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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재난 이후의 예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경우



최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 <히어애프터>(사진) 첫 장면은 무시무시했다. 연쇄 살인마, 귀신, 외계인이 나와서가 아니다. 공포의 대상은 쓰나미였다.


이 영화는 2004년 인도네시아를 덮친 쓰나미 와중에 임사(臨死) 체험을 한 프랑스 여성, 교통사고로 쌍둥이 형을 잃은 영국 소년, 죽은 자와 소통할 수 있는 미국 영매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자 삶에 대한 무력감, 혈육을 잃은 상실감,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고통에 괴로워한다.

정치부 기자이자 방송 앵커로 거리 광고판에까지 등장할 정도의 명성을 누리던 프랑스 여성은 등 뒤에서 다가온 죽음의 냄새를 맡은 뒤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여성은 거대한 물결을 피해 한 소녀의 손을 잡고 뛰었는데, 여성은 살고 소녀는 죽었다. 사후세계를 엿봤다고 주장하는 이 여성을 동료들은 차츰 멀리한다. 그는 앵커 자리를 내놓고, 연인과도 헤어진다. 여성은 이승의 물질 세계에만 집착하는 이들과는 더 이상 마음을 나눌 수 없음을 느낀다.



80세의 노장 이스트우드는 이 여성의 마음 속 생채기가 아물고 새살이 돋는 과정을 과장없이 그려낸다. “겪어보니 부질없더라”라는 체념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착하게 살라”는 교훈도 없다. 황야의 건맨, 무법자 형사를 거쳐 이제 미국 영화계의 현자가 된 그는 폭넓은 여유, 깊은 지혜가 담긴 손길로 관객들 마음 한구석에 갖고 있을 상처를 어루만진다.

일본 도호쿠 대지진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고 사라지고 다쳤다. 엎친 데 덮친 원전 사고는 핵재앙의 공포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세계인들도 천지의 불인(不仁)에 넋을 잃었다.

당장은 생존이다. 먹고 마실 것이 우선이다. 일본에서 이미 개봉한 <히어애프터>는 상영을 멈췄다고 한다. 당면한 현실의 공포를 스크린에서까지 돌이킬 여유는 없다.

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런 것처럼, 언젠가 예술은 제 할 일을 찾을 것이다. 쓰레기와 시신이 뒹구는 대지에 희망과 구원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물론 재난의 이미지를 스펙터클로 판매하려는 장사치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때 구원자와 장사치를 구분하는 건 오늘의 슬픔과 아픔을 기억하는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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