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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 CSI




**스포일러?

미국 드라마 <CSI> 라스베가스 시즌의 피날레를 봤다. 이 시리즈가 처음 시작한 것이 2000년이니 벌써 15년이다. 최근 몇 년 간은 전혀 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CSI 라스베가스>편이 한국 지상파에서 방영했을 때에도 관람했던 시청자로서, 심지어 이 시리즈가 편성 문제 때문에 들쑥날쑥 방영되자 분노에 찬 기사를 쓰기도 한 처지로서, 시리즈의 엔딩에 대해 한 마디 보태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피날레는 피날레답게 그동안 하차했던 멤버들이 대거 모였다. 워릭은 극중 사망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길 그리섬, 캐서린 윌로우스가 범인을 잡기 위해 다시 나타났다. 잊을만하면 길 그리섬과 썸을 타던 레이디 헤더가 연관된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테러리즘 운운하며 거창하게 시작했던 초반부와 다르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이혼한 그리섬과 사라 사이들의 아슬아슬한 감정 줄타기, 그 사이에 낀 레이디 헤더와의 삼각관계, 캐서린 윌로우스와 그의 말썽쟁이 딸 린지의 후일담 등이 소개된다. 정작 사건은 조금은 시시한 방식으로 해결되고, 등장 인물들도 이렇다할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닉 스톡스처럼 생매장당할 뻔할 정도는 돼야 위기다) 죽긴 죽었는데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런지 알려주지 않고 넘어가는 일도 있다. 15년 역사의 피날레치곤 엉성한 구성이었다. 


그래도 한때 이 드라마의 팬으로서, 난 이 피날레가 나쁘지 않았다. 제작진이 등장인물을 존중하고 있으며, 팬에게도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캐릭터는 물론 제작진의 창작이지만, 팬들과 함께 하면서 어느 순간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다.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 마음"이라는 식의 조물주 마인드로 캐릭터를 대해선 안된다. 팬들의 간혹 있는 터무니 없는 요구와 제작진의 원안 사이에서, 캐릭터는 아슬아슬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대중문화의 묘미이기도 하다. 


15년간의 등장인물이 많아 한명 한명 꼼꼼히 다룰 수는 없었던 것인지, 제작진은 길 그리섬과 새라의 깨진 관계를 복원하는데 집중했다. 둘 사이에 끼어있던 여자 레이디 헤더를 등장시킨 것도 그런 이유 떄문인 것 같다. 헤더가 있어야만 둘이 다시 연결될 수 있다고 여긴 듯하다. 


거의 마지막 대목. 다시 연구실을 떠나 바다를 떠도는 삶으로 돌아가려는 그리섬에게 새라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언제나 여기 있을 것 같았는데 떠나고, 난 항상 떠나고 싶어했는데 여기 있네요." 곧 새라는 반장으로 승진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선 출항 준비를 하는 그리섬의 배 앞에 새라가 나타난다. 둘은 손을 잡고 선수에 서서 항해를 시작한다. 이것이 진짜 끝. 


말도 안되는 해피엔딩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팬들은 이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인물들의 행복을 기원할 권리가 있다. 세계의 비참을 보여주겠다고, 사실을 재현하겠다고, 어처구니 없는 운명을 보여주겠다고 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권리가 제작진에겐 없다. 조금 감상적이고 유치할지 모르겠지만, 석양의 항해를 떠나는 남녀의 모습은 21세기 초반 미드의 시대를 연 작품의 엔딩으로는 적당히 소박하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생각나는 일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김병욱의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엔딩은, 그 인상적인 느낌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엔딩이었다. 신세경과 최다니엘의 행복을 그리는 것이 그토록 위선적으로 느껴졌다면, 차라리 조금 모호하게 혹은 맺어지지 않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나았다고 생각한다. 박정수의 죽음 이후의 쓸쓸한 식사를 다룬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정도가 최대치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