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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 아키 카우리스마키, 나이든 예술가, <르 아브르>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르 아브르>는 올해 개봉한 외화 중 베스트 10에 넣을만하다. 카우리스마키, 잘 나이 들고 있는 감독.

구두닦이 할아버지와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 소년.


프랑스 서북부의 작은 항구도시 르 아브르. 구두닦이 마르셸은 아내 아를레티, 애견 라이카와 함께 풍족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어느날 그에게 예기치 않은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부둣가에서 점심을 먹던 마르셸 앞에 아프리카에서 갓 건너온 불법 난민 소년 이드리사가 나타난다. 아울러 아내 아를레티가 갑자기 중병에 걸려 쓰러진다. 마르셸은 이드리사를 숨겨주고, 그의 선량한 이웃들도 이드리사를 돕는다. 여론은 불법 이주자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요구한다. 경감 모네는 이드리사의 자취를 추적한다.

부자의 기부는 어렵다. 빈자의 기부는 그보다 더 어렵다. 부자의 기부에는 명예가 뒤따르고, 기부를 한다 해도 자신의 현재 생활 수준을 유지할 만큼의 재산은 남겨둔다. 그러나 빈자가 기부하면 남는 것이 없다. 세상은 그의 기부를 알지 못하기에, 별다른 칭찬도 받지 못한다. <르 아브르>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자신의 것을 나누는 빈자의 이야기다. 이 선행은 심지어 실정법에 어긋나지만, 마르셸은 아랑곳없다. <르 아브르>의 주인공에게 국가의 법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의 법이기 때문이다. 이 올곧음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잠자고 있던 이웃의 선의를 일깨운다.

영화팬이라면 이 소박한 동화같은 영화를 연출한 이의 이름을 듣고 놀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1989), <성냥공장 소녀>(1989) 같이 기발하고 날카로운 영화를 만들어왔던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54). 많은 예술가의 작품 궤적이 그러하듯, 나이가 들면 절로 여유가 찾아와 잘 벼려졌던 작품의 결에 온기를 돌게 하는 걸까.

모네 경감의 파인애플은 지금 생각하면 나름 유머였던 것 같다. 별로 웃기진 않았지만.

‘나이 든 예술가’에 대한 이 같은 시각이 진부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문예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조화와 해결이 아니라 비타협, 난국, 모순을 드러내는 말년의 예술가를 높게 평가했다. 사이드는 ‘성숙’과 ‘포용’을 강요하는 예술계 안팎의 분위기에 맞서, 세상과 끝내 화해하지 않는 비판적 사유를 드러낸 루드비히 반 베토벤, 장 주네, 글렌 굴드의 말년을 옹호한다.


카우리스마키는 부조리한 세상과 싸우다 지친 나머지, 선량한 소시민이 연대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얼버무리는 걸까. 그렇게 비판하기엔 <르 아브르>의 형식적 탁월함이 목에 걸린다. 기묘하게 가라앉은 원색의 세트 안에서 배우들은 희로애락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으로 연기한다. 빛, 음향, 음악의 흐름도 철저히 통제돼 있다. 이 연출, 연기의 미니멀리즘은 특정 배우의 개인기가 아닌, 인물의 감정, 행동 동기, 결과만을 직시하도록 유도한다.

<르 아브르>의 결말이 순진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순진함을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 카우리스마키는 너무나 가혹한 세상에 그만큼 가혹한 영화를 한 편 보태기보단,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보태는 편을 택한 것은 아닐까. 자연의 인과를 초월한 ‘기적’이 나타나는 이 영화는 우리 삶이 행복해지려면 기적이 필요하다는 역설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카우리스마키는 <르 아브르>를 시작으로 스페인, 독일로 이어지는 ‘항구도시 3부작’을 계획 중이다. 씨네큐브, 아트하우스 모모, CGV 무비꼴라쥬 계열 극장 등 10여개 스크린에서 8일 개봉한다. 전체 관람가.


경감의 트렌치 코트에 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