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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한국 기업은 이 모양인가, <대한민국 나쁜기업 보고서>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김순천 지음/오월의봄/416쪽/1만6000원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의 19쪽은 텅 비어 있다. 인쇄 사고가 아니다. 여기엔 책을 위한 수많은 인터뷰 중에서도 그 내용이 중요해 가장 첫 장에 배치하기로 한 삼성전자 노동자의 육성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원고가 완성된 뒤 인터뷰이는 마음을 돌렸다. 미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그는 원고를 싣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가명을 쓴다 해도 회사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나가면 결국 피해가 돌아올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저자는 “많이 아쉬웠지만 그이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서는 한 쪽을 백지로 남겨두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에 다닌다. 새벽별을 보며 출근해 막차를 타고 허겁지겁 돌아올 때까지 기업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가족, 친구보다 직장 상사, 동료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기업에 다니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기업에 들어가고자 안달이다. 기업은 기업 바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기업 최고경영자가 지나가듯 던진 한 마디가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재벌이 대학을 인수해 ‘기업식 경영기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최대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뽑힌 지도 한참이 됐다. 우리가 어차피 기업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기업에 머무는 시간, 기업과 맺는 관계가 행복하고 보람있도록 하는 편이 좋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기업이 그러한가. 그 옛날 신민들은 궁궐 옆 대나무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나 있었는데, 삼성 노동자는 가명으로 회사 이야기를 알리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지경이다. 


르포작가 김순천은 대기업·공기업 사무직 노동자, 하청업체 여성노동자, 해고노동자, 정보통신 계열 프리랜서 노동자, 취업준비생, 학생회 간부, 장애인 노동자, 중소기업 대표 등 20명에 가까운 사람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말을 통해 한국 기업의 행태와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알아본다. 짐작하다시피 한국의 기업 문화라는 것은 대체로 끔찍하기 이를데 없다. 나쁜 사례를 모았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충격적인 수준이다. 물론 많은 경영자와 사원들은 “먹고 살려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먹고 사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도 인간다움을 상실해도 좋을만큼 중요하진 않다. 


먼저 최악의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자. 실업계 고교를 나와 1987년 삼성에 들어간 박종태는 영상 디스플레이 사업부에 배치됐다. 그는 20년 이상 지각 한 번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회사 분위기가 바뀐 것은 97년 금융위기 때부터였다고 했다. ‘상시 구조조정 체계’가 도입되자, 자고 나면 동료가 사라지는 일이 생겼다. ‘권고사직’이었지만 사실상 해고였다. 


삼성은 둘째를 낳은 여성에겐 암암리에 퇴사를 권유했다. 중국에 출장갔다가 심근경색으로 죽은 직원의 유족에겐 “자기 건강관리를 못해서 그런 건데 회사가 어떻게 책임을 지냐”고 말했다. 노조가 없는 삼성에는 ‘한가족협의회’가 있다. ‘노사협의회’라고 하면 될 것을, ‘노사’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그렇게 부른다. 박종태는 한가족협의회 위원이 돼 이런 사례들에 대해 항의했다. 회사는 협의회 위원들에게 외유를 보내주면서 회유하는데, 박종태는 회사 비용으로 가는 것이 꺼림칙해 가지 않았다. 이를 근거로 회사는 박종태에게 이런저런 징계를 내리기 시작했다. 컴퓨터도 없는 빈 책상에 앉혀 하루종일 파티션만 바라보게 했고, 화장실 가는 것도 부서장 허락을 받도록 했다. 사무실에서 한 동료의 생일 축하 파티가 열렸는데 박종태는 투명인간이라도 된 듯 부르지 않았다. 나중엔 아예 전담 감시자를 배치했다. 박종태가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휴게실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감시자가 바로앞 의자에 앉아 빵을 먹으면서 박종태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정승기는 1993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했다. 이후 11년간 13회의 표창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사원이었다. 마음이 바뀌게 된 계기는 2004년 절친한 한 동료의 죽음이었다. 공장에서 사고로 죽은 그의 빈소에 가 미리 구해온 근조 리본을 달았는데, 회사 관리자가 오더니 “일이나 열심히 하지 그딴 걸 왜 달고 난리들이냐”며 리본을 떼어냈다. 동료가 죽었는데 근조 리본 하나 못달게 하는 회사. 앞서 정승기는 직원들의 죽음 소식에 무감각했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는 달랐다. “충격을 받으니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나하나 짚어보니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거예요.” 이 회사에선 한국안전공단 공식집계으로 2006년 5월부터 1년 4개월동안 13명이 죽었다. 정승기는 유족을 설득해 회사와 싸우기 시작했다. 회사는 세 차례의 징계 끝에 정승기를 해고했다.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은 기존 대학사회에선 상상하기 힘든 정책들을 펴나갔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혁신’이겠지만, 일부 교수와 학생 입장에서는 ‘죄악’이었다. 두산이 들어온 다음 학내에는 두산이 학생들을 비공개적으로 뽑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취업난에 불안해하던 학생들은 주문에 걸린 듯 사로잡혔다. 교수에게는 성과급제, 연봉제를 도입해 자발적인 충성을 유도했다. 강의시간엔 계열사 경영자들이 나와 자신의 성공담을 자랑했다. 


돈 안되는 인문학 계열 학과들은 통폐합됐다. 이익, 효율을 따지는 경영자에게 학문, 표현의 자유는 먼나라 얘기였다. 학교를 비판하는 인터넷 게시물은 일방 삭제됐고, 학생의 접속 권한도 박탈당했다. 학생들이 농성을 시작하자 기업이 노동자를 탄압할 때 쓰는 전가의 보도를 꺼냈다.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였다. 두산중공업 직원들은 학생을 사찰했다. 흥미롭게도 박범훈 총장은 “내가 지시했다”고 먼저 시인했다. “총장이 직접 자기 손에 오물을 묻히면서도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다, 나 하나 희생해서 내 손으로 해결해서 기쁘다(라고 합니다), 자기가 무슨 계열사 사장 정도 되는 걸로 생각하는 거죠.” 군사정권 시절에 프락치가 침투하고 탱크가 들어와도 접수되지 않았던 대학이 이렇게 쉽게 무너졌다. 


대기업만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이든, 첨단의 정보기술 기업이든,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피곤에 절고 환멸에 젖고 고통스러워했다. 고졸의 여성노동자 김준서는 여러 공장을 전전했다. 첫 회사는 캐논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만들어져 오는 부품들을 완제품으로 만드는 라인작업에 배치됐는데, 머리를 귀 뒤로 넘길 시간조차 없이 손을 놀려야했다. 작업이 늦으면 뒷사람까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은 오전 8분, 오후 7분, 점심 시간 45분. 오전과 오후의 쉬는 시간엔 직원들이 일제히 화장실에 달려가느라 시간이 다 갔다. 다음엔 커피믹스를 만드는 동서식품이었다. 커피믹스를 50개씩 박스에 넣는 일을 맡았는데, 컨베이어의 속도가 사람이 일하는 속도보다 빨랐다. 교대하는 직원이 오면 손에 든 커피믹스를 상자에 넣으며 일어나야 했다. “거기서 일하면서 기계가 고장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기계는 정이 없잖아요.” 그는 커피믹스가 비처럼 쏟아지는 꿈을 꾼다고 했다. 


임미수는 15년 경력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입사한 벤처기업에는 거품이 가득했다. 대학시절 성실했던 선배는 사장이 된 뒤 회사 카드를 들고 소프트웨어 전시장의 모델 아가씨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대기업의 전횡도 상상 이상이었다. “당신들이 설치한 프로그램에 장애가 발생했으니 소송을 걸겠다”고 해 사람을 불러놓고는 “부서원들이 회를 먹고 싶어하니 회 좀 사달라”고 말했다. 


이런 기업에도 못들어가서 안달이다. 취업준비생 이준희가 자주 언급한 단어는 ‘불안’이었다. 불안해서 취업 카페에 들어가 비슷비슷한 내용의 취업성공기를 읽고,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도 불안해진다. “만약 대기업에서 일하게 해준다면 당장 가고 싶어요. 대기업에서 무슨 일을 할지 잘 모르겠지만. 기업에서 일한다는 게 꿈이 되면 안 되는데 그게 꿈이 되는 게 너무 슬퍼요.”


책에 소개된 기업 중 ‘모범 사례’는 한 곳이다. 토너 카트리지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심원테크는 일반기업에서 시작해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했다. 우연히 장애인을 고용한 것이 계기였다. 다른 직원들은 안된다고 했지만, 장애인이었던 동갑내기 사촌을 보며 자랐던 대표는 “일단 해보자”며 시작했다. 장애인 직원은 2명이 4명이 되고, 다시 6명이 됐다. 장애 정도가 심해 일이 꽤 느린 직원도 있긴 했다. 그럴 때에도 시간이 지나자 차츰 일이 빨라지고 적응을 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 경영자의 뚝심 덕이었다.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돼 삶의 의미를 잃었던 그 직원은 일터에서 새 삶을 찾았다. 있던 삶도 잃어버리게 하는 곳이 한국의 기업인데, 이곳은 반대였다. 


노동자들의 인터뷰 사이로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기업문화 전문가인 신상원은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라는 명제가 허구라고 말한다. 기업을 신성시하는 시각, 적대시하는 시각이 모두 여기에서 출발하지만, 사실 이 명제는 20세기 초 영국, 미국에서 출현한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공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과 돈을 모으려다보니 효율적인 방법인 기업의 형태를 띠게 됐다고 한다. ‘company’(기업)에서 ‘com’은 ‘함께’라는 뜻이고, ‘pania’는 ‘빵’이다. 즉 기업은 ‘빵을 나눠 먹는 사람들의 집단’인 셈이다. 전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이원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며 “이제 주주의 이익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주주를 비롯해 노동자나 환경, 지역, 인권 등 이해관계자들을 다 같이 생각하면서 경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월공단 노동자 김준서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회사밖에 없잖아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가는 곳이 회사이고 회사 끝나고 집에 와서 집안일 좀 하다보면 하루가 다 끝나는 거잖아요. 회사는 진짜 저의 전부인 것 같아요.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살맛이 나니까요. 야단이나 맞고 있고 박스로 머리나 맞고 있으면 우울하잖아요.”


책은 ‘반재벌 정서’를 조장하지도, 모든 기업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으로 바꾸자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람을 함부로 해고하지 말고, 적당한 휴가를 주고, 월급을 떼먹지 말고, 부당한 일을 시키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 이건 사실 상식에 속하지만, 우리는 지금 상식을 얻기 위해 힘겹게 싸워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