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그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 외화 베스트10
  2. 인생 포맷이냐, 환생이냐. 우디 앨런의 <환상의 그대> (2)
외화 역시 순위는 없음. 10편을 고르면서 <세상의 모든 계절>,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등을 끝내 넣지 않은 걸 보면, 난 너무 잘 만들어 꽉 짜여진 영화엔 완전히 빠져들지 못하는 것도 같음. 영화제에서 본 영화는 제외. 후보는 모두 개봉작.

-드라이브

순수한 무드, 제스처의 영화. 내용물이 없는데 포장만으로 아름다운 선물 같.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혁신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재목, 니콜라스 윈딩 레픈.


-더 브레이브

올해의 소녀 해리 스타인펠드. 별이 가득한 밤, 지친 흑마를 타고 달리는 엔딩은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했다.



-인사이드 잡

신문을 그리 보고도 몰랐는데 이 영화를 보고 이해하게 됐다. 금융자본주의가 왜 이 모양인지. 사진 속의 인터뷰이는 스트로스 칸의 불명예스러운 퇴진 이후 IMF 총재가 된 크리스틴 라가르드.



-사랑을 카피하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씨네21>에 실린 손영성 감독의 평이 훌륭했다. "좋은 로맨스영화는 미스터리로 가득한 영화이며, 정말 좋은 미스터리 영화는 일상을 넘어 초현실과 대면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르 아브르

한동안 잊었던 이름 아키 카우리스마키. 여전히 통하는 그의 스타일. 믿고 싶은 한줌의 선의.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

지금 혼자만의 넉넉한 휴가가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하고 싶은 건 두 가지. <문명> 하기, <해리 포터> 전편 차례로 보기.



-환상의 그대

이런 리스트에 객관적인게 어딨어. 다 팬심이지. 우디 앨런 영감이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만큼 살아서 영화를 찍어주면 좋겠다.


-13인의 자객

분명 300명이 몰려온다 랬는데, 아무리 봐도 300명 넘게 죽이는 것 같다. 미이케 다카시 정도만이 컨트롤할 수 있는 미친 살육전. 만약 내년에 <할복>이 개봉한다면, 2012년 리스트에 당연히 넣겠다.


-고녀석, 맛나겠다

물론 원작의 힘이 클 것이다. 기대치가 낮았기에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보고 난 뒤의 느낌은 '픽사급'이었다.



-머니볼

야구 장면이 별로 없는 근사한 야구 영화. 그리고 삶에 대한 영화. 이런 대본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지난해 5월 칸영화제에서 처음 보고, 이번에 개봉을 앞두고 다시 봤다. 자막을 읽으면서 보니 처음볼 때보다 훨씬 우울한 영화였다....

아무튼 이 영화의 원제는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점쟁이가 별 의미없이 하는 말인 것 같다.  전작  'Vicky Cristina Barcelona'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로 개봉했다. 원제를 그대로 쓰기 힘든 마케터들의 고민은 이해하면서도, 가능한 많은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어야 하는 고민은 이해하면서도, 좀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다.  


헬레나(오른쪽)는 오컬트 서점의 주인장(가운데)과 사랑에 빠진다. 얼마전 상처한 주인장은 죽은 아내에게 새 사랑을 받아들여도 되는지 물어본다.

환생을 믿으십니까.


명장 우디 앨런의 신작 <환상의 그대>(원제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는 앨런의 영화가 종종 그렇듯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정체불명의 내레이터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합니다. “인생은 분노와 헛소리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 흥겨운 빅밴드 음악이 분위기를 중화시키지만, <환상의 그대>는 앨런의 최근 어느 영화보다 염세적입니다.


코미디의 외피를 쓴 앨런의 영화는 대체로 비관적이었습니다. 앨런은 그렇게 40편의 장편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극중 인물을 닮았다면 온갖 히스테리와 자격지심과 건강염려증을 겪은 그가 어느덧 80을 바라보면서도 거의 매년 영화를 내놓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입니다.

청춘을 되찾고 싶은 알피(안소니 홉킨스)는 조강지처 헬레나(젬마 존스)와 이혼한 뒤 콜걸과 재혼합니다. 알피와 헬레나의 딸 샐리(나오미 와츠)는 뛰어난 데뷔작을 발표한 뒤 두번째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작가 로이(조쉬 브롤린)와 아슬아슬한 부부 관계를 유지합니다. 샐리는 매력있는 직장 상사 그렉(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원고를 보낸 뒤 출판사의 반응을 기다리는 로이는 옆집의 아름다운 여인(프리다 핀토)에게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샐리는 직장 상사 그렉에게 호감을 품는다. 물론 그건 그렉이 어떤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함께 오페라를 보자는 식으로.

그러고 보면 이 사람들은 참 한심하고 가련합니다. 저마다 자신이 원하던 일과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헬레나는 척 봐도 사기꾼인 점쟁이에 의지합니다. 사위는 점쟁이를 비난하지만, 장모가 돈도 못벌고 까칠한 사위보단 듣기 좋은 말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점쟁이를 믿는 건 당연하겠죠. 


헬레나의 마음은 결국 ‘환생’ 개념에 끌립니다. 헬레나는 이승에서의 삶이 엉망일지라도, 다시 태어나면 지금보다 좋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은 억겁의 세월에서 스쳐지나가는 순간일 뿐이니, 안달할 것도 탄식할 것도 없습니다. 이 겉만 달콤하고 속은 쓰디쓴 영화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사람은 결국 헬레나입니다.


언제나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길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끝없이 돌아보고 고민합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무언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걸 느낄 때, 인생을 ‘포맷’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신 분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가장 늦었다는게 문제입니다. 무작정 포맷하기에 우리 삶에는 이미 너무 많은 자료가 축적돼있고, 프로그램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과감하게 포맷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가 성인(聖人)이나 영웅으로 존경하는 이들은 대개 파란만장하고 방탕한 삶을 한 차례 포맷한 뒤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우리는 성인도, 영웅도 아니지 않습니까. 남편의 사랑만 믿던 헬레나도 그랬습니다. 그녀가 환생을 믿듯이, 우디 앨런도 환생을 믿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재치 있는 영화감독도 자신의 이번 삶에 불만을 느끼고 있을까요.

슬럼프에 빠진 작가 로이가 반한 옆집 여자. 프리다 핀토라는 이름의 이 배우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