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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나만의 '영화 베스트 10' 고르셨나요?

'전문가'의 '연말 베스트 10'을 어떻게 보십니까.

어느덧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입니다. 이런저런 매체에서 '올해의 사건' '올해의 인물' 등 한 해를 결산하는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 담당인 저로서는 아무래도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에 눈길이 갑니다.

저 개인의 '2008 한국영화 베스트'를 뽑아보겠습니다. 1위는 홍상수 감독의 여덟번째 작품 <밤과 낮·사진>입니다. 파리와 서울, 밤과 낮이 엇갈리는 순간, 홍상수의 인물들은 언제나 사랑하고 미워하고 오해하고 회개합니다. <생활의 발견>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홍상수 월드'는 다시 폭과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2위는 <멋진 하루>입니다. 보고 나면 절로 미소가 나오는 영화를 만난 지 얼마나 오래됐던가요. <멋진 하루>는 그 원초적인 행복감을 돌려준 영화입니다. "인생, 끝까지 살아볼 만하구나"라는 깨달음을 줬다고 할까요. 하정우와 전도연의 연기 호흡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3위로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들고 싶습니다. 일각에선 이 영화의 규모에 비해 짜임새가 부실했음을 지적했으며, 그런 비판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간혹 한 장면의 쾌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놈놈놈>의 종반부 사막 질주가 바로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전 이 영화를 세 번 봤는데, 이 장면만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지면 관계로 4~10위는 제 마음속에 간직해 두겠습니다.

제 리스트에 동의하십니까. 하시면 좋고 안 하시면 더 좋습니다. 선호하는 영화가 저와 같으시다면 그 영화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를 즐겁게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영화란 백만의 관객이 백만의 해석을 내놓는 영화입니다. 전 <밤과 낮>의 구조를 이야기했지만, 어떤 분은 김영호의 듬직한 몸집이나 박은혜의 작고 하얀 맨발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오직 이병헌의 존재 때문에 <놈놈놈>을 1위로 올리는 여성 관객도 계시겠죠.

제 리스트를 보시는 데서 끝내지 말고, 해가 가기 전에 당신의 리스트를 작성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굳이 영화가 아니라면 올해의 책, 올해의 공연, 올해의 음반도 좋습니다. 당신은 2008년 1월1일부터 글을 작성하는 현재시점까지 감상한 작품을 떠올립니다. 진공 속에 존재하는 영화는 없습니다. 연인과의 즐거운 주말 데이트에서 보았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우울했던 어느날 저녁 집에서 홀로 보았든, 느지막이 일어나 오후만 남은 일요일에 보았든, 영화는 당신의 올해 삶과 관련돼 있습니다. 영화를 정리하면 2008년의 당신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 리스트에 넣을 작품을 고릅니다. 어느 작품을 가장 좋아했는지, 11위로 내친 작품이 아깝지 않은지 고민합니다. 그 수많은 영화 중에서 왜 하필 그 영화를 골랐을까요. 당신의 취향은 당신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광활한 취향의 우주에 살고 있습니다.

리스트를 블로그에 올리셨습니까. 동의와 시비가 엇갈릴 테지만 화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미쓰 홍당무>를 좋아하는 사람과 <강철중>에 환호하는 이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모두 우리 취향의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투쟁심이 생기셨다면 한판 붙어도 좋습니다. 단 싸움은 논리로 해야 합니다. 그저 "재미있다"고 한마디 하는 건 논리가 아닙니다. 치열한 논박이 오고간 후에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안을 발견한다면 더없이 보람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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