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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평생 비실비실, 우울. 우디 앨런.




11일 개막한 제6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우디 앨런의 신작 <미드나잇 인 파리>가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잘 안풀리는 작가가 파리로 여행왔다가 어떤 시간 여행 방법을 통해 파리를 주름잡았던 과거의 예술가, 즉 달리, 피카소,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브뉴엘 등을 만나고 누군가의 애인과 연애도 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내가 관심 많은 마리온 코티아르가 나오고, 별 관심 없는 카를라 브루니가 박물관 가이드로 카메오 출연한다. (남들) 재미 없어도 (나는) 재미 있겠다.

영화를 본 누군가가 앨런의 85년작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언급했다. 나도 그 영화가 갑자기 미치도록 보고 싶어졌다. 한동안 잠자던 디비디 플레이어를 돌렸다. 그리고 미아 패로의 그 표정을 봤다.

이 영화는 미아 패로의 표정이다. 대공황 시대, 실직한 남편은 또다른 실직자들과 동전 치기로 소일하고, 세실리아(패로)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힘겹게 푼돈을 모은다. 가정 안팎으로 빛이 없던 시절, 유일한 빛은 스크린에서 나왔다. 세실리아는 보통의 관객이다. 남녀간의 로맨스와 적당한 이국적 모험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영화가 <카이로의 붉은 장미>다. 무표정하던 세실리아, 울던 세실리아는 신기한 장난감을 본 아기처럼 스크린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그 매혹의 표정이다.

일할 때 우울하던 여자는 영화 보면서 넋을 잃는다.



스크린 속 모험가이자 시인인 백스터는 난데없이 세실리아를 바라본다. 할리우드 영화에선 금기된 관객을 향한 응시다. 백스터는 "당신 다섯 번째 오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리고 스크린 바깥으로 걸어나와 현실 세계를 즐긴다. 세실리아와 연애를 한다. 세실리아는 자신이 유부녀라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이 영화같은 낭만이 싫지는 않다. 영화 속 인물은 현실을 즐기고, 현실 속 인물은 영화를 꿈꾼다.

백스터가 세실리아에게 말을 거는 순간. 영화에서 배우가 저렇게 정면을 바라보면 불편해지기 때문에,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선 이런 시선을 금지해왔다. 관객은 지금 보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눈치채서는 안된다.



물론 둘은 잘 안된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백스터가 스크린으로 돌아간 뒤 남은 건 조금도 변화없이 음울한 현실뿐. 갈 곳 없어진 세실리아는 다시 영화관을 찾는다. 다른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패로는 또다시 공허하지만 매혹적인 표정을 짓는다.

멍청한 영화에 바보처럼 빠져들기. 그게 이 삶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앨런은 말한다. 앨런은 그런 식으로 70대 중반까지 영화를 만들어왔다. 말이 코미디지, 내용은 서늘하기 이를데 없다. 작년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환상의 그대>도 그랬다. 점쟁이의 허튼 말을 믿은 할머니는 행복해졌지만, 나머지는 모두들 불행해졌다. 아, 우울하게 비실비실 한평생을 살아온 앨런. 참 훌륭하여라.

버려진 놀이공원에서, 영화 속에서 나온 남자와 현실의 여자가 데이트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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