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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백색의 두 가지 방향, '눈'과 '흰'

지난해 김민정 시인은 인터뷰하는 자리에 넓직한 교정지를 들고 왔다. 무슨 책이냐 물어보니 곧 나올 막상스 페르민의 '눈'(난다)이라고 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시적인 책이라고 자랑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작가 한강에게 이 책을 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페르민은 처음 듣는 작가라 이름만 기억했다. 인터뷰 다음 달 '눈'이 출간됐으나, 곧바로 집어들만큼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여름 막바지가 돼서야 챙겨두었던 '눈'을 펼쳤다. 

 

1999년 출간된 책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124쪽에 불과하고, 게다가 행간이나 여백이 넓어 텍스트는 더욱 적다. 마음 먹으면 1시간 이내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책을 '마음 먹고' 읽을 이유는 없다. 책에 여백이 많다는 건 그만큼 독서에도 여백을 주라는 지침일 것이다. 

 

프랑스 작가의 소설이지만 19세기 후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하이쿠와 눈을 사랑하는 청년 유코 아키타가 주인공이다. 유코가 승려나 군인이 되길 원하는 아버지는 시인이 되겠다는 아들이 못마땅하다. 아버지가 말하자 아들이 답한다.

"시인은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흘러가는 물이다. 이 강물처럼 말이야."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눈을 좋아하는 유코는 눈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해서만 시를 쓰겠다고 결심한다. 봄이 오면 벚꽃 잎의 향을 맡고 ,여름이 되면 숲에서 꿀 향기를 맡고, 우기에는 버섯을 관찰했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면 눈에 관한 하이쿠를 썼다. 그러던 중 유코의 집에 궁정 시인이 찾아온다. 궁정 시인은 유코가 서예, 회화, 춤에 대해 무지하고, 유코의 시에 색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더욱 수련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유코는 내키지 않았지만 궁정 시인의 권유에 따라 남쪽의 소세키 선생을 찾아나선다. 

 

여기까지가 도입부고, 이후엔 유코와 전직 무인이자 현직 예술가인 소세키, 소세키와 프랑스 출신 곡예사 여성의 사랑, 유코가 예기치 않게 둘의 운명에 개입하는 과정, 유코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솔직히 도입부 이후는 도입부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다. 책의 이미지나 부피에서 조금 더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것 같다. 소세키와 곡예사의 사랑은 동화적으로 그려지는데, 시의 본질이나 눈에 대한 탐구를 그린 도입부와 잘 접합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친 김에 한강의 '흰'(문학동네)도 사서 읽었다. 이 책의 편집자 역시 김민정이다. 내가 구입한 건 지난달 나온 2판 6쇄다. 2판엔초판에 없던 '작가의 말'이 실려 있다. 그리고 '작가의 말'은 책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흰' 역시 '눈'처럼 시적이고 짤막한 소설이다. ('흰'은 196쪽이다.) 물론 흰 색을 소재로 한다는 점을 빼고 둘은 크게 다른 소설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하얀'과 '흰'을 구분한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흰' 책이었다." 작가는 '흰' 책을 쓰기로 하고 소재의 목록을 만들어간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파도, 백목련, 수의...

 

픽션에서 작가의 자전적 삶을 읽어내는 건 부질없고 무용하겠지만, '흰'에는 작가의 경험담이 크게 들어있는 것 같다. 추정컨대 작가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한동안 머물며 이 책을 썼다. 그곳은 히틀러에게 저항하다가 본보기 절멸 도시로 지적돼 95%가 파괴됐다. 조금 스산하고 한적한 도시에서 작가는 두통에 시달리며 글을 쓴다. 무엇보다 그 글은 작가의 어머니가 스물 네살 때 혼자 있다가 조산한 큰 딸, 두 시간 동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속삭였지만 끝내 떠난 아기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는 이듬해 두번째로 낳은 사내 아기를 또다시 잃었고, 그로부터 3년이 흘러 '나'를, 또 4년이 흘러 남동생을 낳았다. 앞선 두 생명이 살았다면, 화자와 그의 남동생이 태어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어머니도 임종 직전까지 "그 부스러진 기억들을 꺼내 어루만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에게 죽은 언니는 일종의 빚이고, 화자는 죽은 언니 대신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면 당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어둠과 빛 사이에서만, 그 파르스름한 틈에서만 우리는 가까스로 얼굴을 마주본다." 

 

'작가의 말'에서 전한 것처럼, '흰'은 죽음과 애도에 대한 글이다. 하지만 꺼이꺼이 통곡하지는 않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일상을 살면서 문득 생각하고 애도한다. 낯선 동유럽의 도시를 산책하면서, 조금씩 춥고 어두워지는 도시의 분위기에 침잠하면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두통을 견뎌내면서 애도한다. 순진하게 예쁜 '하얀'이 아니라, 먹먹한 '흰' 글을 쓴다. '흰'은 한강의 전작보다 조금 더 개인적인 글이겠지만, 거창하게 말하면 존재의 부채의식을 드러낸다. 우리의 삶이 거저 주어진 것,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누군가의 희생이나 죽음에 기반한다는 인식, 개인적이라고 사소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