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꺠달음에 이르는 길고도 짧은 길 <당나라 승려>





읽어보니, 매체의 반응은 '혹평'이 많은 것 같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나라 승려>가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작품은 아니니. 그래도 난 이 작품을 보고 깊은 감흥을 받았으며, 심지어 삶에 대한 깨달음도 얻었다고 여긴다. 




<당나라 승려>가 공연된 2시간 남짓, 지겨워 몸을 뒤틀 수도 있고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무대 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천지가 흔들리는 풍경을 봤을 수도 있다.

<당나라 승려>는 지난 4일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개막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이날 첫선을 보였다.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대만 예술가 차이밍량(蔡明亮·58)이 연출했다. 아시아예술극장이 벨기에 쿤스텐 페스티벌, 오스트리아 빈 페스티벌, 대만 타이베이 아트 페스티벌과 공동제작한 작품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애정만세>(1994)가 그렇듯, 차이밍량의 영화들은 극소화된 인물·서사를 특징으로 한다. <당나라 승려>도 비슷하다. 관객이 극장에 들어서기도 전, 붉은 옷의 승려가 커다란 하얀 종이 위에 죽은 듯 자는 듯 누워 있다. 차이밍량의 페르소나인 이강생(李康生·47)이 연기하는 이 인물은 당나라 승려 현장이다. 





벽처럼 보였던 거대한 슬라이딩 도어가 열려 극장 안팎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연극은 시작한다. 극장은 갑자기 반(半) 야외공연장이 된다. 아름답게 불 밝힌 아시아문화전당 안뜰의 시민들도 멀찌감치에서 연극을 볼 수 있다. 검은 옷을 입은 화가가 목탄을 들고 등장해 승려 주위에 거미를 한 마리씩 그려나간다. 어느덧 종이는 징그러운 거미로 가득차지만, 승려는 꼼짝 않는다. 화가는 백지를 목탄으로 칠하기 시작한다. 저녁이 밤이 되듯, 종이는 서서히 검게 변한다. 화가는 목탄을 긁어내 그믐달을 만들고, 승려의 머리 주변에 짙은 검은 색의 그림자를 그려넣는다. 승려는 몽마(夢魔)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공연 절반이 지나서야 승려는 몸을 꿈틀대며 일어선다. 염불을 외고, 머리를 밀고, 과일을 먹는다. 검은 종이를 벗겨내면, 하얀 종이가 한 장 더 깔려 있다. 이번에는 여러 명의 화가들이 등장해 불규칙한 선들을 그어나간다. 승려는 수행하듯, 아기가 걸음마를 하듯, 천천히 종이 위를 움직인다. 화가들이 종이를 작게 구겨버리면, 승려는 종이 바깥으로 벗어난다. 그리고 극장 바깥으로 나가 시민들 사이로 사라진다. 승려는 깨달은 걸까. ‘화가’의 자리에 조물주, 욕망, 번뇌, 사바세계 등 관객 마음에 떠오르는 그 무엇을 대입해도 좋다. 공연은 출입이 자유롭고, 관람 자리를 수시로 옮겨도 무방했다.





차이밍량은 “현대사회의 빠른 속도를 보면서 나는 발전이 아니라 쇠퇴와 붕괴를 본다”며 “지치지 않고 여러 해 동안 오로지 걷기만 했던 이 위대한 승려가 자주 떠오른다”고 말했다. 물론 연출가의 의도와 다른 걸 봐도 상관없다. 차이밍량은 다시 조언했다. “모든 예술가는 달을 원합니다. 아무도 달을 보면서 저게 뭐냐고 묻지 않습니다. 달의 의미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막 페스티벌에서는 이 밖에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인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세계 초연작 <열병의 방>, 스트라빈스키의 문제적 음악에 맞춰 소 75마리의 뼈를 갈아 뿌리는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봄의 제전> 등 3주간 33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상당수가 세계 초연 혹은 아시아 초연이다. 개막 페스티벌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레퍼토리들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예술극장, 문화창조원, 문화정보원 등 5개 시설로 구성된 국내 최대 문화시설이다. 그러나 관련법과 예산 미비로 진통을 겪어왔던 만큼, 개관 전후의 행정적 혼란상도 있었다. 총괄 기구가 없어 각 원들이 제각기 행사를 진행한 나머지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법적 지위가 모호해 전당의 수장을 미처 정하지 못한 상태이며, 장기적인 목표나 운영 방안도 더 구체화돼야 할 실정이다. 훌륭한 건물을 세웠으니 이제 그 속을 채워나갈 프로그램과 행정적 지원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