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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풍기문란을 허하라, <음란과 혁명>

제목이 흥미가 돋운다. 전자를 분석하고 후자의 희미한 가능성을 찾는데 집중한다. 


음란과 혁명

권명아 지음/책세상/412쪽/2만3000원


‘예술인가 외설인가’라는 홍보 문안을 붙인 영화, 소설은 대체로 외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내 오랜 짐작이었는데, 국문학자 권명아는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과 외설의 구분은 음란물에 대한 일제 시대의 탄압에서 시작해 정비석, 유현목, 마광수, 장정일 등을 옭아맸다. 최근에는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가 “주제와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 부분에서 청소년에게는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직계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반사회적인 표현이 있다”는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이 등급을 받은 영화는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는데, 현재 한국에는 제한상영관이 없기에 <뫼비우스>는 현재 상태로는 한국에서 볼 수 없다. 


권명아는 특히 장정일을 둘러싼 음란물 논쟁, 재판 과정에 관심을 가진다.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음란성 논쟁을 일으킨 장정일은 1997년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다. 애초 법률적 지원을 거부한 채 혼자 재판을 받은 장정일은 작품의 음란성 여부를 캐묻는 검사에게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았으며, “만일 청소년이 저의 작품을 읽는다면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훗날 장정일을 설득해 그의 변호를 맡은 강금실은 “외설(음란)이지만 예술 작품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요지로 변론을 전개했는데, 이 변론이 효과적이지 않았음을 재판 3년이 지난 시점에야 깨달았다고 돌이킨다. 왜냐하면 장정일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육체와 육체의 부딪힘과 섞임에 대하여 투명하고 냉정하게” 제시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장정일의 손에는 음란성이 없다. “음란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국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음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소설을 처벌한다.”


이제 권명아의 논점은 예술·외설 논쟁을 넘어선다. 풍기문란에 대한 판단이란 “해당 사회의 정동 구조를 규율화하고 정동 생산 기제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과 관련”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외설인가라는 질문은 곧바로 무엇이 바람직하고 무엇이 바람직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으로 확대된다. 한때 남자가 머리를 기르거나, 여자가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극장에 가는 학생, 카페에 앉아있는 주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시대도 있었다. 언제, 왜, 누가 그런 관점을 유포시켰는가. 권명아의 논점은 여기에 있다. 


풍기문란에 대한 법적 통제는 일제의 풍속통제에 연원한다. 그 당시의 풍속통제는 음란물 단속 이상이었다. 한 가지 사례가 조선, 중국의 ‘옛것’에 대한 거부였다. <홍길동전>이나 <삼국지> 같은 고전 소설이 일제의 단속 대상이었다. 이러한 소설들은 사람들의 심성에 오래도록 주요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의 풍속경찰들은 성, 음주, 도박, 영화, 연극, 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단속 대상을 찾아냈다. 


일제 풍속경찰이 단속한 것은 엘리트층이 아니라 서민의 문화, 기호였다. 부랑자, 실업자, 무연고자 등 ‘사회불안세력’과 여성, 미성년 등 ‘보호받아야할 사람들’의 풍습을 감시했다. 감시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간단히 말해 ‘적절하고 좋은 것’이면 허용됐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적절하고 좋은 것인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할 일 없이 경성 시내를 방황하는 ‘유한 여성’, “옆 사람의 움직임을 엿보며 그에 끌려가는 칠칠치 못한 태도를 가진 사람”(춘원 이광수의 말)까지 ‘비국민’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말할 수는 있다. 이는 조르조 아감벤이 나치의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의 글을 인용하며 설명하듯, “생명과 정치, 사실 문제와 법률 문제의 구별이 말 그대로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이었다. 풍속경찰이 “적절치 않다”고 보면, 대통령이 “남자가 머리 길면 보기 싫다”고 생각하면, 영상물심의위원이 “비윤리적이다”라고 판단하면, 그것은 곧바로 국가의 법이 된다. 이곳에서 도덕적 비난과 법적 처벌의 경계는 사라진다. 


과거나 현재나 풍속경찰들의 눈에 인간은 그 자체로 보호받을 권리를 갖지 않는다. 오직 선량한 시민의 속성을 가질 때에만, 무가치한 것을 버릴 때에만 보호받을 수 있다. 심지어 풍속경찰들의 판단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판단으로까지 나아갔다. 풍속경찰들은 정혼한 남녀 이외의 성관계를 단속하면서 “성도덕은 종족 보존의 본능”과 관련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혼외 성관계, 동성애 등은 인간 본성에 어긋나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패전 이후 일본은 풍속통제를 대표적인 파시즘 법제로 보고 폐지한 뒤 음주, 도박, 매매춘 관련 단속에만 집중했다. 반면 한국의 풍속통제는 해방 이전과 마찬가지로 온갖 일상 생활 분야에서 행해졌다. ‘퇴폐풍조 박멸’을 내걸고 엘리트의 윤리 감각에 어긋나는 것들에 끊임없는 시비를 걸었다. 권명아는 4·19 혁명을 문제적으로 분석한다.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민초들이 최고 권력자를 몰아낸 혁명인 4·19의 이상은 이듬해 5·16 쿠데타 이후 실패 혹은 미완으로 남았다. 이 시기를 정면으로 겪어낸 세대들에게 4·19는 “잊지 못할 사랑의 추억일 뿐 아니라, 좌절과 배신의 추억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4·19와 5·16의 ‘이인삼각’이라고 표현했다. 


‘준비된 혁명’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4·19는 더욱 그러했다. 당시의 엘리트들은 설령 4·19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혁명 이후의 혼란과 ‘구두닦이’로 상징되는 비엘리트들의 열정을 두려워했다. 엘리트들에게 4·19는 오직 학생, 지식인, 남성의 몫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4·19 이후 학생들은 “공명심을 버리고 애국심으로 수습하라”는 의제를 내걸었다. 이런 의제를 통해 학생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동시, 혁명 참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해 나갔다. “이러한 혁명의 문법에서 청년의 열정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지만, 여성과 미성년, ‘무지한 대중’의 열정은 과잉되거나 부족한, 또는 훼손되거나 결여된 것으로 다루어진다.”


여성들의 모임은 정치적 의제, 사회적 구성체로 다루어진 적이 없었다. 계, 동창회, 친목회, 부인회 등은 ‘유한부인’들의 허영심으로 뭉친 모임이라고 여겨졌다. 혁명 직후의 한 여성지에는 “요사이 유행인 계나 한답시고 또는 동창회의 친목회나 또는 기타 직장을 중심으로 하는 부인회를 한답시고 얼마나 건설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반성해보십시다”(‘여원’ 1960년 7월호)라는 발언이 게재됐다. 



 5.16 쿠데타 이후 어느 시점. 댄스홀에서 춤을 추다 잡혀와 재판을 받으러 가는 남녀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시기 풍기문란에 대한 제재는 여성, 미성년을 혁명 주체에서 규율의 대상으로 바꿔 놓았다. 이들이 있어야할 자리를 광장에서 가정 또는 학교로 돌려놓은 것이다. 1962년부터 소년범죄 발생률과 청소년 풍기 단속률이 급증한 이유를 청소년의 일탈이 갑자기 늘어난 데서 찾는 것만큼 순진한 태도도 없겠다. 


다시 장정일 이야기다. 1960년 4월11일 마산 중앙부두 앞에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채 죽은 고교생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 이는 4·19의 시발점이었다. 장정일은 그로부터 2년이 안된 1962년 1월 경북 달성에서 태어났다. 때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인들이 한 해 전 일어난 시민 혁명의 주동자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기 위해 협상하거나 타협하거나 처벌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장정일이 그러했듯 학교에서 쫓겨나고 소년원에 가고, 삼중당 문고를 독파한 끝에 시인·소설가가 되었으나 결국 ‘음란범’으로 법정에 서야 했다. 그러므로 장정일의 출생, 성장, 고난의 배경에는 체제가 덮어씌운 일종의 ‘원죄’가 있다. 풍기문란 단속은 음란물 제작, 유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헤집어 규정하는 더 큰 힘과 관련이 있다.


풍기문란이라는 규정은 ‘부적절한 정념’이라는 기준에 근거한다. 여기에는 정동·정념·감각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이성은 인간을 올바로 서게 만들지만, 열정과 정념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고 오랫동안 간주돼왔다. 엘리트층이라고 정념을 가지지 않을 리 없기에, 이때 문제가 되는 정념은 권력자의 법이나 윤리로 번역되지 않는, 흘러넘치는 정념이다. 이렇게 흘러넘치는 정념을 부정하는데는 좌와 우가 따로 없다. 일제시기 사회주의 문학권의 논쟁작인 이기영의 <서화>는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게 읽어볼 작품이다. 비평가 임화는 <서화>의 주인공 돌쇠가 선과 악, 혹은 이성과 정념이라는 ‘두 개의 혼’을 갖고 있다고 본 뒤, 전자가 후자를 지양하는 과정을 높게 평가한다. 농민이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선, 이성으로 정념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책의 제목을 돌아보자. <음란과 혁명>이다. 이는 저자가 직접 붙인 것이라고 한다. 책을 읽어보면 ‘음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는데, ‘혁명’의 가능성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4·19를 주요하게 언급하긴 하지만, 그것은 ‘실패한 혁명’으로 규정될 뿐이다. 풍기문란한 이들에게, 음란죄로 법정에 선 작가에게 혁명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가. 권명아는 광장에 선 ‘촛불소녀’들을 조심스럽게 언급한다.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량에 깔려 세상을 뜬 두 소녀는 애도의 대상이었지만, 2008년 촛불집회의 소녀들은 집회의 주도자였다. 10대 소녀는 ‘빨간 마후라’를 찍은 ‘문란녀’이거나 ‘오빠 부대’라 불리는 자본주의 대중문화의 포로들이었지만, 어느새 광장에 선 ‘정치적 존재’가 된 것이다. 모든 여성은 한때 소녀였지만, 소녀는 단지 여성이 되기 위한 과도기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소녀는 여성의 과거이자, 여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특이성을 담지한 존재의 어떤 순간이다.” 정말 소녀를, 정념을, 떠돌이를 믿어도 될까. 아마 권명아는 반대로 되물을 것이다. 성인 남성을, 이성을, 직장인을 믿어도 되겠느냐고. 


책 말미에는 대한문, 울산, 제주 등으로 이어지는 전국의 농성촌 지도가 수록돼 있다. 이 캠프에서 하나씩 불을 밝히고, 이 불을 외롭게 놓아주지 않을 때, 그것은 하나의 별자리가 된다. 이제 게토는 아지트로, 전국의 농성촌은 배제된 자들의 연대 장소가 된다. 풍기문란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농성촌 지도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그것을 불가능한 혁명에 대한 ‘의지적 낙관’으로 봐야할지, 책의 통일성을 떨어뜨리는 과잉으로 봐야할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