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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솔로이스트, 열정이 넘쳐 미치도록 빠진다면…

미치도록 열광해 본 적이 있습니까.

19일 개봉한 외화 <솔로이스트>(원제 The Soloist)는 미치도록 연주하다 정말 미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와 교감하는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기삿거리를 찾아 헤매는 LA타임스의 기자 스티브(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혼잡한 도심에서 아름다운 현악기 소리를 듣습니다. 연주의 주인공은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이는 노숙자 다니엘(제이미 폭스). 스티브는 다니엘이 한때 줄리아드 음대에 다닐 정도로 촉망 받는 연주자였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그의 사연에 관심을 보입니다. 그에게 좋은 악기를 선물하고, 노숙자를 위한 쉼터로도 안내해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올려주려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너무 오래, 멀리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의 조 라이트가 연출했습니다.

연주자로서의 밝은 미래가 보장돼 보였던 다니엘은 왜 거리로 나서야 했을까요. 흔한 예상대로 가정 환경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다니엘의 어린 시절을 간간이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잠을 자기 전에도 펜으로 줄을 그어놓은 자신의 왼쪽 팔뚝을 짚으면서 연주를 상상할 정도의 연습벌레였습니다. 지하실에 자신만의 연습실을 마련해 두고는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첼로를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몰두가 지나쳤습니다. 자신만의 음악 세계에 빠진 그는 음악 세계 바깥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립니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첼로를 켜다가 떠들썩한 바깥의 소리에 잠시 창가로 다가갑니다. 길에는 불이 붙은 자동차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토록 위험하고 극적인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와 다시 첼로를 잡습니다.

타성에 젖은 직업인이자 결혼생활에 실패한 스티브는 다니엘의 열정을 부러워합니다. “그가 음악을 사랑하는 것만큼 어떠한 것도 그처럼 사랑해본 적이 없어.” 그러나 음악이든 무엇이든, 정말 열정적으로 하다가 미치는 건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겁니다.

현대 사회가 세분화되고 몰두할 거리가 많아지면서 온갖 종류의 ‘마니아’가 생겼습니다. ‘마니아’의 어원 자체가 ‘광기’와 연결돼 있습니다. 일본에선 마니아를 넘어선 집착을 보여주는 이들을 ‘오타쿠’라 부르기도 합니다. 일본 만화, 프랑스 영화, 구체관절 인형, <스타 워즈>의 캐릭터 등. 마니아나 오타쿠는 최초의 창작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디테일을 첨가하고, 사랑하는 대상만의 소우주 속에 머물기도 합니다. 그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는 오싹할 때도 있죠.

미치도록 열광해 보는 건 중요합니다. 열정은 자랑스러운 덕목입니다. 하지만 광기와 열정만큼 중요한 건 균형과 안목입니다. 나무만 보며 걷다보면 숲속에서 길을 잃게 마련입니다. <스타 워즈>건, 일본의 애니메이션이건,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건 모든 창작품은 우주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누구도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모든 창작품은 사회의 생산물입니다. 균형과 절제와 사회를 넓게 바라보는 시선은 예술가뿐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