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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크리스마스가 다 무슨 소용인겨. <아더 크리스마스> 구상과 재료가 맞지 않아 쓰기 힘들 때가 있다. 이 글이 그랬다. 처음엔 그나마 윤곽이 있었는데 생각을 할수록 그 윤곽이 희미해졌다. 그러던차에 시와의 새 음반을 먼저 들어볼 기회가 생겼다. '크리스마스엔 거기 말고'란 노래가 글의 방향을 결정해주었다. 그때 그 노래를 듣지 않았다면 이 글은 어떻게 끝났을까. 세상의 많은 일들은 우연이 결정해주는 것 같다. 그 우연이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었으면 좋겠다. 1만5000 엘프와 어수룩한 아더. 나도 저런 스웨터를 입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는데, 12월 25일 이후에는 입기 힘들까봐 차마 못사겠다. 어떤 이에게 크리스마스는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25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는 산타클로스를 믿겠다는 아이의 동심에 병주고 약줍니다. “산타클로스는 있다”고 말해.. 더보기
말 안들어주면 귀신나온다, <헬프> 미국의 가정식 요리가 맛있어 보이는 영화. 아이스티 맛있겠다. 머리 세팅하기 힘들겠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정말 부지런할 것 같음. 할 말은 있는데 말할 방법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3일 개봉하는 속 흑인 가사도우미들이 그런 처지였습니다. 배경은 1963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소도시 잭슨. 미국에선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이 없어졌지만, 보수적인 잭슨시엔 실질적으로 인종차별이 남아 있었습니다. 중상류층 백인 여성들이 미용과 사교와 머나먼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 행사를 여는 사이, 흑인 가사도우미들은 음식을 하고 아기를 키우고 빨래를 했습니다. 이 시기, 이 동네에서 흑인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곧 가사도우미가 된다는 걸 뜻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 할머니가 모두 가사도우미였기 때문입니다... 더보기
지금 누구와 음악을 듣습니까. <뮤직 네버 스탑> 주인공은 영원한 '오늘'을 산다. 아름다운 여인을 매일 새로 만나서 좋고, 거짓말쟁이 대통령이 결국 쫓겨나다시피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어서 좋다. 그러나 친구가 베트남에서 죽었고, 옛 연인은 결혼해 애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매일 들어서 슬프다. 기쁜 소식을 들을 날을 매번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수명도 조금은 길어질까. 저런 셔츠를 입어도 되는 시절이 좋았다.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지금 옆에 있습니까. 27일 개봉하는 영화 은 너무 극적이라 믿기 힘든 실화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노부부가 살고 있는 조용한 집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20년 전 가출한 노부부의 아들 게이브릴이 병원에 누워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노숙생활을 한 게이브릴은 뇌종양이 있어 부모조차 알아보지 .. 더보기
로봇은 인간을 얼마나 닮아야 하는가, <리얼 스틸> 일본산 로봇 노이지 보이에게 전술을 지시하는 찰리. 로봇은 사람을 닮아야 할까요. 별 볼일 없던 복서가 낡은 체육관에서 연습을 시작합니다. 체육관은 수입이 없어 문을 닫을 처지입니다. 복서는 특유의 인간적인 스타일과 유머로 관중의 인기를 끕니다. 초보 복서는 겁도 없이 세계 챔피언에게 공개 도전장을 냅니다. 챔피언은 도전을 받아들이고, 언론과 관중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 주목합니다. 왜 의 줄거리를 다시 이야기하는지 묻지 마세요. 위 줄거리의 ‘복서’ 자리에 로봇 ‘아톰’을 넣으면 12일 개봉한 의 줄거리가 됩니다. 물론 몇 가지 설정이 추가됐습니다. 2020년, 인간이 아닌 로봇이 링 위에 올라 복싱을 합니다. 인간들은 로봇에 돈을 걸고, 경기를 중계하기도 합니다. 은퇴한 복서 찰리(휴 잭맨)는 .. 더보기
아버지의 그림자, <코쿠리코 언덕에서> 내가 미아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라면,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었을까. 고로케를 나눠먹는 우미와 슌 아버지란 이름은 얼마나 무겁습니까. 솔직히 모든 아버지가 존경받아 마땅한 건 아닙니다.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거나 심지어 학대하는 아버지도 종종 있습니다. 유전자의 일부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아버지를 공경하긴 힘듭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0)라면 어떨까요. , 등을 내놓은 애니메이션 거장 말입니다. 그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44) 역시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첫번째 작품 (2006)은 대실패였습니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궈놓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성에 못미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비난은 아들을 넘어 그런 아들.. 더보기
나고 자라고 낳고 죽는다는 것. 오즈 야스지로와 <도쿄 이야기> 통상 일본영화 고전 황금기의 3대 거장을 꼽으면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를 드는데, 난 단지 때문에 여기 들지 않는 나루세 미키오가 제일 좋고, 그 다음이 미조구치 겐지, 그 다음은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사와 아키라가 동률이었다. 오즈나 구로사와의 영화가 나쁘다기 보다는, 그저 마음에 온전히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변하면 감상과 논리가 달라지는지, 연휴 기간 중 짬을 내 다시 본 는 무척 좋았다. 시간을 두고 다시 봤을 때 새롭지 않다면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영화 교과서에 나오는 그 유명한 다다미 샷. 세월은 얼마나 힘이 셉니까. 일본을 넘어서 세계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감독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는 1903년 12월 12일 도쿄에서 태어나 자신의 .. 더보기
오늘 벌어진 일은 옛날에도 벌어졌다-사라의 열쇠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케케묵은 지난 일을 왜 기억해야 합니까. 1942년 7월 프랑스는 나치에게 점령된 상태였습니다. 나치의 하수인이 된 프랑스 정부는 아돌프 히틀러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프랑스 경찰은 1만명 이상의 유대계 프랑스인을 체포해 벨디브 경륜장에 수용했다가 차례로 죽음의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나치 점령기였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프랑스인의 손으로 직접 저질러진 이 끔찍한 사건은 프랑스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훗날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 사건에 프랑스 경찰과 공무원이 개입된 것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11일 개봉하는 는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10살 소녀 사라는 남동생을 벽장에 숨기고 문을 잠근 뒤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벨디브로 .. 더보기
히피 군인에 대해-초(민망한)능력자들 의 케빈 스페이시(좌)와 조지 클루니. 히피족이면서 동시에 군인일 수 있습니까. 이번주 개봉하는 영화 에는 그런 군인이 나옵니다. 원제는 (The men who stare at goats)로 영국의 저널리스트 존 론슨이 쓴 논픽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실존했다는 미 육군 산하 특수부대의 이야기입니다. 30여년전에 설립된 이 부대의 주특기는 원격투시, 주파수공격, 벽 통과하기, 노려봄으로서 죽이기 등입니다. 한마디로 초능력자 부대입니다. 특종을 찾아 헤매던 영화 속 기자 밥 월튼(이완 맥그리거)은 묘한 분위기의 남자 캐서디(조지 클루니)를 만나 신기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캐서디는 자신이 미 육군의 초능력자 부대 소속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중이라고 합니다. 밥은 호기심에 캐서디를 따라 이라크에 갔다가 온갖 온.. 더보기
예술가에겐 얼마나 많은 팬이 필요한가-일루셔니스트 예술가에겐 얼마나 많은 팬이 필요할까요. 참 이상합니다. 2년 전 아껴 입던 그 옷을 올해 꺼내 입으려니 참 민망합니다. 지난해 여름 질리도록 들었던 그 노래는 참 촌스럽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피곤합니다. 여름철의 생선회보다 변하기 쉬운 대중의 취향 때문입니다. 어제의 흥행 감독이 오늘은 흥행에 참패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다음 작품이 또 잘 팔릴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제비 새끼가 먹이 달라며 입 벌릴 때보다 더 열렬히 새것을 구하는 이들이 바로 대중입니다. 애니메이션 는 ‘시대착오적 예술가’를 다룹니다.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렸던 영화감독 자크 타티가 딸에게 쓴 편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입니다. 1950년대쯤으로 추정되는 시대, 일루셔니스트는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거나 빈 와인잔을 채우는.. 더보기
니체, 허무의 품격. <토리노의 말> 토리노의 말 허무의 밑바닥엔 무엇이 있습니까. 6일 끝나는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국제 영화제에서 유명하지만 국내 관객에겐 매우 낯선 헝가리 감독 벨라 타르의 을 먼저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56세의 타르는 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영화는 조만간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입니다. 5년에 한 번 꼴로 기나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를 내놓곤 했던 그가 이 은퇴작에서 전한 메시지는 ‘허무’였습니다. 영화는 ‘허무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시작합니다.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 머물던 니체는 마부가 고집센 말에게 마구 채찍질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니체는 사건 한복판에 뛰어들어 말의 목덜미를 감싸안고 흐느낍니다. 숙소로 .. 더보기
왜 이 여자를 사랑하는가-<제인 에어> 제인 에어 역의 미아 와시코브스카. 발음하기에 익숙해져야 할 이름. 제인 에어를 사랑하시겠습니까. 가진 돈이 없습니다. 고아입니다. 양육을 맡은 외숙모는 그녀의 성격이 “엉큼하고 반항적”이라고 평합니다. 학교 이사장은 “불길과 유황이 타고 있는 구렁 속”에 떨어질 거짓말쟁이라고 말합니다. 외모도 평범합니다. 심지어 그녀의 연인과 친구들조차 그녀의 외모에서 아무런 매력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관객은 제인 에어가 계속 보고 싶은가봅니다. 20일 개봉한 는 샬럿 브론테 원작의 22번째 영화입니다. 팀 버튼의 에서 앨리스 역을 맡았던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제인 에어, 마이클 파스밴더가 로체스터 역을 맡았습니다. 신예 캐리 후쿠나가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영화는 에어가 문을 힘껏 열고 뛰쳐나가는 장면에.. 더보기
한국영화계의 앙팡 테리블. 윤성현 vs 조성희 윤성현(왼쪽)과 조성희. 권호욱 기자 1990년대 한국영화의 산업적, 미학적 중흥기가 박찬욱·봉준호을 배출했다면, 2000년대 한국영화는 누가 책임을 질까. 젊은 감독들이 백가쟁명하고 있지만 뚜렷한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앞으로 윤성현(29)과 조성희(32)란 이름을 기억해두면 좋겠다. 이들은 3월 개봉한 과 의 연출자이며, 2009년 졸업한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 연출전공 동기다. 은 개봉한 지 한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독립영화 흥행의 기준점인 1만명 관객을 넘어섰고,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세밀하고 날카로운 연출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은 최근 독일에 수출됐고,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이보다 더 잘 만든 영화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는 극찬을 받았다. 조 감독의 전작인 단편 은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 더보기
죽도록 일하는 여자, <굿모닝 에브리원> 이 영화에선 해리슨 포드가 꽤 근사하다. 그의 벌레씹은 듯한 표정과 말하기 싫다는 듯한 말투가 재미있다. 여자는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일해야 합니까. 성공하기 위해선 누구나 죽도록 일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가끔 삼신 할머니가 돈 많고 권세 있는 가문에 점지해줘서 노력 없이도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 속에서 여성이 성공하기는 남성에 비해서도 훨씬 힘듭니다. 2009년 중앙행정기관 41곳의 고위공무원 1428명중 여성은 40명이었고,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1%대입니다. 의 베키(레이챌 맥아담스)는 지역 방송사의 모닝쇼 프로듀서입니다. 인력 감축으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그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 더보기
사랑은 운명이 아니다. <컨트롤러>와 <타이머> 사랑은 운명이 아닙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물론 많은 멜로영화들은 사랑이 운명이라고 주장합니다. 주말 오후의 데이트에 멜로영화를 본 젊은 남녀들은 영화의 주장을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운명이 아니라는 증거는 도처에 널렸습니다. 치솟는 이혼율, 부부나 연인의 끝없는 다툼, 숱한 불륜은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사랑이 운명이라 하더라도 운명의 상대를 만날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세계 인구가 60억명입니다. 운명의 상대를 어떻게 만나고, 만난다 해도 그가 맞는지 어떻게 확신합니까. 이번주 개봉작 는 말도 안되는 기계장치를 소개합니다. 제목 그대로 ‘타이머’란 이름의 이 장치는 손목에 이식돼 운명의 짝을 만날 날까지 남은 시간을 디지털 숫자로 표시합니다. 물론 상대방도 타이머를 이식.. 더보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이윤기 감독 이윤기 감독의 전작 는 내 2000년대 한국영화 페이버릿 중 하나다. 그 영화가 개봉했던 2008년에는 공교롭게 이 있어, 2008년의 개인적인 리스트에서 는 2위였다. 난 여전히 그 영화가 좋다. 이번에 이윤기 감독을 만나서도 이야기를 한참 했다. 그는 이후 하정우, 수애를 주연으로 찍다가 제작도중 촬영이 중단된 이 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였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는 잘못 알고 와서 보다가는 화를 내는 관객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반대되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석우 기자 현빈과 임수정의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성에 혹해 를 보러가려는 팬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춰야겠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함께 살던 부부가 이별을 앞.. 더보기
누가 함께 싸울 것인가. <언노운> 리엄 니슨 넘 멋져. 베를린도 멋져. 어떤 배우는 나이가 들면서 별 연기 안해도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대단한 존재감을 만들어내는데, 브루노 간츠가 프랭크 란젤라에게 쓰러지는 모습에선 어휴... 오늘 어느 분이 문자로 "뼈속까지 스며드는 싸~한 베를린의 겨울"을 얘기하시던데. 그나저나 현빈은 좋겠다. 이 겨울에 베를린에 가서 맥주도 먹고 슈납스도 먹고. 막강한 적이 눈앞에 있습니다. 힘을 합쳐 싸울 이들은 누구입니까. 은 신분을 빼앗긴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인 마틴 해리스 박사(리엄 니슨)는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학술회의 참석차 독일 베를린에 옵니다. 호텔에 도착한 순간 공항에 가방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해리스는 아내를 남겨둔 채 택시를 타고 돌아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72시간 만.. 더보기
인생 포맷이냐, 환생이냐. 우디 앨런의 <환상의 그대> 이 영화는 지난해 5월 칸영화제에서 처음 보고, 이번에 개봉을 앞두고 다시 봤다. 자막을 읽으면서 보니 처음볼 때보다 훨씬 우울한 영화였다.... 아무튼 이 영화의 원제는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점쟁이가 별 의미없이 하는 말인 것 같다. 전작 'Vicky Cristina Barcelona'는 로 개봉했다. 원제를 그대로 쓰기 힘든 마케터들의 고민은 이해하면서도, 가능한 많은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어야 하는 고민은 이해하면서도, 좀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다. 헬레나(오른쪽)는 오컬트 서점의 주인장(가운데)과 사랑에 빠진다. 얼마전 상처한 주인장은 죽은 아내에게 새 사랑을 받아들여도 되는지 물어본다. 환생을 믿으십니까. 명장 우디 앨런의 신작 (원제 You will .. 더보기
적대적 공존에 대해, '메가마인드'를 보고. 솔직히 는 드림웍스의 범작이다. 이다 보다는 재밌는거 같지만, 나 에는 못미친다. 물론 드림웍스의 범작은 다른 스튜디오의 수작이 될 때가 많다. 악당 메가마인드. 원래는 악당이 아닌 것 같다. 적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까. ‘적대적 공존’이란 표현처럼 모순적이면서도 우리의 현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도 없을 것 같습니다. 10년 정도 친구 혹은 같은 민족으로 알고 지낸 사람들이 순식간에 적으로 규정됐습니다. 외부의 적이 존재할 때 내부 결속력은 강화되기 쉽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라디오 연설에서 안보 위기 앞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3일 개봉하는 는 적대적 공존의 양상을 풍자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물론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전체관람가 영화지만.. 더보기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어린이 관람불가? . 무서운 영화다. 이걸 애들 보라고 만들었다니. '세상은 이렇게 끔찍하단다'라고 미리 말해줄 필요가 있나. 조앤 롤링, 나빠요! 지금은 ‘어둠의 시기’입니까. 도입부의 마법부 장관은 그렇게 말합니다. 이 역을 맡은 빌 나이히는 속 한물간 로커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습니다. 웃음기를 잃어버린 건 이 영화 속 모든 인물이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은 이미 이나 시절의 귀엽고 똘망똘망한 해리 포터를 기대하진 않습니다. 4편 을 즈음해서 해리 포터의 세계는 차츰 어두워졌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춘기 청소년들이야 워낙 광폭하거나 우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시리즈 마지막 편인 에서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세상입니다. 전편인 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지키.. 더보기
연애대행업의 시대 <시라노 연애조작단>+<김종욱 찾기> 1990년대에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다들 제라르 드파르듀가 나온 를 본 것 같다. 그 느낌을 되살려 영화를 만들었는데 여전히 흥행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은 오랜만에 흥행한 로맨틱 코미디다. 스릴러도 좋지만 로맨틱 코미디도 좀 나왔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나오고 있다. 내년 이맘때쯤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가 지겨워질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래 글의 결론은 아래 사진처럼 앉아있는 여자를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것! 시라노는 필요합니까.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열어야 했습니까. 과 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일종의 ‘연애 대행업’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가을 개봉해 흥행에도 성공한 은 19세기 프랑스 희곡에 느슨하게 기반을 두었습니다. 못생긴 외.. 더보기
<사랑하고 싶은 시간> 일상의 토양에서 일탈의 나무는 자랍니다. 그 나무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이탈리아 영화 (영어 제목 What more do I want)은 흔한 소재인 ‘불륜’을 다룹니다. 각자 가정이 있는 남성과 여성이 우연히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사랑하기를 반복합니다. 이들이 맺은 육체와 감정의 끈은 매우 질깁니다. 여자의 삶은 안정적입니다. 직장은 번듯하고 남편은 자상합니다. 그러나 여자의 얼굴 한구석엔 그늘이 드리워 있습니다. 지나치게 평안한 삶 속에서 권태를 느끼는 걸까요. 누군가는 행복에 겨운 투정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의 삶은 힘겨워 보입니다. 두 명의 아이는 온 집구석을 어지르고, 육아와 가사에 지친 아내는 늘 돈이 부족하다며 짜증을 냅니다. 외식업체에서 일하는 남자가 일주일 가운데 유.. 더보기
임순례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임순례 감독은 채식주의자다. 지난 부산영화제 때 어느 영화사가 회집에서 연 파티에서 만났는데, 그 많은 회를 두고 풀만 먹고 있었다. (물론 소주는 잘 마셨다.) 그가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는 이렇다. 된장찌개인지 무엇인지를 끓여먹기 위해 검은 비닐봉지에 바지락을 한가득 사왔다. 그것을 마루에 두고 잠시 잊었는데, 한밤에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살아있는 바지락이 껍질을 열고닫으며 바스락대고 있었다. 차마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던 바지락이 살겠다고 꼬물락거리는 모양이라니. 그는 이후 바지락은 물론 고기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동물보호단체의 대표다. 해마다 복날이면 인사동에서 개를 먹지 말자는 시위를 벌이고, 절을 찾아가 죽어간 개들을 위한 위령제도 .. 더보기
김곡+김선=방독피 김선은 확신이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오만하다거나 경박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는 중간까지는 미심쩍다. 솔직히 미리 잡아둔 인터뷰를 어떻게 능수능란하게 취소시킬 수 있을까 궁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반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힘이 가득하다. 종반부에는 서울 거리에 엄청난 묵시록적 풍경이 나온다. 김선이 인용한 오시마 나기사의 말은 매우 멋지다. 전위라고 다 전위가 아니다. 미학의 전위에서 정치적 보수성을 드러내거나 급진적인 정치사상을 고루한 형식에 담아내는 예술가가 부지기수다. 1978년생 일란성 쌍둥이 형제 김곡·김선은 현재 한국 영화의 최전위에 선 감독들이다. 미학과 정치 양 측면에서 모두 최전위라는 점에서 이들은 한국 독립영화계에서도 독특한 존재다. (2001), (2003) 등을 내놓으며 주.. 더보기
‘대부2’ 세상에 ‘믿을 놈’이 핏줄뿐입니까 핏줄이 무엇이기에 이 난리랍니까. 한국 사람만 그런 줄 알았더니 미국 사람도 ‘아들 타령’이군요. 정확하게는 이탈리아계 미국 사람이지만요. 7일 디지털 리마스터링판으로 재개봉하는 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영화 는 너무나 유명해 새삼 언급하기조차 쑥스러운 작품입니다. ‘영화사상 가장 성공적인 속편’으로도 유명하죠. 로버트 드니로가 젊은 시절의 비토 콜레오네 역을, 알 파치노는 그의 아들인 마이클 콜레오네 역을 맡았습니다. 온가족이 시실리 지역 마피아에게 살해당한 뒤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온 9살 소년 비토의 모습에서 영화가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디에나 약한 자를 등쳐먹고 사는 악당이 있게 마련이죠. 이국땅에 살아가는 이탈리아 이민자 사이에도 마피아가 있었습니다. 비토는 마피아를 제거한 뒤 스스로 지역을 .. 더보기
부산영상위원회 떠나는 박광수 위원장 운영위원장서 물러난 박광수 감독 최근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박광수 감독에 대한 지역 언론의 반응은 그의 동상이라도 세워주겠다는 기세다. 부산영상위의 기틀을 잡고 물러나는 그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등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 영화로 각광받던 박 감독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으로 영화행정에 발을 내디딘 뒤 99년 부산영상위 출범과 함께 초대 위원장이 됐다. 부산영상위의 주요기능은 촬영지원 및 영화산업 육성이다. 부산영상위 출범 이후 지금까지 총 269편의 한국 장편영화가 부산에서 촬영됐다. 매년 한국영화의 40%가 부산에서 촬영되는 셈이다. 한국영화에 유독 부산 사람이 많이 나오거나 부산이 촬영 배경으로 등장하는 일이 잦다고 느낀다면, 그건 부산영상위의 활약 덕이다. 이.. 더보기
사랑하게 되면 ‘사랑’에만 몰두하세요 사랑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사랑인 줄 어떻게 압니까. 2일 개봉하는 는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섞은 영화입니다. 코미디언이자 가수인 샬린 이와 배우 마이클 세라의 연애 과정은 픽션이고, 샬린 이가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 나눈 인터뷰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샬린 이는 사랑에 대해 물으면서 스스로 사랑에 빠집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샬린 이는 사랑을 믿지 않는 냉소주의자로 시작합니다. 지금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그것이 사랑인 줄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다가 마이클 세라와 만나 가벼운 데이트를 즐기다가 연인 관계로 발전합니다.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호의적인 말을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가벼운 키스를 합니다. 난관은 두 배우가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시작됩니다. 마이클 세라는 개인의 감정과 .. 더보기
<테이킹 우드스탁> 이번 여름에도 여러개의 음악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음악 페스티벌엔 왜 가는 걸까요. 1969년 8월15일부터 3일간 미국 뉴욕주 베델 평원에서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 무대에 오르고, 50만명의 히피 관객이 모인 이 축제는 공연 수준, 관객의 태도, 묘한 시대 분위기가 어울려 이후 모든 음악 축제의 이데아가 됐습니다. 29일 개봉하는 리안 감독의 은 이 페스티벌의 기획자였던 엘리엇 타이버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엘리엇은 화가를 꿈꾸는 젊은이지만, 부모님이 경영하는 시골 모텔이 파산 직전이라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합니다. 이웃 동네에서 열리기로 했던 록 페스티벌이 주민의 반대로 취소되자, 엘리엇은 페스티벌을 유치해 관광객을 끌어모으기로.. 더보기
<영도다리>, <레퓨지> 이 험하고 슬픈 세상에 새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까. 임신과 출산은 낭만, 감격보다는 당황,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신보다는 짐승에 가까워집니다. 고상한 음악을 들으며 깔끔한 거실에서 살아가던 부모는 아기의 울음과 똥과 토사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똥을 피하는 건 거기에 몸을 해치는 병균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아기의 똥기저귀를 갈면서 진화의 유구한 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셈입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하는 전수일 감독의 와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는 뜻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 그 이후의 선택을 그린 영화입니다. 의 주인공인 19세 소녀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했으며, 출산 직후 아이를 입양기관에 넘깁.. 더보기
원본 없는 패러디에 만족하십니까 해 아래 새 것은 없습니까. 패러디는 오리지널을 넘어설 수 있습니까. 애니메이션 창작의 근본 태도는 패러디였습니다. 늪지대의 녹색 괴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는 점부터가 왕자, 공주 중심이었던 기존 동화의 구도를 뒤집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아름다운 공주가 저주를 받아 괴물로 변했다는 얘기는 같았지만, 이 공주는 왕자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를 구원하려 노력했습니다. 빨간 모자, 백설 공주, 개구리 왕자 등도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와는 다른 성격으로 등장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은 동화뿐 아니라 20세기 대중문화의 최대 유산인 영화도 패러디했습니다. 등 젊은 관객이 금세 눈치챌 수 있는 영화의 장면이 슈렉과 그 친구들에 의해 다시 연출됐습니다. 는 네번째이자 마지막 시리즈입니다. 가정을 꾸린 슈렉과 피.. 더보기
저 달이 차기 전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지난 노동절 전 전주에 있었습니다. 화창한 날씨 속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우울하고 슬프고 갑갑한 영화를 봤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들어본 적도 없으셨을 이 영화의 제목은 입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의 분위기는 서정적인 제목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해 수천명의 구사대와 경찰에 맞서 공장을 점거 투쟁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77일간 싸우다가 결국 공장을 제발로 나왔습니다. 한밤중 공장 옥상에 올라 경계 근무를 서던 노동자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합니다. “저 달이 차기 전에 집에 갈 수 있으려나.” 제작진은 출입이 봉쇄된 공장에 잠입해 가족, 사회, 세계로부터 고립된 노동자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