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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원으로 영화찍기-오멸과 키노 망고스틴의 경우

500만원으로 장편영화 한 편을 찍은 사람들이 있다. <7광구>나 <고지전> 찍을 돈이면 2000편을 만들 사람들이다. 대학 영화과의 졸업작품을 찍는데도 1000만원쯤 들어가는 세상이다.

누구일까. 어떻게 찍었을까. 왜 찍었을까. 궁금해졌다. 


오멸 감독/김정근 기자

제주 출신 오멸(40)은 영화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미대를 나와 연극을 하던 그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카메라를 샀는데 제작비가 없어서 다시 카메라를 팔았다. 이번엔 한 영상업체에서 카메라를 빌렸는데 촬영할 사람이 없었다. 업체에서 촬영할 사람까지 물색했는데 막상 촬영날이 되자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하니 “너무 추워서 못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영화에 대해 잘 알았다. 20대에는 하루 다섯 편씩 영화를 봤다. 에로 감독 틴토 브라스부터 러시아의 경건한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까지 닥치는대로 담아넣었다. 오멸은 “지금까지 본 영화가 다 공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연출한 두 편의 장편이 25일 나란히 개봉한다. 첫 영화 <어이그, 저 귓것>(이하 귓것)과 두번째 영화 <뽕똘>이다. <귓것>은 ‘어이그 저 바보같은 녀석’이란 뜻의 제주도 사투리다. 상처입은 몸과 마음으로 고향 제주로 돌아온 가수 용필, 그를 따르는 가수 지망생 뽕똘, 어설픈 춤꾼 댄서 김, 동네를 배회하는 술꾼 하르방의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그린 영화다. <뽕똘>은 ‘낚싯바늘이 물 속에 가라앉도록 끝에 매는 쇳덩이나 돌덩이’를 뜻한다. 영화감독이 되고픈 뽕똘이 배우와 스태프를 모아 전설의 물고기 돗돔을 잡는 영화를 찍는다는 코미디다. 두 영화 모두 대사가 제주 방언이 심해, 육지 사람들은 자막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 


<어이그, 저 귓것>(위)과 <뽕똘>

 
오멸은 영화를 찍으면서도 “이게 영화 맞나”하고 매번 되물었다. 배우, 스태프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멸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방식으로 했다. 대중이 바라보는 시선과 다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이건 영화일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와 스태프는 대부분 오멸이 설립한 ‘자파리 연구소’ 출신이다. <뽕똘>에서 ‘영화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뽕똘’은 “자파리!”라고 답한다. ‘자파리’란 제주 방언으로 ‘쓸데없는 놀이, 장난’을 뜻한다.


“영화에는 놀이, 산업, 문화 등 다양한 요소가 있죠. 영화를 하고 싶은데 못하는 이유는 산업적 요소가 너무 강화됐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데 왜 못합니까. 미술이든 영화든 놀이로서 먼저 즐겁게 하고 그 다음에 깊이가 생기는 겁니다.”


서울 사람은커녕 고향 사람들에게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찍은 영화였지만, 제천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지에서 선보인 뒤 급기야 정식 개봉까지 이르렀다. 오멸은 “개봉하면 마냥 즐거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개봉하면 무조건 돈버는 줄 아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의 평가도 의도와 다르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오멸은 양정원(용필 역)의 연기에 대해 한 누리꾼이 ‘발연기’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크게 상처받았다. ‘제주어로 노래하는 가수’인 양정원은 실제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뒤 기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고, 이 영화에는 그의 상처받은 삶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오멸은 “영화에 대한 평가가 삶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는게 부담”이라고 말했다.


<뽕똘>은 500만원, <귓것>은 800만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자파리 연구소’에서 배우, 스태프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오멸은 “저희한테는 큰 예산인데 세상에 나오니 적다고 한다”며 웃었다. 



키노 망고스틴의 장윤정, 하은정, 오영두, 홍영근(왼쪽부터)/권호욱 선임기자

지난해 8월 장윤정(37)·오영두(36) 감독 부부의 옥탑방. 수태를 위해 지구 남성의 정자를 필요로 하는 섹시한 에일리언과 순결서약을 한 지구 숫총각 영건의 아슬아슬한 ‘대결’이 촬영됐다. 영건 역의 홍영근(32), 에일리언 역의 하은정(31) 두 배우는 속옷만 입고 일주일을 연기했다.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벗었다. 한여름 더위엔 촬영 막간 잠깐씩 돌아가는 에어컨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키노 망고스틴의 두번째 작품 <에일리언 비키니>는 그렇게 ‘헐벗은 채’ 태어났다.

키노 망고스틴은 시나리오, 촬영, 후반작업 등을 공동으로 하는 영화 창작집단으로, 장윤정·오영두·홍영근 등이 주축 멤버다. ‘돈보다 아이디어가 밥줄인 옥탑방 영화 패밀리’, ‘긍정과 수긍과 사과가 우주에서 가장 빠른 집단’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지난해 첫작품 <이웃집 좀비>를 개봉했고, 25일 오영두 연출·각본, 장윤정 프로듀싱·분장, 홍영근 주연으로 <에일리언 비키니>를 선보인다. 이미 같은 멤버들이 세번째 작품 <영건 인 더 타임>의 촬영에 들어갔다.


이런 자세로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기기 직전인 영건, <에일리언 비키니>
워낙 적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찍었기에 “(제작비) 500만원으로도 먹고 놀았다”는 설명이다. 이미 일본에 2만 달러에 판권을 수출해 제작비를 남겼다. 장윤정은 “잘 먹으면 불만이 없다. 현장에는 언제나 배우와 스태프들의 기호에 따라 테이블 하나 가득 간식을 비치했다”며 웃었다.
오영두는 “저예산 영화일수록 상업영화가 못하는걸 해야한다. 그게 나라에서 좋아하는 ‘국가경쟁력’ 아닌가”라며 웃었다. 멜로나 코미디는 문화나 관습 차이 때문에 효과가 떨어지지만, SF나 액션은 보편적이라는 설명이다. 하은정은 “우리는 애국심, 애향심이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오영두는 “그림으로 치면 휴지에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조금만 힘을 줘도 찢어진다. 투자사도, 배급사도 없이 무조건 찍었다. 영화제에서 선정해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촬영분을 편집하다보면 잘 찍은 건지 못 찍은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도 있었고, 그럴 때면 “하드(디스크)를 떨어트릴까, 포맷을 해버릴까”하는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에일리언 비키니>의 장르는 ‘SF코믹액션’이다. 오영두는 “홍영근의 살이 빠져 근육이 드러나고, 하은정은 피부가 좋아져 메이크업이 잘 먹었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찍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래도 영화 후반부에는 나란히 가던 공간과 시간이 어긋나면서 심상치 않은 주제를 드러낸다. 오영두는 “우리 옆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것들이 있다. 우리 인간이 유일무이하고 우월한 존재는 아니다라는 것까지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재미있다”는 이유로 영화를 하는 이들이지만, 그 재미를 위해선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영국에서 뮤지컬을 전공한 하은정은 어린이 영어뮤지컬 강사로, 홍영근은 상업영화 배우로 활동한다. 장윤정은 영화분장, 오영두는 편집 등으로 생계에 보탠다.


장윤정이 “영화로 생계를 잇고 싶다. 어떻게든 남기겠다”고 하자, 홍영근은 “그래서 노멀하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살기 위해 튀는 사람들. 키노망고스틴이다. 


에일리언의 극중 이름은 하모니카. 성이 하씨고 이름이 모니카다. 감독은 하은정이 "어떻게 보면 모니카 벨루치 각이 나와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