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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사랑은 운명이 아니다. <컨트롤러>와 <타이머>

사랑은 운명이 아닙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물론 많은 멜로영화들은 사랑이 운명이라고 주장합니다. 주말 오후의 데이트에 멜로영화를 본 젊은 남녀들은 영화의 주장을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운명이 아니라는 증거는 도처에 널렸습니다. 치솟는 이혼율, 부부나 연인의 끝없는 다툼, 숱한 불륜은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사랑이 운명이라 하더라도 운명의 상대를 만날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세계 인구가 60억명입니다. 운명의 상대를 어떻게 만나고, 만난다 해도 그가 맞는지 어떻게 확신합니까.

이번주 개봉작 <타이머>는 말도 안되는 기계장치를 소개합니다. 제목 그대로 ‘타이머’란 이름의 이 장치는 손목에 이식돼 운명의 짝을 만날 날까지 남은 시간을 디지털 숫자로 표시합니다. 물론 상대방도 타이머를 이식해야 장치가 제대로 작동합니다. 운명의 짝을 만날 날이 되면 타이머의 남은 숫자는 0이 되고, 상대를 만나는 순간 신호음이 울립니다. 타이머를 이식하는 회사에서는 이 장치를 통해 만난 커플의 만족도가 98%에 달한다고 소개합니다. 연애를 하면서 이 사람이 운명의 짝인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죠.

타이머


영화는 운명의 짝이 아닌 네 남녀의 사랑을 그립니다. 타이머는 운명이 아니라고 하는데, 주인공들은 눈앞의 그 사람이 좋습니다. 몇 년이 지나면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좋은 감정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운명을 극복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했던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는 결말을 제시합니다.

지난주 개봉작 <컨트롤러>는 반대 방향으로 향합니다. 이 영화엔 심지어 신과 천사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운명의 궤도를 정해놓고, 인간이 그 궤도를 따라 움직이도록 유도합니다. 하지만 칙칙한 색깔의 양복을 입은 천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맷 데이먼은 끝내 운명이 아닌 사랑을 쟁취하려 듭니다.

컨트롤러

한 편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하고, 다른 한 편은 거스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에 운명이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걸 잘 압니다. 죽고 못살듯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가 알고보면 1년도 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모두를 침울하게 할 겁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운명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관계는 원활하게 지속되기 힘듭니다. 물론 운명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연애하고 결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인생을 계산대로, 필요대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렇게 될지 가만히 지켜봐 줍시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아인슈타인은 말했습니다. 우주는 확률이 아니라 규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후 물리학의 성과는 확률적 우주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운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있다고 해도 신이 아닌 인간은 결코 그 운명을 모릅니다. 사랑 역시 운명이 아닌 확률이지만, 우리는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률은 노력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농구선수가 마이클 조던이 될 수는 없지만, 노력하면 자유투 성공확률 정도는 높일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