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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미쳐주세요. 니콜라스 케이지

난 '니콜라스'라고 썼지만, 회사의 표기 원칙상 '니컬러스'로 바뀌어 나옴. 미친 감독과 배우도 있어야지, 다들 제정신이면 무슨 재민겨. 다만 내 옆에만 없으면 됨.

'허리 아픈 남자' 연기에 일획을 그은 니컬러스 케이지의 구부정한 자세.



니컬러스 케이지(47)는 추락할 때 멋있고 정상에 있을 때 못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더욱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하도록 부추겨야 합니다.

지난주 개봉한 <악질경찰>에서 케이지는 오랜만에 제대로 추락했습니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형사 맥도나(케이지)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와중에 유치장에 수감돼 있던 사람을 구하다가 큰 부상을 입습니다. 이후 맥도나는 가까스로 경찰직에 복귀하지만, 허리 통증이 심해 마약에 의지하는 신세가 됩니다. 맥도나는 압류하는 마약마다 자기 주머니에 넣고, 불법 도박을 하다가 빚을 지고, 직권을 남용해 수사합니다. 경찰 내사과와 갱단이 동시에 맥도나를 압박해 그를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악질경찰>은 아벨 페라라가 연출하고 하비 케이틀이 주연을 맡은 <배드캅>(1992)의 리메이크작입니다. 원작의 폭력성과 케이틀의 열연도 대단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리얼리즘에 바탕한 연출, 연기였습니다. 그러나 독일 출신 노장 베르너 헤어조크가 손 댄 리메이크는 원작과 꽤 달라진 분위기입니다. 특히 케이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버’로 일관해 사실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광기어린 연기를 보여줍니다.
 

왼쪽의 두툼한 남자는 믿을 수 없게도 발 킬머.

사실 헤어조크와 그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미쳐 있었습니다. <아귀레 신의 분노>(1972) 촬영 당시 주연 클라우스 킨스키가 위험한 장면에서 촬영을 거부하자, 헤어조크가 그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며 “찍을래 죽을래”라고 협박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70대를 바라보는 헤어조크 감독은 인물 내면의 광기를 자극하는 데 여전한 솜씨를 보이고 있으며, 그건 할리우드 톱스타 케이지를 만나서도 마찬가지로 발휘됐습니다.

사실 케이지는 헤어조크를 만나기 이전에도 미치고 타락한 연기에 일가견을 보였습니다. 그는 삶의 정상궤도에서 이탈해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후에도 그저 미친 것처럼 살다 가는 인물을 연기할 때 최고의 광채를 뽐냈습니다. <광란의 사랑>(1990),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가 대표적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배우가 된다는 건 범죄자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새 것을 추구하기 위해 규칙을 어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케이지가 그 광기와 반항기를 톱스타의 해골 귀걸이처럼 장식용으로 사용했을 때는 최악이었습니다. 이제 기름진 삶을 누리고 있는 중년 남자가 젊은 시절의 학생 운동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걸 듣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할리우드의 거물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작품에 출연했을 때 바로 그랬습니다.

우리는 <악질경찰>의 타락한 케이지를 환영합니다. 내일의 업무가 무거워, 내년의 계획이 힘겨워 지하철 막차를 향해 뛰고 숙취 해소제를 찾는 우리 관객을 대신해 그는 끝까지 타락합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알코올 중독에 빠진 작가 케이지에게 연인 엘리자베스 슈가 건넨 것은 재활원 티켓이 아닌 예쁜 술병이었습니다. 헤어조크 같이 대단한 또 다른 감독이 케이지를 캐스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다 해도, 울고 불고 좌절하는 대신 낄낄대며 술을 마시고 고함치는 호기를 부릴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호기를 아주 멀리서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왼쪽은 독일의 영원히 미친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오른쪽은 다들 잘아는 에바 멘데스. 70이 다되도록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다니,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