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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을 위한...'파노라마섬 기담/인간 의자'


에도가와 란포의 '파노라마섬 기담/인간 의자'(문학과지성사)를 읽다. 전자는 중편, 후자는 단편 분량이다. 두 편 합해서 150쪽이면 끝난다. 

에도가와 란포(1894~1965)는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상의 이름으로 알려진 작가다. 필명은 란포가 좋아했던 에드거 앨런 포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한국 독자들이 일본 추리소설을 읽으며 에도가와 란포부터 시작하는 경우는 없는 듯하다.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현대 작가 아니면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마스모토 세이초 정도겠지. 

'파노라마섬 기담/인간 의자'는 문학과지성사의 '대산세계문학총서' 151권으로 나왔다. 대산세계문학총서는 해외 문학 중에서도 문학사적 의미가 있으나 국내 번역은 잘 되지 않은 작품 위주의 목록을 꾸린 것으로 알고 있다. 추리소설이 이 시리즈로 나왔다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읽어보니, 역시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파노라마섬 기담/인간 의자'는 추리소설가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으면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파노라마섬 기담'은 지역의 거부가 어느 작고 외딴 섬에 자기만의 기괴한 세계를 만들려다가 완성 직전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정체가 불분명한 화자가 이 섬의 사연을 들려준다. 거부가 죽은 뒤 그와 얼굴이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대학 동문이 소식을 듣는다. 이 동문은 이루고자 하는 바는 있으나 의지는 없는, 그래서 졸업 이후 몇 년째 빈둥거리는 사람이다. 이 남자는 섬뜩하다기 보단 황당한 계획을 떠올린다. 무덤을 파서 죽은 거부의 옷을 꺼내입고, 그가 덜 죽은 채 묻혀서 가까스로 살아돌아온 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그 돈을 모두 차지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들 이 황당한 계획에 속아, 남자는 순식간에 거부가 된다. 단, 거부의 아내만이 그를 수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런 황당한 음모가 꾸며지거나 밝혀지는 과정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1926년 발표된, 거의 100년전 소설이니 추리의 전개나 논리에는 위화감이 있다. 정작 란포가 말하려고 한 바는, 남자가 갑자기 손에 쥔 막대한 부를 이용해 외딴 섬을 가꿔나가는 과정이다. '파노라마 섬'의 묘사가 기괴하고 현란하다. 섬의 입구에서 중심부까지 지하로 난 유리 통로같은 것이 있어 신기하다기보다는 기괴한 해양생물들을 눈으로 관찰할 수 있고, 나체의 여인들이 식물인듯 동물인듯 노예인듯 살고 있으며, 거리 감각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설계로 방향과 위치를 혼란에 빠트린다. 란포는 남자가 범죄의 추리보다는 이 섬을 묘사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이 상상해낸 파노라마 섬의 묘사에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작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래된 문예사조에서 따온다면 '탐미주의' 같은 말을 붙일 수도 있겠는데, 색깔은 눈이 아프고 향은 메스껍다.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을 위한..'같은 말을 지어내고도 싶다. 


에도가와 란포

'인간 의자'는 그보다 짤막하고 확실하게 변태적이다. 똑바로 쳐다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못생긴 남자가 주인공이다. 이 남자는 손재주가 좋아 그럴듯한 의자를 만드는 기능공이 된다. 어느날 남자는 외국인이 주문한 제법 큰 가죽 의자를 만든다. 남자는 그 의자 안에 들어가 외국인의 집으로 침입할 생각을 한다. 스프링 같은 부품을 일부 제거하고는 그 안에 들어가 앉는다. 그리고 의자 속에서 의자에 앉는 사람의 몸을 느끼고는 좋아한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좋아한다. 유럽 어느 강국의 대사가 앉았을 때는 가죽 뒤에서 칼로 푹 찌르고 싶다는 상상을 하고, 어느 유럽의 여자 댄서가 앉았을 때는 '이상적인 육체미의 감촉'을 느끼며 '예술품을 대할 때와 같은 경건한 마음'을 느낀다. (특히 서양 여자들의 육체에 대한 찬사가 가득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 사랑'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친 사랑'은 1947년에 나왔으니, 1925년 나온 '인간 의자'에 비하면 꽤 늦었다. 아니, 서양 여자의 육체에 대한 매혹은 일본 남성 소설가들의 전통 같은 것이라 해야 하나) 결국 '인간 의자'는 그 단편을 읽는 여성 소설가의 의자에 남자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아이디어로 끝나는 척 하다가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데, 김기영의 '하녀'가 마지막에 기묘한 영화에서 빠져나오는 척 하면서 관객을 놀리는 것 비슷한 효과다. 하고 싶은 변태적인 이야기는 다 했으니, 작가는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닌 듯 시치미를 뗸다. 

하긴, 조금이라도 추종자가 나오면 금세 낡아보이는 어정쩡한 소설보다는 무엇이든 색깔이 강한 글이 낫겠지. 그 색깔이 좀 이상하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