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텍스트

재활용품으로 본 도시 생활,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제프 페럴 지음·김영배 옮김/시대의창/360쪽/1만8000원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날짜에 분리수거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며칠간 머문 휴양지에서 돌아오는 날 직접 청소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버리는지. 


한국보다 생활 수준이 높고 소비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쓰레기가 정말 쓰레기일까. 보는 사람에 따라 쓰레기는 보배가 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싼값에 충동적으로 구매한 여름용 원피스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치자. 두어 번 입어보길 시도하다가 끝내 포기하고 버린다. 이제 그 옷은 그에게 분명 쓰레기다. 그러나 이 옷이 어울리는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는 이번 여름 휴가지에서 멋진 원피스를 입고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 


2001년 12월, 사회학, 범죄학, 인류학 등을 가르치던 제프 페럴은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떠났다. 그리고 고향인 텍사스주 포트워스로 향했다. 이후 8개월간 페럴은 개인적·학술적 관심에서 쓰레기 수집을 시작했다. 물론 쓰레기 수집은 무직자가 된 페럴의 생계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에게 쓰레기는 그저 쓰레기가 아니었다. 도시인들이 버린 물건 속에서 페럴은 평범한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인생, 방탕한 소비 문화의 흔적, 글로벌 경제의 모순, 법과 불법의 경계, 대안적 삶의 가능성 등을 읽어낸다.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의 원제는 <Empire of Scrounge>다. ‘scrounge’라는 동사가 가진 여러 가지 의미에 책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 동사는 ‘찾아 모으다’, ‘훔치다’, ‘훔치려고 기웃거리다’, ‘뒤지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훔치기’는 불법이고 나머지는 불법이 아니다. 페럴과 같은 쓰레기 수집인들의 행위는 이렇게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모호하게 걸쳐 있다. 개인이 버린 물건은 공용 쓰레기통에 담기는 순간 공공의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온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은 이런 행동을 불편하게 느끼겠지만, 페럴은 이 모호함이 우리의 딱딱한 도시 생활을 부드럽고 즐겁게 만들어준다고 이야기한다.


쓰레기 수집인들 중에는 노숙자, 거지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페럴이 만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작게나마 집이 있었고, 정규 직업을 가진 경우도 있었다. 페럴은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금속 수집가, 재활용 운동가, 대안건축물 건축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등을 만나기도 했다. 이들은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세계’를 살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쓰레기 수집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물건이 언제 나타났다가 언제 사라지는지를 절묘하게 포착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 혹은 경찰, 경비원 등의 시선과 마주쳤을 때 대처하는 요령도 익혀야 했다. 대부분의 경우 미소를 띠면서 당당하게 “안녕하세요. 버리실 거라면 제가 잠시 뒤져봐도 될까요”라고 말하면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다른 쓰레기 수집인과 만났을 때도 곤경을 겪은 적은 별로 없다. 이 세계에는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뒤진다’는 불문율이 있다. 늦게 온 사람이라도 먼저 온 사람의 허락을 받는다면 함께 뒤져도 좋다. 그러는 와중에 각자 필요한 것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또 돕기도 한다. 탄산음료 캔이나 깡통 속에 남아있는 물질 때문에 몰려드는 벌이나, 마약을 주사하고 난 듯한 주사기에 찔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도 잊어선 안된다. 


그래서 페럴은 무엇을 주웠는가. 8월의 무더운 여름날 주운 아름다운 크롬 장식의 샤워꼭지는 집에 있던 것과 바꿔 끼웠다. 이 샤워꼭지에서는 소방호스 수준의 세찬 물줄기가 나와 심신을 상쾌하게 했다. 고풍스러운 장난감을 종종 발견하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상태가 괜찮다면 골동품 가게에서 적당한 가격에 팔 수 있었다. 사뮤엘 베케트, 스티븐 호킹, 제임스 미치너,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리드리히 니체, 마르틴 하이데거의 책도 찾았다. 켈빈 클라인 가죽 지갑, 포수 글러브, 레이밴 선글라스, 고품질 양탄자 등도 주웠다. 


여느 쓰레기 수집인들에게는 별볼일 없는 물건이지만, 사회학자의 눈에는 각별한 것들도 있다. 페럴은 “이 세계의 모든 버려진 것들은 주인의 삶 가운데서 어느 날 문득 튀어나와 그 삶의 속도와 패턴에 대해 말해주곤 한다”고 전한다. 가족사진, 고등학교 졸업장, 개인적인 파티 초대장, 콘서트 입장권, 편지 등에서 페럴은 평범한 미국인들의 때론 기쁘고 때론 슬픈 삶을 읽어낸다. 하워드 박사가 아들이 보낸 편지를 열어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로지가 자신에게 구애한 존 대신 앳킨스와 결혼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 수 없다. 페럴은 다시 한번 오랜 라틴 격언을 떠올린다. “시크 트란시트 글로리아 문디”(이 세상의 영화는 이처럼 덧없다)


뜯지도 않은 선물이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도 많았다. 아마 누군가의 생일 파티를 위해 형식적으로 가져온 물건이었으리라. 이런 물건들의 밑바닥에는 대부분 ‘메이드 인 차이나’ ‘메이드 인 필리핀’ 등이 적혀 있었다. 한 세기도 전에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말했듯,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는 실제적인 필요와는 상관없이 진행된다. 소비를 위한 소비, 버려지는 물건들, 그 자리를 채우는 소비…. 미국인들의 과시적 소비를 위해 제3세계의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고된 노동을 하는 모습이 페럴의 눈에 떠오른다. 


쓰레기 수집인들은 이렇게 뒤틀린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 문화를 바로잡고 있다. 쓰레기통에서 구한 수많은 공구와 재료를 이용해 페럴은 고치고 다시 만들었다. 수집한 물건을 가지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어떻게 변형시켜볼까 상상하기. 이것은 버려진 물건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마치 사물의 창조자가 된 듯한 일이었다. 실제로 고물을 이용해 예술품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텍사스 알링턴시는 론 드로윈에게 마당에 쌓아둔 수집품을 치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웃들로부터의 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로윈은 ‘재활용 예술가’가 되기로 했다. 모터, 2층 침대 프레임, 자전거 의자, 사다리, 손수레 등을 이용해 칠면조, 공룡, 기린, 거북이 등을 만들었다. 고물상으로 일하기도 했던 단 필립스는 폐자재들을 이용해 새로운 양식의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의 건축물은 유명 잡지에 소개될 정도로 미학적으로 뛰어나고 구조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그는 규격화된 건축자재로 만들어져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효율성만 남긴 빌딩들에서 ‘월마트적인 예술 원칙’을 본다. 그것은 ‘정신적 자살’이다. 


쓰레기 수집인들은 ‘어쩌다보니 환경주의자’가 된다. 버려진 물건들이 곧바로 쓰레기 매립지로 향한다면, 우리 생태계의 퇴화는 지금보다 훨씬 빨랐을 것이다. 쓰레기통과 매립지 사이에 쓰레기 수집인들이 있다. “매일같이 도시를 누비고 다니는 이 정비되지 않고 가난한 쓰레기 수집 군단은 알루미늄 캔과 구리선, 낡은 세탁기 등을 찾아다니면서 소비사회가 날마다 망치는 환경을 되살리는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질서와 범죄의 경계에 선 경찰이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면, 쓰레기 수집인들은 효율과 낭비 사이에서 효율성을 높인다. 


문제는 쓰레기 수집인들의 이러한 활동이 종종 불법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포트워스 작은 감리교회의 할머니 2명은 소규모 장터를 열기로 했다. 이름은 ‘제나의 희망과 은혜: 미션 숍’. 기부받은 헌 옷, 장난감 등을 판매해 좁은 집, 저임금에 시달리는 멕시코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돕는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포트워스시가 제동을 걸었다. 그들은 ‘미션 숍’을 “불법적인 재활용 물품 판매점”으로 규정하고 문을 닫도록 한 것이다. ‘미션 숍’의 자원봉사자들은 물건에서 가격표를 뗀 뒤, ‘미션 숍’에서 ‘숍’이란 말을 떼는 것으로 하고 시당국과 합의를 봤다. 누군가 물건을 사러, 아니 가지러 온다면? 정확한 가격을 말하는 대신 “원하는 만큼 기부하시면 됩니다”라고 안내해야 한다. 


미국의 가정에서 불필요한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 종종 열곤 하는 앞마당 세일도 같은 처지다. 앞마당 세일은 “쓰레기와 재활용, 중고물품 판매, 기부문화를 연결하는 핵심”임에도 말이다. 앞마당 세일은 1년에 단 2번, 사흘 이내로 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앞마당 세일로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의 벌금을 내야 한다. 노숙자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이 체포되는 사례, 해비타트 자원봉사자들이 규제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허가 없이 음식을 제공하거나, 낡은 집에서 나온 물건들을 허가받지 않고 재활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규제의 배후에는 더 많은 소비에 의해서만 이윤을 올릴 수 있는 기업들이 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페럴은 쓰레기 수집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로까지 승화시킨다. 페럴은 재활용 바구니가 달린 15달러짜리 자전거를 타고 수집 활동을 했다. 자동차를 타고 집에서 연구실로 곧바로 달려갈 때와는 완전히 다른 시간, 공간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필요한 물건이 발견될 때까지 기다리다보면, 과연 그 물건이 필요하긴 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진다. 이것은 거의 선(禪)적 체험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욕망하지 않는 삶,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자연히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할 줄 아는, 바로 선에 이르는 삶”이다. 이것이야말로 소비문화의 위력을 꺾을 수 있는 존재론적 힘이다. 


도시와 그곳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알려주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지식과 경험으로 살아나가기. 나아가 도시의 지도, 시간, 문화를 다시 창조하기. 페럴이 8개월동안 배운 것은 그 방법이었다. 페럴은 이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학교에만 있었다면 알기 힘들었을 삶의 방법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