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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는 명품백, 서대문형무소는 엽기테마파크, <서울건축만담>




건축가 최준석, 차현호씨는 소설가 김연수, 김중혁씨의 릴레이 에세이를 모델로 삼아 '건축 만담'을 구상했다고 한다.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책을 '건축책'이라고 취급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재미있는 만담 같은 책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실제 책으로만 보면 한국 건축가들은 모두 철학자 같다) 기사는 둘을 인터뷰한 후 책 내용과 섞어서 구성했다. 책은 꽤 술술 읽힌다. 



이 남자들, 치맥(치킨과 맥주)만 15년째다. 1999년 1월 한 대형설계사무소 면접장에서 만난 이후 한 달에 1~2번은 치맥을 먹었다. 만나면 건축 이야기, 사는 이야기,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고, 티격태격 다투기도 했다. 그 사이 한 명은 자신의 사무소를 차렸고, 한 명은 대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각자 몇 권의 건축책을 냈고, 아예 ‘주거니 받거니 릴레이 칼럼’을 함께 써보기로 했다. 


<서울 건축 만담>(아트북스)의 저자인 건축가 차현호(44)·최준석(43)씨를 연말 분위기가 나는 서울 강남에서 만났다. 이날은 책 출간을 기념해 특별히 치맥 대신 피맥(피자와 맥주)을 시켰다.



만담을 나누는 건축가 최준석(왼쪽), 차현호 소장. /김창길 기자


▲건축의 정의

최준석(이하 최)=건축은 예술이지. 좋은 건축은 사용자의 복잡한 요구를 반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신적 영역까지 나아가거든. 파주의 미메시스 뮤지엄은 ‘대체 왜 저렇게 생겼나’ 궁금하게 만드는데, 안에는 작품 전시에 최적의 공간이 나와. 그 원초적 백색 공간은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지. 아름다운 건축은 마치 위대한 예술 작품처럼 우리를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 

차현호(이하 차)=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 난해한 발언을….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야. 건축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잖아. 기능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건축이 아니야. 안도 다다오를 유명하게 한 ‘스미요시 주택’ 알지? 안도의 특기인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지. 건축주 반응 들었어?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춥다는 거야. 사람이 살기 힘들면 건축적 의미가 무슨 소용일까. 


▲옛 것의 보존

최=물론 어쩌다 “앗!”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멋있다고 좋은 건축은 아니지. 난 그래도 건축이 치유와 사색의 공간일 수 있다고 생각해. 숭례문 복원을 예로 들까. 불타 무너진 지 5년만에 컴백한 숭레문을 보니 반가움보다는 “누구시죠?” 하는 느낌이었어. 마치 잠적 기간동안 티 안나게 성형 받고 온 연예인 같다고 할까.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성당처럼 공사 과정을 문화로 승격시킬 순 없었을까. 타고 남은 성곽과 목구조를 남겨둘 순 없었을까. 폐허의 공간에서 재난 이전, 이후의 시간이 교감할 순 없었을까.

차=서울 한복판에 잿더미라니, 보통 사람들은 “홀랑 타버렸네”하고 말걸. 경복궁이 현재 모습 비슷하게 재건된 것도 흥선대원군 때 일이야. 문화재 주변에 터를 잡은 프로젝트를 하다가 입에 거품 문 적이 있어. 벽돌 한 장 못놓게 하더라고. 옛 것을 재활용한다는 것은 결국 기억의 재구성이야. 그냥 옛 기억을 들추는데서 끝나선 안된다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니 고문 도구를 전시했더라. 여학생들이 기념 촬영하느라 난리야. 꼭 엽기적인 테마파크에 온 것 같았어. 베를린의 유대인 학살 박물관은 끔찍한 역사를 간접적으로 보여줘. 


▲서울의 건축

최=하긴 대한민국역사박물관도 꼭 국사책을 연대기로 풀어놓은 것 같았어. ‘만지지 마시오’ 푯말처럼 박제된 역사 같았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마음에 안들어. 동대문에서 아버지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샀고, 삼미 슈퍼스타즈 야구도 봤어. 그런데 지금 있는 우주선 같은 건물은 내 추억과는 아무 상관이 없잖아. 세계적 디자이너의 한정판 명품백 같아. 비싸게 샀는데 주변 반응이 안좋아. 무를 수도 없고. 

차=DDP도 개관하기 전엔 건축계에서 엄청 욕 먹었는데 지금은 쏙 들어갔어.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야구장이 있었다고요? 그 밑에는 한양 성곽이 있었고, 더 밑에는 공룡 화석이 있었겠죠. 모든 시대는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는데, 그렇다고 모든 지층을 되살려야 하나요? 또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조화 이룰 주변 건물이 있기나 한가요?”

최=그래도 서울은 재미있는 도시야. 뉴욕 하이라인을 모방한 서울역 고가도로 개발계획처럼 외국 사례를 맥락없이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긴 해. 그래도 그게 바로 서울 사람들의 욕망이고 속도 아닐까. 난 마음이 복잡하면 종묘 정전에 가. 특히 해설사가 없는 아침에. 정말 마음이 편해져. 

차=난 덕수궁 돌담길이 좋아. 그쪽 작은 카페에서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거든. 결국 건축은 삶에 가까운 자리에서 신변잡기를 담는 존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