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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오늘 벌어진 일은 옛날에도 벌어졌다-사라의 열쇠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사라의 열쇠>


케케묵은 지난 일을 왜 기억해야 합니까.

1942년 7월 프랑스는 나치에게 점령된 상태였습니다. 나치의 하수인이 된 프랑스 정부는 아돌프 히틀러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프랑스 경찰은 1만명 이상의 유대계 프랑스인을 체포해 벨디브 경륜장에 수용했다가 차례로 죽음의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나치 점령기였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프랑스인의 손으로 직접 저질러진 이 끔찍한 사건은 프랑스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훗날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 사건에 프랑스 경찰과 공무원이 개입된 것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11일 개봉하는 <사라의 열쇠>는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10살 소녀 사라는 남동생을 벽장에 숨기고 문을 잠근 뒤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벨디브로 끌려갑니다. 사라는 동생을 꺼내주겠다는 일념으로 가까스로 임시 수용소를 탈출합니다. 세월이 흘러 2009년 프랑스의 어느 잡지사. ‘벨디브 사건’을 취재하던 미국인 기자 줄리아는 남편과 함께 이사들어가려던 집에서 사라의 자취를 발견합니다.


미국의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사람들은 역사에 붙들려 있고, 역사는 사람에 붙들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라의 열쇠>는 이 인용구의 뜻을 뛰어나게 시각화합니다. 사라와 줄리아 사이에는 57년이라는 시간의 벽이 가로막혀 있지만, 둘의 삶은 서로에게 얽혀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흔적 위에 발딛고 서있습니다. 그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페인트를 칠하고 벽지를 덮는다 해도, 과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라는 경륜장, 수용소를 거치며 부모와 헤어졌지만 벽장 열쇠만은 꿋꿋이 간직합니다. 체포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긴 끝에 파리로 돌아오지만 시간은 조금 늦은 듯 합니다. 사라는 벽장에 열쇠를 꽂아 돌린 뒤 역사와 삶의 비극을 직시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라보다 용기가 없습니다. 줄리아의 남편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사라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엮인 자신의 가문을 취재하는 아내에게 “그 잘난 진실이 무얼 가져다줬냐”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냅니다.


두뇌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망각이라고 합니다. 받아들인 수많은 정보를 죄다 기억한다면 인간은 제정신으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집단도 때로 개인과 비슷해서, 불편한 진실은 잊은 척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촌스러운 옛사진이라도 되는양 벽장 안에 넣어둔 채 열쇠를 잠그고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편한 기억일수록 햇빛 아래 또렷이 드러내야 합니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시간의 파괴력, 망각의 힘에 끝까지 저항해야 합니다. 오늘 일어난 나쁜 일은 대개 옛날에도 한 번은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