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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탕웨이 인터뷰+<만추> 리뷰

, 탕웨이. <만추>는 탕웨이의 얼굴에서 시작해 탕웨이의 얼굴로 끝난다. <, >의 매력은 우연도 아니고 리안의 마술도 아니었다. 인터뷰는 7~8개 언론이 공동으로 50분 가량 진행됐다. 이런저런 질문에 이런저런 답변이 나왔는데,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는 어떤 답변을 리드로 써도 좋을 듯한 좋은 말들이 나왔다. 인터뷰를 한 뒤로 탕웨이가 더 좋아졌다. 인터뷰 전문과 <만추> 리뷰.

    사진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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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전영화 리메이크에 중국 여배우가 나왔다.

"감정이란 것에는 국경이 없다. 언어라는 것도 감정에 비하면 힘이 없다. 한국 영화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한국영화는 처음 출연했는데, 계기나 믿음이 있나.

"좋은 시나리오, 좋은 감독, 좋은 상대 배역이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믿음이 확인됐다. 난 현장에서 유일한 중국인이었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다 가족같은 느낌이었다."

 

-당신의 영화는 중국에서 상영되지 못한다고 알고 있는데. <만추>도 상영되지 못할 것 같아 아쉬움은 없나. (<, >가 친일하는 내용이 있어 중국이 탕웨이가 출연하는 영화의 상영을 금지하고 있다는 소식이 예전에 있었다)"

"아직 할지 안할지 모른다. 내 다른 출연작 <크로싱 헤네시>는 상영됐다."

 

-그렇다면 <만추>의 중국 상영에 대한 기대감이 있겠다.

"기대된다. 중국에서 개봉하면 현빈씨도 같이 가고 싶은데, 아쉽게도 갈 수 없어서 아쉽다. 지금 중국에서 현빈씨 인기가 폭발적이다. 주변에도 현빈씨에게 미친 팬들이 너무 많다.(웃음) 홍콩에서는 신문에 '현빈 바이러스'라는 제목으로 한 면 전체에 걸쳐 기사가 난 적이 있다. "

 

-연기 상대로서의 현빈씨는 어땠나?

"굉장히 안정적인 배우였다. 그 나이로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 나이보다 많은 나이를 살고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어른스럽다. 매사에 진지했고, 농담을 받아들이는 자세조차 진지했다. 그런 면에서 현빈은 코미디 배우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현빈씨의 어떤 면이 좋은가.

"애나의 훈이 좋다. 왜 훈을 좋아하냐면 훈은 밝은 햇빛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애나는 7년동안 마음이 죽어있던, 잠들어있던 얼음같은 사람이다. 그녀의 인생은 7년전 끝났다. 훈의 햇빛으로 얼었던 마음이 녹았다. 그리고 다시 삶을 살아가는 희망을 얻었다. 그런 훈을 어느 누가 싫어하겠나. 어제(시사회날) 난 그런 생각을 했다. 난 애나로서 훈을 사랑한다. 이 천사를 데려다니면 좋겠다고. 어제 현빈씨 보면서 많은 여자팬이 소리 지르는데, 많은 이들에게 현빈씨는 훈 같을 것이다. 많은 이에게 기쁨을 준다. 특히 그 보조개에서 나오는 미소가 햇빛같다. 그래서 많은 분이 좋아하시는 것 같다." 

-애나가 되기 위한 준비작업이 있었나.

"촬영 2달전 시애틀에 들어갔다. 애나라는 사람의 배경, 환경을 이해해야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애틀에서 성장한 사람과 다니면서 시애틀 사람처럼 생활했다. 화교들이 사는 곳에 생활했고 이야기 나누고 친구 사귀었다. 애나에겐 이런 추억들이 있었겠구나 하고 저장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려 하자 김태용 감독님은 다 비우라고 했다."

 

-영어 발음이 좋은 것 같다.

"<만추> 촬영전 런던에 있다가 시애틀로 갔다. 런던에서는 영국식 영어를 공부했는데, 시애틀 도착하자마자 다이얼로그 코치를 배정받아. 시애틀식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영어 수업을 했는데 이후엔 선생님과 수업한게 아니라 시애틀에 사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시애틀은 어떤 곳이었나?

"시애틀은 내 고향인 항저우와 닮았다. 축축하고 음산한 느낌이 그렇다. 시애틀은 항상 흐리기 때문에 자살율이 높다. 도시 느낌이 우울한데. 더 깊이 들어가면 오래된 도시이고 역사, 문화 등 아름다운 배경이 있다.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좋았다. 애나의 이민생활이 그래서 더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훈이라는 불꽃을 만났을 때 얼음처럼 녹았을 것 같다."

 

-애나가 결국 훈을 만났을 것 같나.

"만났으면 정말 아름다웠겠지만,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을 가지고 예쁘게 꾸미고 도착해서 기다리는 순간이 있었다는 거다. 그게 가장 행복한 순간일 듯하다. 삶과 사랑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애나는 오랜 시간동안 기다림이라는 단어조차 잊고 살았던 인물이다. 전혀 희망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키스신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긴 키스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키스신이 없었다. 어머니 장례식 장면을 찍고 있는데. 감독님이 오시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신이 필요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그가 장면과 감정을 설명하는데 심장이 뛰었다. 그 얘기에 몰입됐다. 그래서 ', 필요하겠군요.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키스신을 찍는 순간을 기다렸다. .아울러 참 오래 찍었다.(웃음)"

 

-극중 이미지가 자신과 잘 어울린 것 같나.

"시사회에서 영화를 볼 때는 아직도 애나였다. 애나의 마음으로 영화를 봤기 때문에 내 모습이 어땠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다. 그저 저 안개가 빨리 걷히면 좋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보는 분이 더 객관적일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훈과 손잡고 밤새도록 달리는 장면이다. 애나가 모든 마음 속의 무거움 버리고, 코트 조차 벗고, 내 안의 모든 것을 떨쳐나가는 장면이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애나에게 그런 순간은 그때밖에 없을 것이다. 촬영할 때 참 좋았다."

 

-<, >도 그렇고 주로 진지하고 우울한 역을 맡았는데, 본인의 실제 성격대로 쾌활하고 발랄한 여성 역을 맡고 싶은 생각은 없나.

"<급속천사>에 여자 레이서로 나온다. 그때야 내 모습같다고 생각했다. 구멍난 청바지에 남자처럼 걷는 평상시 내 모습이 나온다. 엄마가 그 영화 촬영할 때 의상 보더니 '이제야 너 같다'고 말해줬다."

-리안 감독, 김태용 감독의 같은점과 다른점은.

"닮은 점이 더 많다. 김태용 감독의 연출을 얘기하면 답이 되겠다. 굉장히 세심하고 예민하다. 말이 많지 않은데, 만나보면 눈이 반짝거린다. 겉모습은 어른인데 어린아이같은 눈빛을 갖고 있다.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긴 말도 아니고 짧게 얘기하고 학생처럼 단정한 태도인데, 깊이 얘기하다보면 자기 주장에 대해 강하게 요구하고 열렬히 추구한다. 그걸 굉장히 착하고 귀여운 방식으로 전달하지만, 전달력은 정확하다.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사란 대하는 태도, 영화 만드는 진정성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계에서 러브콜이 쏟아진다고 들었다.

"정말 그런가. 다시 한국영화를 찍는다면 크나큰 영광이다."

 

-왜 본인이 외국의 영화에 캐스팅된다고 생각하나.

"모든 나라 분들이 각자 자기 이미지만을 가지고 유형화된 것 같다. 다른 나라, 문화를 가진 사람하고 일하는데 호기심이 있지 않을까. 그런 부분이 재미있어서 외국 배우에게 제의하는 것 같다. 그 호기심들이 같이 만나면 어떻게 작용될까 궁금하고 즐겁다. <급속천사>에도 중국, 홍콩, 일본, 대만 배우가 다 나온다. 지금은 모든 분들이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시대인 것 같다."

 

-한국영화만의 특징이 있나.

"감히 어떤 평을 내리기는 어렵다. 100편은 더 봐야 답을 하겠다. 다만 영화보다는 최근에 같이 일한 김태용 감독, 현빈씨, 김우형 촬영감독 등에 대해서만 얘기하겠다. 한국영화인들은 집중력이 강하고 마음을 다해서 만든다. 관객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초점을 맞춰야 하는 대상이 생기면 몰입하는 깊이가 깊다.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내내 행복했다."

 

 

-공리, 장쯔이 등은 할리우드 진출했다. 당신의 계획은.

"난 원래 계획이 없이 산다."

 

-어떻게 배우가 됐다.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연기를 접하고 나서야 이렇게 편한 일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할 때 제일 편하다. 생활 속에서는 표현하고 싶지만 표현할 수 없는걸 연기에서 진실로 표현할 수 있다. 관객은 내가 표현하는 걸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더라. 그래서 연기에 재미를 찾게 됐다. 평상시 하지 못하는 역. 예를 들어 미치광이같은 연기에도 도전하고 싶다."

 

-<만추>처럼 힘든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

"7년동안 갇혀있다가 3일 나와 하는 사랑은 하고 싶지 않다.(웃음) 사랑 경험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사랑의 기쁨과 고통은 누구나 겪는다."

 

-비공식적으로 한국에 오면 어디를 가고 싶은가.

"와서 오래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 어쩌면 한국인들과 일하면서 이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어가 좋고 아름답게 들린다. 문법, 어법 물어보면 중국어랑 어순도 다르고 해서 호기심이 생긴다. 지금 이렇게 얘기를 나누지만 그 뜻은 모르지 않나. 난 여러분의 눈을 보면서 얘기하고 싶다. <만추> 현장에서 영어로 외국 스태프와 얘기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통역을 부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그러고 싶다. 그래서 스태프들이 내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 다들 도망간 건가?(웃음) 김태용 감독님하고도 그렇게 해서 정말 완벽한 호흡을 맞췄다. 처음에는 두려워했지만, 통역을 부르지 않았다. 나중엔. 통역사가 감독님과 나 사이의 언어를 못알아들을 정도로 둘만의 언어가 생겼다."

 

 

멍든 얼굴, 멍한 표정의 여자가 한적한 주택가를 어기적대며 걷는다. 여자는 문득 발길을 돌려 집으로 뛰어간다. 한 남자가 고개를 바닥에 쳐박은 채 쓰러져있다. 여자는 자신과 남자가 찍힌 사진을 찢어 먹어치운다.

7년 후, 수감중인 여자 애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는다. 모범수인 그녀는 72시간의 휴가를 얻는다. 버스를 타고 시애틀의 집으로 돌아오던 애나는 한 남자를 만난다. 머리와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 모양, 여자에게 접근하는 매너 등이 예사롭지 않다. 남자 훈은 여자가 원하는 남자 노릇을 한 뒤 돈을 받는 것이 직업이다.


3일 후의 예정된 이별, 그 사이 벌어지는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가 <만추>의 전부다. 애나는 중국인, 훈은 한국인이다. 둘은 영어로 대화하고, 가끔 모국어로 혼잣말한다. 사연 많은 애나와 그 만큼의 사연이 있는 훈이 서로를 온전히 알기에 72시간은 너무 짧다. 그러나 평생 간직할 사랑의 추억을 만들기엔 충분히 길다.


또다른 ‘고객’을 찾던 프로페셔널 훈은 애나를 요리조리 찔러본다. 그러나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인 뒤 영어의 몸이 된 애나가 낯선 이에게 마음을 쉽게 열리가 없다. 교도소에선 수시로 애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어온다. 훈 역시 쾌활한 척 하지만 실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늘 자욱한 안개가 끼어있고 자주 비가 오는 시애틀의 풍광은 두 남녀의 관계처럼 질척댄다. 러닝타임이 절반은 지나서야 둘은 독백, 방백이 아니라 대화하기 시작한다.




두 배우는 정확한 영어로 많은 대사를 하지만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다. <만추>는 말이 아닌 감정의 영화다. 그 감정은 대양의 파도가 아니라 호수의 물결 같다. 어쩌다 비친 햇빛, 찡긋하는 눈빛, 흩날리는 머리결같이 미세한 표현법으로 그들의 감정이 전달된다. 훈은 말한다. “어떤 얘기는 꼭 말로 해야만 하는건 아니죠”

그러므로 영화에 대한 반응은 갈릴 것 같다. 굵직한 이야기와 빠른 전개를 즐기는 관객들은 될듯 말듯 아무 것도 안되는 둘의 관계에 복장을 터뜨릴지 모른다. 섬세한 감정표현과 느릿한 템포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올해의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만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10일 오전 언론시사회를 통해 다시 공개됐다. 지난해에는 ‘탕웨이의 <만추>’였는데 그 사이 ‘현빈의 <만추>’가 됐다. 이날 시사회가 열린 왕십리CGV는 수 많은 취재진, 관계자들 때문에 최근의 그 어느 한국영화 시사회장보다 혼잡했다.


그러나 영화가 누구의 것이든, 두 배우는 충분히 매력있다. 탕웨이는 데뷔작 <색, 계>의 성공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이런 여배우를 한국영화에 캐스팅했으므로, 한국영화의 자장과 역량은 충분히 성장했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 여자를 즐겁게 해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남자를 현빈처럼 느끼하지 않게 표현하기도 힘들다.


한국영화사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지금은 프린트가 유실된 이만희 감독의 동명 원작(1966)에 근거했다. <만추>는 김기영, 김수용 감독에 의해서도 리메이크된 적이 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 작품이다. 1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