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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포스터가 티저 포스터보다 촌스러운 이유, 이관용 인터뷰



배우, 감독, 가끔 제작자 인터뷰를 하지만 그외 영화인 인터뷰를 할 일은 많지 않다. 포스터 디자이너를 만나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책도 그렇고 인터뷰도 흥미로웠다. 



한 편의 영화를 가장 먼저 세상에 소개하는 이미지는 뭘까. 영화 속 영상의 일부도, 배우의 스틸 사진도 아닌 영화 포스터다. 많은 경우 포스터 디자이너는 영화가 전혀 촬영되지 않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포스터 디자인을 구상한다. 포스터는 영화와 대중을 최전선에서 연결하는 이미지다.미지 원본보기
이관용 스푸트닉 대표(44)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에서 시작해 <범죄와의 전쟁> <명량> <터널> 등 300여편의 포스터를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포스터 아트디렉터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포스터 51컷과 그 뒷얘기를 소개한 <디스 이즈 필름 포스터>(리더스북)를 최근 펴냈다. 책과 인터뷰를 통해 영화 포스터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 것들을 알아봤다.

■왜 영화의 공식 포스터는 티저·해외용 포스터보다 촌스러운가지 원본보기
“당연하다. 티저 포스터(공식 포스터에 앞서 만드는 포스터)는 영화의 내용을 충실히 담기보다는 시각적인 충격을 줘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이다. 해외용 포스터 역시 상업적인 기능보다는 디자인 요소를 강조한다. 해외용 포스터에는 한국 배우의 사진을 잘 담아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어차피 한국 배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보다는 스토리, 장르 같은 영화의 본질에 충실하게 만든다. 포스터에서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배우의 얼굴이 없으니 공간에 여백이 생기고 화면 구성을 세련되게 할 수 있다. 다만 배우 사진을 이용한 포스터에도 굉장한 디자인적 노력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배우 사진을 크게 쓰는 할리우드 포스터를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요즘엔 조금 달라졌다. 그때보다 할리우드 영화가 발전하면서 포스터도 세련돼졌다. 영화의 정보를 충실히 전달하는 데에는 할리우드 포스터만 한 것이 없다. 요즘엔 한국 포스터들도 정보와 디자인적 감각을 접목한 할리우드 포스터를 따라하는 추세다.”


■어떻게 영화를 찍기도 전에 포스터를 만드나

"포스터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콘셉트와 내용을 정하는 ‘아이데이션’이다. 아무리 훌륭한 표현 기법과 형식을 갖췄더라도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없는 포스터는 좋은 포스터가 될 수 없다. 시나리오에서 인상 깊었던 지문과 대사를 뽑아내 거기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구현하거나, 우연히 발견한 사진으로 단초를 얻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화차>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작나비를 씨앗 삼아 이미지를 연상했다. <화이>는 화분 속에 감춰져 납치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 소년의 다리에 식물 뿌리를 합친 시나리오 표지를 디자인했다. 디자이너로서 문학적 메타포에서 출발하는 포스터 작업은 언제나 즐겁다. 오히려 다른 누군가의 포스터를 참고하는 게 위험하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했다가는 바로 악플이 달린다. ‘인류의 미술문화유산을 활용하자’는 편이다. 렘브란트, 카라바조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참조한다.”






■포스터 만들기 좋은 장르가 따로 있나

“가장 실험적인 영화 포스터가 만들어지는 장르는 공포 영화다. 공포 영화의 경우 영화적 상징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포스터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때는 연무로 가득한 강의실 칠판 위에 형광등 두 개를 조명 삼아 찍었다. 화면은 거칠고 배우들의 얼굴도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배우의 얼굴보다는 포스터 전체의 분위기와 디자이너가 뽑은 의미심장한 상징이 도드라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어둠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건 포스터 디자이너들에게는 대단한 자유다.”



■관객, 제작자, 투자자의 요구가 모두 다를 때 어떻게 조율하나

“포스터가 공개되면 영화 사이트에선 이런저런 댓글이 달리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일반 관객과 영화팬의 취향은 다르기 때문이다. 기준이 되는 건 일단 일반 관객이다. 분명한 건 포스터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구현하는 ‘클라이언트 잡’이라는 점이다. 요즘엔 디자이너들도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며 현대미술로서의 욕망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디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스터를 만들 때는 사회적 요구, 개인적 욕구를 제쳐두고 클라이언트가 만족하는 상품을 내놓는 것이 디자이너의 사명이다. 내 생각에 더 좋은 시안이 있다 하더라도, 채택되지 않으면 그럴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