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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드로 안토니오 데 알라르콘, <죽음의 친구>



페드로 안토니오 데 알라르콘의 <죽음의 친구>
를 읽다. '1833년 안달루시아에서 몰락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문명을 떨치다가, 결혼을 계기로 자유주의에서 보수주의로 돌변해 순식간에 영향력을 잃었다' 정도로 책 날개는 저자의 약력을 소개하는데, 난 아무튼 이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보르헤스가 기획하고 해제까지 쓴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중편 <죽음의 친구>와 단편 <키 큰 여자>가 실려 있다. 특히 <죽음의 친구>에서 매우매우 놀랐다. 기구한 운명을 비관해 스스로 거의 목숨을 끊을 뻔 했으나 '죽음'의 방문을 받고 그의 친구가 된 주인공 힐 힐. 힐은 죽음의 도움을 받아 이 세상에서 능력을 발휘해(사람이 죽는 때를 미리 알려주는 것) 권력을 누리지만.

종반부에 경천동지할 반전이 있다. 필립 K. 딕이 한 세기쯤 후에 이런 류의 반전을 즐겨 사용했는지도 모르지만, 딕의 반전이 종종 기능적으로 느껴져 싫증이 나는데 반해, 알라르콘의 반전은 종교적, 철학적이다. 쉽게 표현해 결말이 '안드로메다로 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알라르콘의 배포는 안드로메다 따위는 뛰어넘는다. 이런저런 기사로 추측컨데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테렌스 맬릭의 <생명의 나무>가 이 정도로 이야기의 결말을 우주 끝까지 밀쳐내는 배포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래서 욕을 한 이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난 왠지 맬릭의 영화를 보지 않고도 3분의 1 정도 이해할 것 같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황당한 결말을 내기. 그래서 독자의 규격화된 감성을 파괴하기. 한 사람의 인생은 물론, 전 지구 나아가 우주의 운명을 썩은 시체가 꾸는 5분간의 꿈 속으로 밀어넣기. 그리고 보르헤스의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도 상식을 뛰어넘는 배포를 지닌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 <죽음의 친구>가 주는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