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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카타콤, <일탈: 게일 루빈 선집>





'카타콤'은 궁금하긴 한데.... 만약 가볼 기회가 생기더라도 나로선 여기서 묘사된 걸 읽는 정도로 충분하겠다. 



일탈: 게일 루빈 선집

게일 루빈 지음, 신혜수·임옥희·조혜영·허윤 옮김/현실문화/904쪽/4만4000원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게일 루빈 미국 미시간대 교수(66)는 문제적 인물이다. 인류학, 비교문학, 여성학을 가르치는 그는 1970년대부터 논쟁적인 글을 써왔는데, ‘진보’를  자처하는 페미니스트들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통에 진영 내에서도 미움받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역자를 대표해 서문을 쓴 임옥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조차 1997년쯤 <일탈: 게일 루빈 선집>의 번역을 제안받고는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그로부터 18년이 지나 임 교수는 “마음속의 금서”였던 <일탈>을 번역해 펴내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게일 루빈이 40년간 써온 주요 논문을 엮은 선집이자, 유일한 단독 저서다.


루빈이 천착한 주제는 성(性)이었다. 루빈 자신이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자 사도마조히스트다. 9장 <카타콤>은 연구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카타콤은 원래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숨어들어 예배를 치른 지하 묘지다. 이 글에서 카타콤은 1975~81년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남성 동성애자들의 사교장소를 말한다.


엄격한 절차를 거쳐 카타콤에 모인 이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쾌락을 즐겼다. 각종 장치와 행위에 대한 묘사가 눈 앞에서 보듯 생생하다. 부부의 섹스 이외의 모든 성은 부도덕하게 간주하는 이들이라면 한 쪽도 넘기지 못할 만한 묘사다. “카타콤의 환경은 성인들이 거의 아이처럼 자신의 신체에 대해 경이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는 문장만 인용하자.



게일 루빈/현실문화 제공


그러나 카타콤에 대한 루빈의 시선은 들뜨기보다는 애잔하다. “대부분 우리 사회는 육체적 쾌락에 대한 추구를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것과 유사하게” 여기지만, “카타콤은 신체와 감각적 경험에 대한 신체의 능력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찬양하며 사랑”하는 장소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는 여러가지 몰이해와 비극을 이기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루빈은 현대의 성을 둘러싼 갈등이 지난 세기의 종교 분쟁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를 가장 격렬히 반대하는 집단이 보수 개신교단이라는 사실과 맞물린다. 미국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보수 세력은 ‘부도덕한’ 성 행동을 미국의 국력 쇠퇴와 연괸짓기까지 했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번의 ‘일탈’ 때문에 사회에서 매장되곤 했다.


루빈은 “생식기가 본질적으로 신체의 열등한 부위”라거나 “최상의 유일한 성교 방식이 있으며, 모든 사람이 그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그는 성 해방이 남성 특권을 확장시킬 뿐이라고 보는 일부 페미니스트들도 비판한다. 이들은 포르노그래피, 성산업을 반대하면서 그것이 성차별적 현실을 고착화한다고 주장하지만, 루빈은 반대로 성산업은 성차별주의가 만연한 사회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루빈이 보기에 이런 페미니스트들은 결국 성적 보수주의 담론과 공명할 뿐이다.


임옥희 교수는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성이 구성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총론을 작성하려 했다면, 루빈은 그것에 관한 구체적인 각론의 장을 전개해왔다”고 적었다. 주디스 버틀러와의 인터뷰는 루빈의 생각에 대한 길잡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