드시오. 아름다운 여자들과의 잠자리를 거부하지 마시오. 죽으면 흙과 재가 다른 모든 것을 삼키리니. 
자연이 준 것을 자연이 되찾아갔다. 
이 집은 영원하나니, 나는 여기에 누웠고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으리라. 
나를 잃었다고 어째서 한탄합니까? 운명의 질서는 어지럽지 않습니다. 인간의 일은 사과열매와 같으니 무르익어 저절로 떨어지거나 누군가 너무 이르게 따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날 그 시간을 위해 사시오. 그것말고는 아무것도 없소. 
목욕, 음주, 섹스는 우리 몸을 타락시킨다. 하지만 목욕, 음주, 섹스는 삶을 아주 좋은 것으로 만든다. 

 

로마인들은 자연에 맞서지 않았다. 늙으면 늙음을, 죽을 때가 되면 죽음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건 불명예로 받아들여졌다. 다음 같은 인용이 로마인들의 생사관을 잘 보여준다.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기왕 태어났으면 떠나온 곳으로 되도록 빨리 돌아가는 것이 차선이라네.(소포클레스)
삶이란 얼마나 하찮은가. 어제는 한 방울의 정액이었고 오늘은 시신 아니면 재다. 그러니 너는 이 덧없는 순간들을 자연이 너에게 의도한 대로 쓴 다음 흔쾌히 쉬러 가라. 때가 된 올리브 열매는 자신을 잉태한 대지를 축복하고 자신에게 생명을 준 나무에게 감사하며 땅으로 떨어진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