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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복수하기 좋은 시간-피의 복수

**스포일러 조금


박찬욱의 복수 3부작도 그렇고, 타란티노의 <킬 빌>도 그렇고, 오늘밤에도 어느 케이블 채널에서 할 지도 모르는 <아저씨>도 그렇고, 복수는 대중영화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다. 특히 이 영화들이 다루는 복수는 물리력을 사적으로 동원하는 종류다. 다들 알다시피 현대 법치주의 국가는 이러한 종류의 복수를 금지한다. 폭력은 국가가 독점적으로 행하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은 국가에게 "쟤 좀 혼내 주세요"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간접 복수는 아무래도 복수로서의 원초적 쾌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대중영화는 그렇게도 많이 직접 복수를 다루는 것 같다. 현실에서 충족할 수 없는 원초적 복수의 쾌감을 대신 맛보게 해주기 위해. 


두기봉의 <피의 복수>(2009)의 원제는 직설적으로 <Vengeance>다. 홍콩영화의 사실상 마지막 명장이라 할 수 있는 두기봉의 이 영화는 그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임달화, 황추생 등 좋은 홍콩 배우들이 출연하고, 프랑스의 가수 겸 배우 조니 홀리데이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정체 모를 암살자들에 의해 사위, 2명의 외손자가 살해당하고, 딸이 빈사 상태에 빠진 중년 남자 코스텔로가 복수를 꾀하는 이야기다. 코스텔로는 현재 파리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지만, 20년 전쯤에는 총을 잡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는 이 남자가 언제 기억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점이다. 코스텔로는 과거 머리에 총을 맞은 적이 있어 지금도 어딘가에 총알이 박혀있고, 그것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기억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래서 코스텔로는 기억을 잃는다해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을 사진 위에 적어둔다. (마치 <메멘토>처럼) 딸과 그 가족의 사진 위에는 '복수'라고 쓰고, 복수를 위해 고용한 킬러들의 사진을 폴라로이드로 찍고는 그 위에 그들의 이름을 적는다. 기억을 잃었다 깨어나도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해야할 일은 하기 위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코스텔로는 정말 영화 중간쯤에 기억을 잃는다. 그의 의뢰를 받아 말단의 조직원들에게 복수를 하고 돌아온 킬러들이 "당신 딸의 복수를 했다"고 하자, 코스텔로는 "무슨 복수?"라고 되묻는다. 킬러들은 고민에 빠진다. 의뢰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임무를 해야 하는가. 이건 직업 윤리의 문제다. 결국 킬러들은 계속 임무를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그들이 직업 의식에 투철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복수의 관성'에 의한 것처럼 그려진다. 킬러 중 한 명인 황추생은 말한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이건 돈이나 치정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아니었다. 돈에 의해 고용되긴 했지만, 그 목적은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다. 직업적인 킬러라 하더라도, 이쯤되면 그 복수의 감정에 연루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영화 속에선. 


그래서 최초의 복수심을 발현시킨 주인은 사라지고, 엉뚱한 사람들이 그 복수심에 전염돼 일을 크게 만든다. 홍콩 영화의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다 죽는다. 모든 복수의 감정을 내려놓은 채 아이처럼 천진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바닷가 마을에 은신해있던 코스텔로는 텔레비전에서 자신이 고용한, 그러나 고용 사실을 기억하지는 못하는 세 킬러들의 죽음 소식을 듣는다. 그동안 자신을 거둬주었던 여인이 울음을 터뜨리자 코스텔로는 옆 자리의 소녀에게 묻는다. "내가 저 사람들(죽은 이들)하고 친했던 거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코스텔로는 무얼 해야할까. 상황은 자신에게 복수의 의무를 부여하지만, 정작 자신은 복수심을 느끼지 않는다. 감정 없이 의무만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에 금전적 보상이 있기는커녕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인데. 코스텔로는 깜짝 놀랄만한 방법으로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관객에 따라서는 실소가 나올수도 있는, 어쩌면 감독이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기묘한 방법이다. 


<킬 빌>은 "복수는 식은 뒤 먹어야 맛있는 음식 같다"는 격언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난 <킬 빌>을 좋아하지만, 정작 그 격언의 메시지는 오랜 시간 동안 알지 못했다. 복수심이든 무엇이든, 감정은 그 감정을 만든 최초의 사건으로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사그러든다. 세월이 지나면 다들 이런 말을 하고 만다. "좋은게 좋은거지."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놓쳐 버리기엔 아까운 감정들도 있다. 그럴 때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감정이 부패하지 않게 잘 보존할 필요가 있다. 너무 자주 쓰여 상투적으로 들리는 고사성어, 와신상담의 의미를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