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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타로서의 히치콕 '히치콕'



1228쪽에 달하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평전 '히치콕'(패트릭 맥길리건/그책)을 읽다. 책의 두께에서 알 수 있듯 "타인의 사생활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꺼림칙한 기분"(박찬욱 감독의 추천사)까지 들게 하는 상세한 책이다. 데이비드 오 셀즈닉, 살바도르 달리, 잉그리드 버그만, 그레이스 켈리, 캐리 그랜트, 제임스 스튜어트, 버나드 허만 같이 잘 알려진 영화인들과의 인연, 뒷이야기도 나오지만, 잘 모르는 영화인들의 이야기가 더 많다. 그래서 영국 시절이나 할리우드 초반부까지 읽다 읽다 지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오기가 생겨 <북북서>나 <현기증>이나 <사이코>나 <새>까진 읽어야지 않겠냐는 생각에 꾸역꾸역 읽다가 결국 히치콕 말년의 실패작에 이르기까지 완독했다. 


히치콕은 자기보다 하루 늦게 태어난 알마 레빌과 결혼해 평생 해로했다. 현장의 스크립터였던 알마는 히치콕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에도 시나리오를 사전에 검토하며 아이디어를 주는 일종의 '막후 실세'로 활동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크레딧에 이름은 올리지 않았다. 그래도 히치콕은 그 어느 누구보다 알마의 의견을 가장 중요시했다. 그런 히치콕이 사실상 성불능이었다는 점도 이 평전이 알려주는 의외의 사실 중 하나다. 히치콕은 걸쭉한 농담을 즐기고 떄론 여배우에게 성적 도발을 일삼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않았다(못했다). 




히치콕은 쇼맨십이 강한 사람이었다. "배우는 가축이다" "각본가는 꼭둑각시다"라는 유명한 금언이나, 어린 시절 아버지의 훈계의 일환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잠깐 갇힌 경험 때문에 누명을 쓰고 경찰에 쫓기는 주인공(이른바 롱 맨)을 자주 등장시켰다는 이야기는 사실인지 아닌지 아리송하다. 아마 이런 금언이나 일화를 들려주는 것이 흥미진진한 인물로서의 히치콕의 위상을 강화해주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매우 많이 한 감독으로 꼽힌다. 최대 150kg에 달했던 비만 체구로 대표되는 독특한 모습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히치콕 역시 기자들을 피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보란 듯이 기나긴 그리고 지나치게 풍성한 만찬을 즐기기도 했다. 스스로를 다소 희화화시키면서까지 유명세를 누렸던 것이다. 


히치콕은 시나리오 작성이 영화 제작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촬영이란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옮기는 지루하고 딱딱한 과정으로 생각했다. 영국 시절엔 촬영 중 조는 일도 잦았다. 컷을 한 후 배우와 스태프가 꺠우면, "음...잘 찍었지? 그럼 다음 장면" 하고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역시 히치콕이라는 인간을 재미있어 보이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에피소드일 가능성도 있지만. 


인기 많은 장르 영화 감독이었던 히치콕을 '작가' 반열에 올린 건 프랑스인들, 특히 프랑수아 트뤼포와의 인터뷰였다. 트뤼포를 비롯한 프랑스 비평가들은 히치콕의 장면 장면을 분석하며 의미를 찾아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히치콕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고 한다. "굳이 그들의 환상을 깰 필요는 없지"라는 것이 히치콕의 반응이었다. 영화 안과 밖에서 모두 능란했던 히치콕은 1980년 4월 29일 8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오늘날 히치콕에 비견되는 '스타 감독'이 있을까? 스콜세지? 우디 앨런? 타란티노? 글쎄. 어딘지 조금씩 모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