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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우국'과 '인사이드 아웃' 이렇게 최근 접한 소설, 영화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한 차례 지나감. 싫지만 재밌는 작품이 있다. 신경숙 작가가 표절한 것으로 추정된 작품 ‘우국’이 그렇다. ‘우국’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가 1961년 발표한 단편이다. 이 작품의 절반은 섹스 묘사고 나머지 절반은 죽음 묘사인데, 이렇게 자극적이면서 심오한 소재를 솜씨 있게 다룬다면 작품에 대한 호오와 상관 없이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섹스의 결과로 태어나고 또 언젠가 죽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마치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듯 혹은 영원히 죽지 않을 듯한 표정으로 살아간다. 소설가는 그런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1936년 2월26일 천황 중심의 강력한 국가 개조를 주장하는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가 ‘우국’의 배경.. 더보기
왕좌의 게임과 메르스, 새로운 중세의 시작 정기적으로 쓸 차례가 다가오는 칼럼의 문제점은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다는데 있다. 시의성을 중시하는 언론 속성 상, 쓰고 싶은 이슈가 있으면 내 차례가 아니고 내 차례가 오면 쓸만한 이슈가 지나간 상태일 때가 많다. 그래서 칼럼을 쓸 시기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느냐, 그리고 그 사건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는 일정 수준 운에 달려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다섯 번째 시즌이 종영한 과 메르스를 엮어보려고 며칠 전부터 준비중이었는데, 마감 직전 신경숙 표절건이 터져서 조금 고민했다. 이슈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글이 더 많은 주목을 받겠지만, 차분하게 세계관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데 좀 더 끌리는 편이라 원안을 고수했다. 덧) 그리고 지면에서의 제목은 '중세로 돌아간 한국'으로 돼 있는데, 내 생각은 '세계는.. 더보기
유체이탈 화법에 대해 한 영화배우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옛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 배우가 겸연쩍은 표정을 짓자, 동료 출연자들은 놀리듯 웃는다. 제작진은 그 영화의 자료 화면을 보여주며 ‘전설의 영화’라고 조롱한다. 혹자는 이런 말에서 ‘예능감’을 느낀다지만, 이런 행동은 차라리 ‘무례’다.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 웃음을 지었을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그 영화의 관계자들이 봤다면 인상을 펴지 못했을 듯하다. 영화는 대규모 공동작업의 결과다. 수십~수백 명의 주·조연, 단역 배우들이 출연하고 연출, 촬영, 조명, 편집, 음악 스태프도 그만큼 많다. 투자자, 기획자, 배급관계자, 극장주, 마케터들도 영화의 성공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한다. 그런데 딴 사람도 아니라 영화의 간판.. 더보기
어느 판사의 품격 다른 주제를 생각하다가 마감하는 날 오전 급히 바꿨다. 원래 쓰려고 했던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더 정리해 꼭 쓰고 싶다. 아이돌도 사람이다. 팬들도 아이돌이 연애하고, 방귀 뀌고, 잘 때 이 간다는 사실을 짐작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예전의 팬들은 아이돌의 연애 사실이 밝혀지면 ‘팬질’을 그만두기도 했다. 아이돌이 “사랑해”라고 노래할 때, 그건 노래를 듣는 모든 팬을 위한 메시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인을 위한 연인이 된 순간, 아이돌에 대한 환상은 부서진다. 어떤 직업군에는 그에 기대되는 환상이 있다.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에 헌신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사진 밑에 성적 암시가 담긴 글을 남긴 예비 교사에 대해 대중은 분노했다. 대중의 사랑에 기대어 사는 연예인은 모든 사.. 더보기
모험은 무엇이든 좋다 도합 8시간에 이르는 3부작, 9시간이 넘는 3부작을 모두 본 관객들은 아마 1시간 이상 이어지는 치열한 전투 장면, 반지가 상징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 탐욕에 병든 잔인한 용 스마우그, 엘프들의 아름다운 외모 등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내겐 험난한 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호빗들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쩌면 피터 잭슨 감독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듯한 이 결말부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호빗족 빌보 배긴스는 평화로운 샤이어 마을에서 자족하며 살아간다. 푸른 초원 위 아늑한 마을에는 장난끼 있지만 온순한 종족이 모여 산다. 그러나 빌보가 마법사 간달프와 난쟁이족의 모험에 본의 아니게 휘말리면서 그의 삶은 이전과 달라진다. 뜻밖의 여정을 떠난 빌보는 수차례 죽을 고비를 .. 더보기
도서정가제보다 중요한 것 니체의 , 칸트의 같은 책이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인터넷 서점들은 하루 종일 과부하 상태더니, 저녁 무렵부턴 아예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접속자가 갑자기 증가해 서버가 다운된 모양이었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기 전날인 20일의 풍경이었다. 매일이 이렇다면 저자, 출판사, 서점이 모두 콧노래를 부르겠지만, 이런 소동도 이날이 마지막이다. 유행 지난 옷가지를 팔아치울 때나 쓰던 ‘창고정리’ ‘폭탄세일’이란 말을 책 사면서 들을 줄이야. 이 소동 속에 살 사람도 사고 안 살 사람도 샀다. 며칠 뒤 독자에게 배송될 은 아마도 책장에 고이 모셔진 채 위풍당당함을 뽐내지 않을까. “그 책 언제 읽을 거냐”고 묻지는 말자. “읽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 더보기
안도와주는게 도와주는 것, 부산영화제와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이 개막인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너는 안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처리가 서툰 사람을 놀릴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화의 영역에서 이 농담은 종종 진리가 된다. 특히 관이 후원하는 문화행사의 경우가 그렇다. 정확히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이 유지될 때 문화행사가 성공하고 관도 체면을 살린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 초기에 빠르게 자리잡은 배경에도 이런 원칙이 있었다. 문화 관료로 잔뼈가 굵었던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은 관의 간섭을 막기 위해 온갖 수를 다썼다. 당시엔 영화제 출품작도 규정상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했다. 그러나 영화제에는 온갖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 방식의 영화가 출품된다. 만일 .. 더보기
함께 울어야 할 시간 눈물을 머금고 글을 쓴다. 뉴스의 최전선에 있는 처지라 뉴스에서 눈을 돌릴 수 없는 처지가 원망스럽다. 이렇게 심약해서 무슨 기자냐고 자책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간간히 눈물을 훔치는 동료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안한다. . 사고 당일 아침까지도 기자들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침몰중’이라는 속보가 전해졌지만 곧 ‘학생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후에 접어들어 정부가 구조자의 수를 정정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전원 구조, 368명 구조, 164명 구조…. 이날 서울에 가득했던 미세먼지같은 우울, 슬픔, 탄식이 기자들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사회부로 전입온 뒤 여러 건의 죽음을 접했다.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사고의 대학생들, 송파의 세 모녀에 이어, 여객선 세월호의 고교생들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