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에 해당되는 글 2건

  1. 마법과 현실의 크로스오버, '신비한 동물사전'
  2. 우리는 무언가를 버려야 성장한다, <보이후드>

워너가 향후 먹거리를 장만한듯. 에디 레드메인의 오타쿠스러운 해석이 흥미로웠다. 


외로운 고아 소년이 선량하고 강인한 마법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해리 포터’ 시리즈는 소설, 영화로 나오며 지난 20년간 가장 사랑받은 대중문화 콘텐츠였다. 소년·소녀들은 해리 포터의 성장담에서 어떻게 좋은 친구를 사귀는지, 두려움과 악을 이기는 용기는 어떻게 얻는지, 꿈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은 성인들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것이기에, 많은 성인 독자와 관객도 당당하게 해리 포터의 팬을 자처했다.

해리 포터가 강력한 악당 볼드모트를 무찌르면서 장대한 소설과 영화는 모두 끝났다. 그러나 해리 포터 세계관의 매력은 빛바래지 않았다. 눈치 빠른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이를 놓칠 리 없다. 영화판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제작한 워너브러더스는 이 영화의 스핀 오프 시리즈를 기획했다. 소설 원작자인 J K 롤링도 흔쾌히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사용된 한 교과서에서 제목을 따왔다. 롤링은 팬들을 위한 보너스 형식으로 실제 이런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는데, 책은 말 그대로 신비한 동물을 항목별로 정리한 사전 형식이었다. 그러므로 <신비한 동물사전>은 ‘해리 포터’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하되, 줄거리는 영화를 위해 완전히 새로 창작된 셈이다.

1926년, 악한 마법사 그린델왈드가 유럽에서 큰 테러를 저지른 뒤 종적을 감춘다. 미국의 마법 세계는 테러의 공포, 인간들에게 발각될 위험에 크게 긴장한 상태다. 영국 마법사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가 의문의 가방을 든 채 뉴욕에 도착한다. 뉴트는 세계를 여행하며 신비한 동물을 구조해 가방 속에서 보살피고 있다. 동물 몇 마리가 가방 속에서 탈출해 뉴욕은 더욱 큰 혼란에 빠진다. 미국 마법 의회의 안보 책임자인 그레이브스(콜린 파렐)는 허가 없이 동물을 들여온 뉴트를 체포한다. 뉴트는 영문을 모르는 인간 제이콥, 마법사 자매인 티나와 퀴니의 도움으로 상황을 타개하려 한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남은 해리 포터 팬들의 푼돈을 긁어모으기 위한 억지 프로젝트는 아닐까. 의구심은 초반 10분 만에 사라진다. 오프닝에서는 ‘예언자 일보’가 마법 세계에 드리운 테러의 공포를 전한다. 인간은 인간대로 낯선 자들을 경계한다. 영화 배경은 1920년대지만, 서구 세계의 테러리즘 공포, 무슬림 등 낯선 자들에 대한 배척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현실의 어두움을 환기시키자마자 재빨리 아기자기한 마법 세계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뉴트의 가방 속에서 도망친 신비한 동물들이 뉴욕에서 펼치는 소동이 그 핵심이다. 오리너구리를 닮은 ‘니플러’는 보석이나 동전같이 반짝이는 것에 사족을 못 쓰는 장난꾸러기다. 작은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보우트러클’은 뉴트의 옷깃 속에 숨어있다가 결정적인 활약을 펼친다. 날개 달린 뱀처럼 생긴 ‘오캐미’의 알은 은으로 돼 인기가 많다. 신화적 상상력과 대중문화적 재미를 갖춘 동물들이 스크린을 마음껏 활보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장점은 정의. 우정, 박애 같은 보편적 가치를 원대하면서 흥미로운 서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데 있었다. <신비한 동물사전>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세계 사회에서 관용, 공존 같은 가치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이지만, 때마침 나온 <신비한 동물사전>은 이에 대한 대중문화계의 반격처럼 느껴진다. 어떤 가치는 너무나 깨지기 쉬워 때론 지키기 힘들지만,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되는 순간이 있음을 <신비한 동물사전>은 말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등장인물인 덤블도어, 레스트랭 같은 이름을 언급하면서 향후 시리즈 전개에 대한 ‘떡밥’을 던진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영국 출신 명우들의 향연과 같았는데, <신비한 동물사전>도 비슷하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에디 레드메인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콜린 파렐 정도를 제외하면 캐서린 워터슨, 앨리슨 수돌, 댄 포글러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들이 주요 배역으로 출연하지만, 캐릭터 구현 능력에 있어서는 흠잡을 데 없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 2> 등 마지막 4편의 ‘해리 포터’를 연출한 데이비드 예이츠가 감독했다. 워너 브러더스는 앞으로 2년에 한 편씩, 총 5편의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먹고살 양식을 발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는 초창기부터 마법같이 대중을 홀리는 볼거리였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아름다운 극장 안 마법 세계와 어두운 극장 밖 현실 세계를 매혹적으로 뒤섞는 데 성공했다. 16일 개봉한다.






**스포일러 있긴 한데, 관람에 영향 미칠 정도는 아닐 듯. 사실 스포일러랄 게 없는 영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신작 <보이후드>를 봤다. 링클레이터가 요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영화 제목은 얼마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날 다시 익혔다. 그날 한국의 문화부 기자들은 외국의 한 도박 사이트를 종일 들락날락 해야 한다. 그곳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고 도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는 5위권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사이트에서는 내년초 아카데미 수상자를 두고도 벌써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데, <보이후드>는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였다. 배당율은 2/1. (지금 확인해보니 마찬가지다. 참고로 2위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와 안젤리나 졸리 감독님의 <언브로큰>으로 둘 다 4/1). 


알려져 있다시피 <보이후드>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다. 성장영화야 많았지만 이 영화가 특이한 점은 실제 아역 배우의 성장을 12년 동안 찍었다는 사실이다. 제작진은 매년 15분 분량 가량을 12년간 찍은 뒤 총 165분의 장편으로 완성했다. 소년의 부모 역할을 한 배우 에단 호크와 패트리샤 아퀘트도 같은 기간 출연했다. 아퀘트는 링클레이터 감독의 전화를 이렇게 회상한다. "어느날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전화해 묻더군요. '앞으로 12년간 뭐할거예요?' 전 영화 이야기를 듣고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배우들은 매년 특정한 시기에 모여 마치 동창회를 하듯 촬영했다고 한다. 


에단 호크는 많이 늙지 않는다. 패트리샤 아퀘트는 많이 늙는다. (특히 체중변화가 심해 보인다) 가장 많이 변한 건 물론 주인공 메이슨 역의 엘라 콜트레인이다. 처음엔 아역이었는데 영화 끝에는 성인 배우가 된다. 물론 21세기의 영화팬들은 '해리 포터'의 배우들이 조금씩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바 있다. 이 역시 굉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해리 포터>가 10년간 시리즈로 나온 영화인 반면, <보이후드>는 그 성장기를 한 편의 영화에 담았다. (<보이후드>에는 아이들이 파티를 하면서 기다렸다가 <해피 포터와 혼혈왕자>를 사는 장면이 나온다) 게다가 <해리 포터>의 관객들은 배우와 함께 나이든 반면, <보이후드>의 관객은 그렇지 않다. 이건 정말 이상한 경험이다. 



12년 동안 성장하는 메이슨. 잠시 '역변'하는 듯 하더니 결국 원판불변의 법칙을 증명해낸다. 


물론 <보이후드>엔 단점이 있다. 12년 세월의 흐름을 담은 감독은 그 사이 일어난 일들에 대한 논평을 시도했다.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에서 보여준 링클레이터의 장기, 즉 둘의 대화가 그 수단이다. 그런데 어쩌다 이 논평이 너무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예를 들어 SNS 시대의 인간 관계에 대한 대화가 그렇다. "넌 이렇게 나와 얘기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잖아" 같은 대화는 별로 참신하지 않다. 


그러나 <보이후드>를 두고 이런 단점을 앞세워 지적하고 싶진 않다. 이 영화는 굉장한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있고, 그것을 실제로 자연스럽게 추진했다. 이건 질 수 없는 도박이다. <보이후드>는 소년이 성장하면서 겪을 수 있는 일들, 즉 부모의 이혼, 재혼, 학교에서의 따돌림 혹은 텃세, 풋사랑의 감정, 성, 또래 끼리의 가벼운 일탈 경쟁, 심각하지 않은 반항, 재능에 대한 탐색, 진로 고민,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혼란 등을 두루 다루는데, 이건 미국이 아니라 어느 나라의 소년이라도 겪는 보편적인 인생 경험이다. 다만 대부분의 성장 영화는 이러한 소재들 중 한 부분을 강하게 극화시키지만, <보이후드>는 이 모든 주제를 이음새 없이 보여준다. 마치 햇살 가득한 언덕에 누워 느긋하고 아련하게 지난날을 회상하듯이. 


메이슨 가족은 몇 차례 이사를 다닌다. 이혼 혹은 재혼에 의해, 경제적 요구에 의해서다. 이사할 때마다 소년은 자동차 뒤쪽 창으로 직전까지 살던 집을 돌아본다. 난 그렇게 멀어져 가는 옛집의 모습이 그렇게 아련할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겪고, 가진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없다. 오직 한때 소중했던 추억을 별 것 아닌 듯 잊어버리고, 한때 소중했던 인연을 내팽겨치고, 한때 공들였던 작품을 버리고, 한때 친했던 사람과 소원해진 뒤에만 성장할 수 있다. <보이후드>는 그런 진실을 말한다. 메이슨은 사진에 관심과 재능이 있다. 엄마는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싸준 메이슨의 짐에 굳이 그의 첫 작품을 넣어둔다. 메이슨은 그걸 자꾸 꺼내 집에 놓아두고 가려한다. 엄마와 메이슨은 이를 두고 가벼운 실랑이를 벌인다. 난 메이슨이 옳은 것 같다. 섭섭하지만, 첫 작품 따위 잊어버려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도, 첫사랑도, 끌어안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던 장난감도.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지만, 내 입장이 있어서인지 부모의 대응에도 눈길이 갔다. 이 영화에서 부모는 때로 아이보다 유치하다. 엄마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처음에는 괜찮지만 알고보면 술주정뱅이 마초인 남자와 자꾸 연을 맺는다), 아빠는 인생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이 없어 보인다. 물론 그런 아빠도 조금씩 늙는다. 대입을 목전에 둔 아들을 축하하며 아빠는 말한다. "인생에는 타이밍이 중요해. 난 이제서야 네 엄마가 그렇게 바라던 쫌팽이가 되었단다" (별다른 직업도 없이 밴드를 전전하며 기타 치며 세월을 보내던 아빠는 그 사이 한 곳에 정착해 새 아내와 아기를 얻었다. 클래식 카를 팔고 유아용 카시트를 달 수 있는 밴도 새로 장만했다) 



주정뱅이 새 아빠에 의해 강제로 이발소에 끌려간 메이슨. 눈빛이 심상치 않다. 


메이슨은 착한 소년이었고 착한 사람이 됐다. 세상을 놀라게할 재능을 보이거나 위대한 인물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가족 혹은 주변 사람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으며 살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책임감을 갖고 크게 비난받지 않을 정도로는 해낼 것 같다. 난 이런 사람이 좋다. 아니 훌륭하다고 여긴다. 우리가 이 정도의 삶을 살면 죽은 뒤에도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평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메이슨이 갓 만난 친구들과 함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빼먹고 하이킹을 간 대목에서 영화를 끝낸 건 대단히 센스 있는 선택이다. 난 황혼녘에 친구를 보며 슬쩍 웃는 메이슨을 보며 이 인물에 정이 들어버렸다. 


괴물과 싸우고 죽을 뻔하고 부모를 잃고 친구도 잃은 해리 포터에 비하면, 메이슨은 아무 일도 겪지 않았다. 그러나 메이슨은 '성장'을 했다. 이것 역시 해리 포터만큼 엄청난 모험이다.  



영리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