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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공룡에게 먹히기 위해 나타난다, <쥬라기 월드>




***스포일러 있음.


다시 한번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의 가장 큰 스크린에 들렀다. 개봉 첫 주 <쥬라기 월드>를 보기 위해서다. 스크린 크기나 사운드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여기는 편이었지만, 이왕이면 블록버스터는 이런 대형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만족스러웠다. 여름을 시작하는 블록버스터로서는 충분히 제값을 했다. 적어도 <어벤져스2>보다는 훨씬 잘 만든 블록버스터였다. (<어벤져스2>는 왜 그렇게 재미없었을까. 지금도 영웅들이 뭘 했는지 하나도 생각 안나고, 뜬금없이 등장한 호크아이의 시골집과 가족들만 생각난다.)  


국내 언론에선 찬반이 갈리는 모양이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멍청함'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그런 지적이 나올 법하다. 실제로 <쥬라기 월드>의 등장인물들은 멍청하니까. 하지만 난 이 인물들의 한심함을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사실 <쥬라기 월드>의 등장 인물들은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멍청해야 한다. 그래야 이 기막힌 테마 파크에 사고를 부르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룡들에게 잡아먹힐 수 있으니까!


사실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공룡이 어떻게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을 추격하고 가끔 잡아먹는지를 살피는 영화에 다름 아니다. '쥬라기 월드'가 내내 안전한 테마파크였다면, 아무런 영화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스크린 뒤에 멀찌감치 앉아있는 관객들은 인간이 공룡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보기 위해 돈 1만2000원을 지불한다. 


공룡의 난동이 시시하거나 잡아먹는 방법이 천편일률적이면 문제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13일의 금요일>과 비교할 수 있다. <13일의 금요일>도 살인마 제이슨이 단 한 명의 주인공만 빼고 다른 사람을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죽이는지가 핵심인 영화다. 


<쥬라기 월드>에선 이 테마파크의 경영자인 클레어의 비서가 비교적 흥미로운 방식의 죽음을 맞이한다. 풀려난 익룡 프테라노돈들은 마치 농구선수가 공을 주고받듯 이 불쌍한 여성을 이리저리 패스하고 괴롭히는데, 결국 거대한 바다공룡 모사사우르스가 그녀를 잡아먹는 영광을 누린다. 그 외에는 등장할 때부터 '죽겠다' 싶은 사람은 꼭 죽는다. <스크림>은 공포영화에서 죽을 사람을 알아맞히는 공식을 폭로한 적이 있는데, <쥬라기 월드>의 제작진도 죽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을 죽이는 걸 두려워 않는다. 설마 12세 관람가 영화에서 청소년 형제나 그들의 보호자가 죽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겠지. 



모사사우르스의 먹이 먹기 쇼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일단 유머가 잘 먹히지 않는다. 스필버그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했을 법한 대사나 상황이 <쥬라기 월드>에서도 등장하는데, '피식'하긴 하지만 '빵' 터지진 않는다. 이 영화의 총괄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도 어느덧 69세. 그 나이를 넘어서도 계속 웃길 수 있는 사람은 우디 앨런 정도다. 


다른 설정의 허술함은 다 눈감는다 치더라도,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연기한 인물, 즉 전직 군인이자 현재 민간 용병회사에 소속된 것으로 보이는 남자의 생각은 아무리 곱씹어도 이해를 못하겠다. 이 남자는 렉스를 군용 병기로 키우고자 한다. "렉스가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면서. 그래서 나도 영화를 보며 실제로 렉스가 아프가니스탄의 전투에 투입되는 장면을 상상해 봤는데, 아무리 봐도 그다지 효율적일 것 같지 않다. 렉스를 탄생시키고 훈련시키는데 드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보이는데다, 렉스가 전장에서 극단주의자들의 로켓 공격을 이겨낼 것 같지도 않다. 렉스 하나를 키우느니 블랙워터 용병 10명을 보내는게 낫지 않을까. 군사적 모험주의자를 영화에 투입시킨 계몽적 이유는 이해하겠지만, 이런 사람은 그저 악당처럼 보이기 위한 악당일 뿐이다. 


우리의 티라노사우르스와 렉스가 힘을 합쳐 유전자 조작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를 제압하는 엔딩은 "태권브이와 마징가제트가 싸우면 누가 이기냐" 식의 유아적이지만 결정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함인지, 유전자 조작 생명체가 '원조'에는 당하지 못한다는 전통적 아이디어를 반영한 것인지, 옛 <쥬라기 공원> 팬들의 향수를 위함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엔딩으론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원래 <고질라> 시리즈를 봐도 인간은 왜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주인공은 특수효과로 탄생한 괴생명체일 뿐. <쥬라기 월드>의 인간들도 공룡들의 난동을 위한 노리개에 불과했으니, 엔딩에선 아예 주인공들끼리 판을 만들도록 자리를 비켜주는게 정도일 것이다. 



렉스를 길들이려는 인간. 인간은 이 영화에서 단역이기에, 얼굴이 안 보이는 사진을 고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