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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저 달이 차기 전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지난 노동절 전 전주에 있었습니다. 화창한 날씨 속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우울하고 슬프고 갑갑한 영화를 봤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들어본 적도 없으셨을 이 영화의 제목은 <저 달이 차기 전에>입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의 분위기는 서정적인 제목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해 수천명의 구사대와 경찰에 맞서 공장을 점거 투쟁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77일간 싸우다가 결국 공장을 제발로 나왔습니다. 한밤중 공장 옥상에 올라 경계 근무를 서던 노동자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합니다. “저 달이 차기 전에 집에 갈 수 있으려나.”
제작진은 출입이 봉쇄된 공장에 잠입해 가족, 사회, 세계로부터 고립된 노동자들의 육성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노동자들과 경찰·구사대의 대립은 말그대로 ‘전쟁’입니다.
경찰의 헬리콥터는 저공을 선회하면서 유독성 액체가 든 봉지를 떨어뜨립니다. 구사대는 거대한 새총으로 볼트, 너트 등의 금속 부품을 쏘아댑니다. 노동자들이 잠을 잘 수 없도록 밤마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대고, 경찰은 일부러 방패 소리를 내 신경을 자극합니다.
의료진의 출입과 식량 공급을 막고, 물과 전기도 끊습니다. 헬리콥터에서 강하한 전투경찰들은 도망치는 노동자들에게 방패와 곤봉을 휘두릅니다.


우리는 쉽게 ‘사수(死守)’ ‘결사(決死)’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만, 정말 생명을 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들의 목숨은 실제로 위태롭습니다.


노동자들은 외칩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같이 살자”. 그러나 자본과 공권력은 단 한 발도 물러나지 않습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진압해 세상에 ‘본때’를 보이겠다는 듯 강경 노선으로 일관합니다. 음식, 물, 약이 떨어진 노동자들의 처지는 백만대군에 포위된 성안의 힘없는 백성과 같습니다.


천안함 참사를 계기로 보수 세력은 우리의 목숨이 언제라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과 50㎞ 거리에 가장 호전적인 세력의 장사포가 우리를 겨누고 있음을 잊고 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생각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이들의 주장만은 옳습니다. 그러나 ‘인간 어뢰’에 희생당할 가능성보다는, 경찰의 진압방패에 찍히거나 구사대의 중장비 새총에 맞아 머리가 깨질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당장 지난해 초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는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불에 타 세상을 뜨지 않았습니까.


중세인들은 흑사병이나 천연두 같은 전염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한 불황, 이에 따른 실직, 해고, 구직난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은 매우 위태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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