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이 출판면에 실리기 위해선 때로 우연이 필요하다. 이번 주에는 우연히도 행복에 대해 전혀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두 책이 나란히 배포됐다.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책이 전자의 책을 '저격'하고 있다. 그만큼 행복의 개념은 중요한 이슈라고 볼 수 있다. 이 책들은 각자 다른 주에 나왔다면 따로 다룰만했겠지만, 이번주에는 하나로 묶어 '책과 삶' 프론트 페이지에 실었다.
행복을 추구하는 온갖 학문과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더 좋은 물건을 갖기 위해 살던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행복’으로 바꾼 듯 보인다. 서점에 가면 행복을 다룬 심리학 책들이 잔뜩 쌓여있고, 행복을 주제로 한 강의들도 곳곳에서 펼쳐진다. 심지어 이윤 추구가 존재 이유와 같던 기업들도 직원들의 행복을 이야기한다.
유엔은 2012년부터 매년 세계행복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사회보장에 대한 여론조사, 기대수명, 정부와 기업의 부패지수 등을 토대로 점수를 매긴 결과다. 4월 발표된 올해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세계 158개국 중 47위였다. 그런데 정말 국내총생산이나 여론조사를 합산해 개개인의 행복도를 측정할 수 있을까. 47위의 한국인들은 46위를 차지한 일본인들보다 조금 더 불행한 것일까.
행복, 경제학의 혁명
브루노 S 프라이 지음, 유정식·홍훈·박종현 옮김/부키/376쪽/1만8000원
스위스의 경제학자 브루노 S 프라이는 행복경제학의 흐름을 주도한 학자로 꼽힌다. 기존의 표준 경제이론에서는 비용과 편익이라는 결과적 효용에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프라이는 행복 자체를 측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측정된 행복으로 경제 행동을 해석하고 경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 경제학의 혁명>(원제 Happiness-A Revolution in Economics)는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을 측정하는 심리학의 방법을 경제학에 도입하는 방안을 탐구한다.
프라이의 연구는 전통적 이론을 신봉하는 경제관료, 학자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전통 이론에서는 개인의 효용이 소득에서 주로 비롯된다고 보는 반면, 행복 경제학은 사회적 관계나 자기결정, 자기 유능감의 확인같이 기존에는 경제학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요소까지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소득 혹은 국민총생산(GNP)을 늘리는 것은 행복경제학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실제로 소득이 증가한다고 해서 행복수준이 무한정 커지진 않는다. 미국의 경우 1946년과 1991년 사이 1인당 실질소득이 2.5배 증가했는데, 행복수준은 평균적으로 일정했다.
프라이는 결과와 함께 과정도 중시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행복경제학이 고용, 여가를 강조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전통 경제학 역시 실업 문제를 중시하지만, 이는 대체로 실업자의 소득이 줄고 그 결과 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실업수당을 통해 소득 상실분을 보전한다해도 개인의 안녕감은 증가하지 않는다. 행복경제학은 실업이 개인에게 미치는 불안, 우울, 자존감 상실도 고려한다.
프라이의 연구는 정치제도에까지 적용된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는 흔히 중의를 모아 최선의 결정을 도출하기 때문에 유용한 제도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행복경제학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기에 더욱 필요한 제도다.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등 세계 28개국 국민들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민주적인 제도가 확산된 나라의 국민들은 권위적인 나라의 국민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저자는 자원봉사, 결혼, 테러리즘, 텔레비전 시청 같이 기존 경제학의 방법으로 분석할 수 없었던 영역까지 끌어들여 새로운 경제이론의 틀을 세운다. 행복을 측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정책적으로 반영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행복산업
윌리엄 데이비스 지음·황성원 옮김/동녘/344쪽/1만6800원
행복경제학이 기존 전통경제학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 즉 삶에 대한 총체적 만족도를 반영하려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좌파적 관점에서 보면 이조차 자본과 정부의 계략이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윌리엄 데이비스의 <행복산업>(원제 The Happiness Industry)은 지난해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한 장면을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프랑스 출신의 전직 생물학자인 승려 마티유 리카르가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억만장자, 톱스타, 국가원수들 사이에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불리는 그는 청중들에게 명상을 통한 긴장 이완 기법을 가르쳤다.
샤오미 미밴드는 지난 밤의 수면 시간을 숙면과 얕은 잠으로 구분해 알려준다. 총 수면시간은 7시간이었는데 숙면이 2시간 30분, 얕은 잠이 4시간 30분이었다면 어딘지 피곤하고 앞으로 컨디션을 잘 관리해야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데이비스는 묻는다. 당신이 숙면을 취하지 못한 이유는 업무 실적 압박에 밤새 뒤척였기 때문아닌가. 그렇다면 수면 부족은 당신의 컨디션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 문제 아닌가.
행복의 조건을 개인화, 심리학화, 생리학화하려는 시도는 사건 이면의 ‘진짜 문제’를 간과하게 한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월가엔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남자들이 너무 많았다”고 지적했다. 모든 건 두뇌 속의 신경화학물질 때문이지, 금융자본주의의 탐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데이비스는 ‘직원을 행복하게 하는 기업’에도 냉소적이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의 적은 프롤레타리아의 분노나 대규모 금융위기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무기력이었다. 기업은 “노동자들이 행복을 느낄 때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들에 주목했다. ‘모범 경영’ 기업인들은 평가가 좋은 직원에게 헬스클럽 이용권을 주고, 식당에서는 최고급의 음식을 제공한다. 저자는 “대안적인 기업 형태가 등장하는 대신, 인체와 동작, 업무 수행 능력을 전보다 훨씬 과학적으로 분석한 테일러식의 ‘과학적 경영’이 다시 조심스럽게 귀환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데이비스는 상상한다. “우리 마음과 감정, 뇌에서 일어나는 극히 작은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예측하며 처리하고 시각화하고 심지어 앞지르기 위해 들어가는 수백억 달러를 대안적인 정치 경제 조직을 고안하고 이행하는 데 쓴다면?” 스트레스는 의학을 넘어 정치의 문제다. 부당해고된 노동자도 마음을 잘 다스리면 일시적인 평안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의 불행은 여전히 사회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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