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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적대적 공존에 대해, '메가마인드'를 보고.

솔직히 <메가마인드>는 드림웍스의 범작이다. <몬스터 VS 에일리언>이다 <슈퍼배드>보다는 재밌는거 같지만, <쿵푸팬더>나 <드래곤 길들이기>에는 못미친다. 물론 드림웍스의 범작은 다른 스튜디오의 수작이 될 때가 많다.

악당 메가마인드. 원래는 악당이 아닌 것 같다.


적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까.

‘적대적 공존’이란 표현처럼 모순적이면서도 우리의 현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도 없을 것 같습니다. 10년 정도 친구 혹은 같은 민족으로 알고 지낸 사람들이 순식간에 적으로 규정됐습니다. 외부의 적이 존재할 때 내부 결속력은 강화되기 쉽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라디오 연설에서 안보 위기 앞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3일 개봉하는 <메가마인드>는 적대적 공존의 양상을 풍자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물론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전체관람가 영화지만, 정치적 함의도 찾을 수 있습니다.

멸망 위기에 처한 우주의 행성에서 구명 우주선을 타고 탈출한 아기 외계인들이 지구에 도착합니다. 한 아기는 부잣집, 다른 아기는 교도소 앞마당에 착륙합니다. 외계인답게 지구인들을 능가하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각각 슈퍼히어로 메트로맨과 악당 메가마인드로 성장합니다. 둘은 도시의 주도권을 놓고 매번 아슬아슬한 승부를 벌입니다.

어느날 메가마인드가 회심의 일격을 가하자, 메트로맨은 그대로 사라집니다. 제 세상을 만난 악당은 마음껏 나쁜 짓을 하려고 마음먹지만 곧 시들해집니다. 자신을 방해할 라이벌이 없었기 때문이죠. 결국 메가마인드는 라이벌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합니다.

슈퍼히어로 메트로맨. 표정에서 보이듯 좀 재수가 없다.

사실 메가마인드는 진정한 악당이라기보다는 놀아줄 친구가 필요한 어린아이에 가깝습니다. 거대한 머리, 푸르스름한 피부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단으로 따돌림당한 메가마인드는 메트로맨과의 대결을 준비하면서 삶의 활력을 얻습니다. 따져보면 메가마인드와 메트로맨은 서로에게 강력한 적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셈이죠.

대표적인 첩보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드는 세계 지배를 꿈꾸는 미치광이, 전직 KGB 요원, 러시아 마피아, 미디어 재벌, 초국적 투기자본가를 적으로 삼아 싸워 물리쳤습니다. 악당이 강할수록 본드의 활약상은 더욱 빛났습니다.

문제는 <메가마인드>나 <007> 같은 액션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상황이 현실에서도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만 해도 적과 끝없이 싸워왔습니다. 소련, 베트남, 이란, 북한에 이어 최근엔 중국과도 심심치 않은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미국 일만도 아닙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직전엔 여당 사람이 북한 관계자를 만나 무력 시위를 요청한 이른바 ‘총풍 사건’이 있었습니다.

라이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강한 상대방을 넘어서려는 도전욕구는 자신의 성장에도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외부의 적을 상정하지 않고는 체제의 정당성을 가질 수도, 체제를 유지할 수도 없는 취약한 권력체계에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함을 믿지 못해 불안한 자들일수록 외부의 적을 필요로 합니다.

자막판에서는 (한국에선 별 인기 없지만 사실 엄청나게 웃긴) 윌 페럴이 메가마인드, 브래드 피트가 메트로맨 목소리 연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