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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도 저자가 됐다, 엑스플렉스의 텐북스




왜 냈나 싶은 책도 참 많고, 좋다 싶은 책도 읽는 이가 드물어진데다가, 인터넷 어디서라도 글 쓸 공간은 무한한 세상에, 여전히 책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출판의 문턱은 낮아졌으니, '저자가 되고 싶다'는 로망은 예전보다 훨씬 충족하기 쉬워졌다. "책은 하나의 세계"라는 담임 교사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에 있는 출판문화공간 엑스플렉스에서는 조촐하지만 뜻깊은 한 출간기념회가 열렸다. “인생에 한번, 나도 저자!”라는 모토를 내걸고 지난 6주 동안 열렸던 강좌 ‘텐북스’ 제1기 수료식을 겸한 자리였다.


저자 지망생 4명은 지난달 13일 처음 엑스플렉스에 모였다. 이후 매주 토요일 오후 4시간씩 혹독한 책만들기 수련을 거쳤다. 그날 강의가 끝나면 내주는 숙제를 다음 1주일간 해야했다. 글쓰기 강좌는 곳곳에 숱하게 있지만, 텐북스는 글쓰기를 넘어 책의 구성을 비롯해 교열과 디자인, 홍보 등 출판의 전반적인 과정을 직접 체험하도록 한다. 일종의 ‘DIY 출판’인 셈이다.


어렵게 들어간 신문사를 2년만에 그만둔 허자경씨(28)는 텐북스 강좌에서 퇴직 이후 80일간의 유럽 여행기를 담은 <너에겐 너의 음악이>라는 책을 묶었다. ‘유럽을 여행하는 젊은 퇴사자를 위한 안내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암스테르담, 베니스, 바르셀로나 등 유럽의 명소를 떠도는 ‘젊은 퇴사자’의 심경이 곳곳에 담겨있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김대환씨(41) 역시 2년간의 여행기를 썼다. <2년을 배낭 속에, 인연을 마음속에>는 먼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베스트셀러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의 저자인 정찬용씨(58)는 “이미 책을 내봤지만 편집 과정이 궁금했다”고 했다. 책을 낼 때마다 출판사의 기획 의도에 마지못해 끌려가곤 했던 아쉬움도 이 강좌를 들은 동기였다. 표지 디자인, 종이의 질 등에 대해 출판사는 한번도 저자와 상의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 정찬용씨는 한껏 고집을 부려봤다. 그래서 책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정할 때, 10년 경력의 편집자인 담임 교사 박태하씨와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책은 정씨가 채택한 <대한민국의 미친 엄마들>과 박태하씨가 추천한 <대한민국 엄마들에게 아무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란 두 가지 버전으로 나왔다. 내용은 같지만 제목과 표지가 다르다. 정씨는 이날 즉석에서 어느 제목이 나은지를 두고 설문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대안학교 교사인 홍영휘씨(59)는 2000년쯤 책을 내겠다고 처음 마음 먹었다. 이번에 낸 <BARNABY 언어 학습법>은 15년만의 결실인 셈이다. 책을 위해 지난 1년간 학교도 쉰 그는 “오늘이 내 두번째 생일”이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엑스플렉스 텐북스 강좌 1기 수료생인 김대환, 정찬용, 허자경, 홍영휘씨. 


이들이 단 10권이라는 소량의 인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쇄기술의 발전 덕택이다. 기존에는 책을 한 번 인쇄하려면 1000만원 안팎의 제작비에, 인쇄 부수도 최소 2000부는 돼야 했다. 이렇게 찍은 책이 다 팔리지 않으면 출판사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에, 출판사로서도 쉽게 출간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각광받는 POD(Publish On Demand·주문형 출판) 시스템을 이용하면 단 1부의 책도 찍을 수 있다. 엑스플렉스의 유재건 원장은 “30년의 출판 경험동안 수많은 원고를 반려하면서 그 기준이 무엇인지 스스로 되묻는 일이 많았다”며 “편집자가 조금만 돕는다면 새로운 시스템을 이용해 많은 분들이 부담없이 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온라인 미디어의 시대에 왜 꼭 전통적인 종이책을 내야 할까. 이번에 저자로 데뷔한 수강생들 역시 글들을 블로그 등에 게재한 경험이 있다. 허자경씨는 “인터넷에 올릴 때와 달리 책을 낸다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 경험을 완결짓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대환씨 역시 “여행의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다니며 일기를 썼다”며 “블로그에 올렸을 때와 달리 책을 손에 드니 2년간의 여행이 완결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 권의 책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은 원고뭉치나 일기가 아닐뿐더러, 아무리 소규모 출판이라도 공적으로 선보이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허자경씨는 “책의 컨셉을 정하고 거기에 맞게 새로 글을 쓰거나 사진을 고르는 작업이 힘들었다”고 했다. 블로그에는 마음 내키는대로 원하는 시간에 글을 올렸지만, 책은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어야 한다. 김대환씨는 “읽는 사람을 생각해야 하기에 맞춤법을 새로 배우는 등 교정보는 일이 육체적으로 괴로웠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10권의 책을 여행중 만난 지인에게 나눠주거나, 보완해서 또다른 책으로 내거나, 수업 교재로 쓰겠다고 했다. 텐북스는 또다른 미래의 저자를 찾아 9월중 2기 강좌를 시작할 예정이다. 담임교사 박태하씨는 말했다. “유명 출판사에서 냈는지 아닌지 상관이 없습니다. 책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낸 이상 이분들은 모두 저자입니다. 그런 세계를 만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엑스플렉스 텐북스 1기 수료생들의 책들. 정찬용씨의 책 표지 디자인은 두 가지 버전으로 나왔다.(왼쪽에서 세번째, 네번째)