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미지/배우를 말한다

영화 <위핏> 드루 배리모어

드루 배리모어는 ‘돌아온 탕아입니다. 이 탕아는 오늘의 행복을 만끽할 줄 알되, 어제의 고통도 잊지 않습니다. 한때 힘든 시절을 보냈던 ‘언니’는 이제 방황하는 ‘여동생’에게 연민과 연대의 시선을 보냅니다.


18일 개봉하는 <위핏>(원제 Whip it)은 배리모어의 감독 데뷔작입니다. 할리우드의 정상급 여배우가 직접 메가폰을 잡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만, 10년 전부터 영화 제작에 뛰어들어 크고 작은 성공을 거뒀던 그가 연출에 욕심을 내는 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의 주인공은 10대 후반의 소녀 블리스. 블리스는 극성스러운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지역의 청소년 미인대회에 참여하곤 하지만, 마음은 몸에 맞지 않는 드레스를 입은 듯 불편합니다.
어느날 블리스의 눈 앞에 신천지가 펼쳐집니다. 롤러 스케이트를 탄 여자들이 치고받고 달리는 ‘롤러 더비’. 블리스는 나이와 신분을 숨긴 채 ‘헐 스카우트’팀에 지원합니다. 어머니가 원하는 조신한 숙녀의 길과 자신이 원하는 자유인의 길 사이에서 블리스는 고민합니다.


<위핏>은 사랑스럽고 활기찬 성장영화입니다. 선과 악 사이에 경계선을 그으면 만들기와 보기가 모두 쉬우련만, 배리모어의 감성은 단순한 이분법을 뛰어넘습니다. 딸의 길을 가로막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비열한 반칙을 구사하는 상대팀의 에이스에게조차 이해의 시선을 보냅니다. 롤러 더비가 펼쳐지는 미국 텍사스의 작은 마을에는 천사나 악마가 없습니다. 초라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서, 모두 각자의 꿈과 행복을 위해 한걸음씩 내디디려 노력할 뿐입니다.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배리모어는 10대 초반에 이미 웬만한 사람이 평생 가도 못겪을 인생 역정을 걸었습니다. 유명 배우 가문에서 태어난 배리모어를 위해 스티븐 스필버그는 기꺼이 대부가 돼줬습니다.
그 유명한 <ET>의 아역을 맡은 배리모어는 6살에 이미 세계적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가파른 성공은 급격한 추락으로 이어졌습니다. 9살에 담배, 11살에 술을 시작했고, 12살엔 마리화나에 손을 댔습니다. 그리고 14살엔 스스로 손목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배리모어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때론 놀라운 연기파로, 때론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의 히로인으로, 무엇보다 그 많은 장난기와 욕망과 열정을 숨기지 않는 개인으로. 누구나 상처받고 약하고 방황하는 이들을 쓰다듬을 수 있지만, 그러한 시절을 직접 겪은 이의 손길은 더욱 따스할 겁니다.


춥습니다. 그러나 이 겨울을 겪은 뒤에야 봄볕의 따스함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배리모어는 <위핏>을 통해 방황하는 소녀, 소년에게 말을 건넵니다. “괜찮아, 모든 건 다 지나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