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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에 대한 몰입과 거리감 '도쿄 아이돌스'


명성이 자자하던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감독 교코 미야케)를 보다. 소재가 눈길을 끌거니와, 그 소재를 다루는 태도가 좋다. 일본 지하 아이돌과 그들의 팬덤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적절한 비판의 시선을 놓지 않는다. 소재를 장악하는 동시, 그에 대한 거리를 유지한다. 저널리즘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갖기 힘든 태도다. 

리오라는 지하 아이돌과 그의 팬덤이 중심이다. 팬덤은 주로 남성이다. 팬의 연령과 직업은 다양하다. 대체로 미혼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리오가 여는 소규모 콘서트에 빠짐없이 나오고, 씨디를 사고 또 사고, 악수회에 참여해 악수와 함께 1분 안팎의 대화를 한다. 리오의 인터넷 방송도 매번 시청한다. 한 팬은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려다 실패한 후, 결혼자금으로 모아두었던 돈을 모두 아이돌을 위해 썼다고 말한다. 

팬은 후회가 없다. 40대에 접어든 한 팬은 생에 이러한 열정은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한다. 10년 뒤쯤에는 여기 저기 아프고 병들텐데, 그 전까지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한다. 일본의 아이돌은 한국처럼 '완성형'으로 데뷔하기보다는, 춤이든 노래든 캐릭터든 어딘가 어색한 상태에서 데뷔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관례인데, '도쿄 아이돌스'의 아이돌들도 그렇다.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어설픈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데, 팬들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응원한다. 예전 '우정의 무대'에서 봤을법한 함성과 일사분란한 응원이 아이돌 무대 앞에서 재현된다. 

젊은 여성 하나를 둘러싸고 수많은 남성들이 소리지르며 응원한다. 무섭거나 기괴할 것 같은데, 막상 이 남자들과 대화하면 대체로 순박하고 쑥스러워한다. 아이돌들도 팬들이 아빠처럼, 오빠처럼 잘 대해준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신체 접촉이 일절 금지돼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 '악수회'라는 '회색지대'가 생겼다. 아이돌은 청순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팬은 최소한의 성적인 접촉을 할 수 있다. 상상의 연애, 유사 연애가 이뤄진다고 할 수 있는데, 팬들도 이것이 '유사'임을 명확히 알고 있다. 아무리 아이돌과 친해져도, 설령 아이돌 팬클럽의 회장이라 하더라도, 아이돌과의 관계가 진짜 연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다. 



'도쿄 아이돌스'의 중심인물인 아이돌 히라기 리오

'도쿄 아이돌스'는 아이돌과 남성팬의 관계가 현실의 연애를 대체하고 있다고 본다. 남성팬들은 거추장스럽게 실제 여성과 연애하지 않는다. 현실 연애에서 관계는 천변만화한다. 내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내 호의가 상대에겐 적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연애에선 미스커뮤니케이션이 다반사다. 그 모든 모순과 어려움을 견뎌내야 연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돌과 팬은 그렇지 않다. 돈을 쓰고, 정성을 다하면, 아이돌은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아이돌은 팬이 정성을 쏟는만큼의 정확한 비례로 미소지어준다. 연애란 상대에 대한 독점욕을 동반하지만, 아이돌과의 가상 연애는 팬덤에 의해 공유된다. 팬은 연애의 독점욕을 포기하는 대신, 연애의 정직한 거래를 확보한다. 

연애같은 거 귀찮아서 안해. 대신 아이돌과 가상 연애할래. 사실 이해가는 태도다. 연애는 귀찮다.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돈도 든다. 정치인이나 사회학자나 인류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대해 한숨을 쉴 것 같다. 하지만 난 항상 '후세의 일은 후세가 걱정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이 팬들에게 인구 걱정, 인류 걱정을 하라는건 가혹하다. 다만, '도쿄 아이돌스'의 엔딩이 10대 초반 아이돌을 보여주면서 끝난다는 건 기묘하고 아슬아슬하다. 아무리 '열린' 마음으로 봐도, 이제 초등 고학년이나 됐을 법한 소녀들이 아저씨들과 악수하는 모습은 이상하다. 그런 점에서 '도쿄 아이돌스'의 태도는 이 팬덤에 대해 끝내 비판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